출판사 제공 책 소개

그리운 작가, 박완서의 특별한 정원 꽃과 나무처럼 꾸준한 애정으로 삶을 돌보다 날마다 나에게 가슴 울렁거리는 경탄과 기쁨을 자아내게 하는 자연의 질서와 그 안에 깃든 사소한 것들에 대한 애정과 감사를 읽는 이들과 함께 나눌 수 있으면 더 바랄 게 없겠다. - ‘작가의 말’에서 『호미』는 박완서가 2011년 80세로 삶을 마무리하기까지 마지막 13년을 보낸 ‘아치울 노란집’에서의 소박하고 정겨운 생활을 담은 산문집이다. 그는 60대 후반에서 70대 전반까지 그 집에서 살았다. 바로 그 시절, 그 공간에서 박완서가 뿌리고 거두었을 깨달음은 무엇이었을까. 변덕스럽지만 원칙을 깨지는 않는 자연의 질서, 작고 사소할지언정 경이로운 생명들……. 나이가 들며 “나도 모르게 어질고 따뜻하고 위안이 되는 글을 소망하게 되었다”는 작가의 말처럼 책 곳곳에 지친 삶을 쓰다듬는 상냥한 온기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나무들이 물을 길어 올리는 소리, 흙 속의 무수한 씨들이 서로 먼저 나가려고 부산을 떠는 소리”. 뒤숭숭한 세상을 보며 삶에 대한 비관이 솟구칠 때도 “땅에 균열을 일으키며 밑에서 솟아오르는 씩씩한 녹색”을 보면 “새로운 힘이 솟는 걸 느”낀다. 김매듯이 꾸준히 일궈온 삶이지만 “때로는 호미자루 내던지고 싶을 때도 있었”다. 그래도 “그 결과 거둔 게 아무리 보잘것없다고 해도 늘 내 안팎에는 김맬 터전이 있어왔다는 걸 큰 복으로 알고 있다”고 작가는 얘기한다. “내가 거둬야 할 마당이” “나에게 맞는 불편을” 제공해주듯, 심심하고 담백한 일상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행복과 평화”야말로 ‘아치울 노란집’이 그에게 선사한 진짜 선물이 아닐까. 1부 ‘꽃과 나무에게 말 걸기’는 복잡한 서울을 벗어나 아치울로 이사한 작가가 자신만의 작고 특별한 정원을 일구며 발견한 일상을 빛내는 작은 행복들을, 2부 ‘그리운 침묵’은 작가가 살아오면서 겪은 크고 작은 고난 속 바래지 않은 휴머니즘과 다음날을 향한 따뜻한 희망을, 3부 ‘그가 나를 바라보았네’는 종교적 깨달음과 삶을 지탱하는 소중한 순간들에 대한 감사를, 4부 ‘딸에게 보내는 편지’는 호원숙 작가에게 가진 신뢰와 애정, 그리고 더없이 너그러운 우인(友人)으로 살다가신 어른들의 삶에 관해 풀어냈다. 꺾이지 않는 삶의 태도 박완서, 시대와 호흡하는 문장들 “중학교 2학년 때 종전이 되고, 우리나라는 일본으로부터 해방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는 일제시대에 태어난 셈인데도 갑자기 그 시대가 덮친 것처럼 그 이질감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작가가 겪은 어린 시절의 전쟁과 우리 민족의 수난사는 한 개인, 특히 여성으로서 지나온 한국의 구체적 역사를 절절히 느끼게 한다. 그는 해방 직후 38선을 긋던 시기에 엄마와 남루한 행색으로 소련군이 주둔하던 개성을 탈출했고, “축복도 저주도 가장 낙인찍기 쉬운 말랑말랑한” 스무 살 꽃다운 나이에 한국전쟁을 겪으며 대학을 중퇴해야 했다. 그런 그에게 “6월만 되면 되살아나는 계절병은 당연히 한국전쟁이다.” 민족 분단의 아픔과 고향에 대한 가없는 그리움이 그의 문장에는 짙게 배어 있다. 박완서는 이토록 다난한 삶을 살아오면서도 인간에 대한 신뢰와 내일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는다. 어려서부터 만나온 참된 어른들의 가르침은 흔들리는 삶에서도 그가 꿋꿋이 서 있을 수 있도록 지탱해준다. “유난히 사람을 아끼시던”, 아들과 딸을 가리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그렇게 기쁘고 극진하게 모시”던 시어머님은 모든 생명에 갖추어야 할 예우를 몸소 보여주었고, 손자들을 위해 양력설을 쇠며 “차례나 제사 지낼 때 여자들도 참예토록 한” 할아버지는 “여자로 사는 데 있어서 주눅 들거나 허세 부리지 않고 당당할 수 있는 힘”을 심어주었다. 더불어 역사학자 이이화가 민족의 고통을 온몸으로 체험하는 역사의식으로 압록강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던 에피소드, 뛰어난 안목으로 자연과 혼연일체 된 갤러리를 선보인 박수근의 이야기, 이름만 봐도 가슴이 따뜻해지는 소설가 이문구 선생에 대한 작가의 존경과 그리움이 주는 깨달음은 값지다. 세대를 아우르는 박완서의 따뜻한 문장들은 그가 가꾼 정원처럼 “가꾼 티 없이 자연스러우면서도” “마음에도 위안이” 된다. 어느새 성큼 다가선 초여름 밤, 박완서의 선물 같은 문장들을 다시 만날 시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