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세계적 물리학자 폴 데이비스의 탐구
"생명의 개념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이해하고 싶다면, 이 책을 읽어라."
-앤드루 브릭스(옥스퍼드대학교 나노소재과학 명예교수)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을 가르는 것은 정보다
생명이란 무엇인가? 오랫동안 과학자들은 이 문제를 이해하기 위해 분투해왔지만, 여전히 생명은 비밀의 장막으로 가려진 마법처럼 보인다. 보잘것없는 미물인 세균조차 우리는 감히 흉내낼 수도 없는 놀라운 방식으로 작동한다.
1943년 양자물리학자인 에르빈 슈뢰딩거는 ‘생명이란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역사적 강연에서 이 수수께끼에 도전하여 생명을 물리학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했다. 슈뢰딩거는 혼돈에서 생명이라는 질서가 생겨나기 위해서는, 즉 생명이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르기 위해서는 그 명령이 어떤 식으로든 분자에 부호화돼 있어야 한다고 추정했다. 그로부터 10년 후 DNA 구조가 발견되면서 슈뢰딩거의 통찰은 사실로 입증되었다. 이후 수십 년간 분자생물학이 급속히 발전하면서 생명을 원자와 분자의 물리화학만으로 설명할 수 있다는 ‘강한 환원주의’가 과학계의 대세가 되었다. 그러나 인간의 유전 부호가 해독된 지금도 유전자와 생물학적 형질이 어떻게 연결되고 조직되는지 등의 생명의 수수께끼는 여전히 풀리지 않고 있다. 강연의 끝에서 슈뢰딩거는 생명이 아직 우리가 알지 못하는 ‘다른 물리법칙’과 관련이 있을지 모른다고 암시했다.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커뮤니케이터인 폴 데이비스는 슈뢰딩거의 생각에 동의하며, “생물은 깊고 새로운 물리적 원리들을 나타내고 있으며, 그 원리들을 밝혀내 거두어 쓰게 될 문턱까지 우리가 와 있다”고 말한다. 유사 이래로 많은 사람들은 생명이 물질 이외에 어떤 마법과도 같은 생명력--공기(숨), 열, 전기, 영혼, 에테르 등--에 의해 생겨났다고 여겼다. 그러나 이러한 생기론을 뒷받침할 과학적 증거는 전혀 없다. “그러나 비록 생명력이 존재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생명 물질에 무언가 특별한 것이 있다는 인상을 떨쳐버리기는 힘들다. 그렇다면 문제는 이것이다. 그것이 대체 무엇인가?”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정보’다. “생명과 생명 아닌 것을 가르는 것은 정보이다.” 유기체가 생식을 통해 종을 영속시키기 위해서는 DNA와 단백질이 수행하는 유전 정보의 저장, 처리, 전달이 필수적이다. “이 명확한 물질적 복잡성(생명의 하드웨어)을 꿰어 잇고 있는 것은 그보다 훨씬 숨이 멎을 것 같은 정보의 복잡성(생명의 소프트웨어)이다.” 하지만 ‘생명=물질+정보’라는 주장에는 한 가지 난점이 있다. 생명을 구성하는 분자는 물리적 구조이고 정보는 추상적 개념인데, “어떻게 추상적인 정보를 분자의 물리와 이을 수 있을까?” 폴 데이비스는 해결의 열쇠를 150여 년 전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이 제안한 사고실험에서 찾아낸다.
맥스웰의 악마
1867년 맥스웰은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하는 한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낸다. 기체가 들어 있는 상자가 있다. 기체의 온도가 일정하다고 해도 에너지 배분은 균일하지 않아 더 뜨거운 분자와 더 차가운 분자가 섞여 있으며, 뜨거운 분자는 상대적으로 더 빠르게 움직이고 차가운 분자는 더 느리게 움직인다. 이제 상자 가운데에 칸막이를 세운다. 칸막이에는 아주 작은 구멍이 나 있고, 구멍에는 덧문이 설치되어 있으며, 아주 작은 악마가 그 덧문을 열고 닫을 수 있다고 하자. 빠르게 움직이는 뜨거운 분자가 다가오면 악마가 덧문을 열어 한쪽으로 보내고, 느리게 움직이는 차가운 분자는 다른 쪽으로 계속 보낸다면, 얼마 후 상자의 한쪽은 온도가 올라가고 다른 쪽은 온도가 내려가게 된다. 이제 덧문에 열기관을 단다면 외부의 에너지 공급 없이도 온도차에 의해 일을 하는 영구기관을 만들 수 있다.
그런 악마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은 반론이 될 수 없는데, 이는 원칙적 가능성을 탐구하는 사고실험이기 때문이다. 그 후 오랫동안 ‘맥스웰의 악마’는 많은 과학자들에게 타당한 논증이기는 하지만 구현하기는 불가능한 불편한 역설처럼 여겨졌다. 이 악마의 핵심에 ‘정보’가 있음을 처음으로 꿰뚫어본 것은 미국이 핵무기를 개발하도록 가장 먼저 촉구한 핵물리학자 실라르드 레오였다. 그는 악마가 분자의 속도와 위치를 ‘본다’라는 행위, 곧 측정(정보)이 열역학 제2법칙을 거스를 때 치러야 할 대가임을 알아차렸다. 그러나 실라르드는 악마의 장난으로 얻는 이득(일)이 분자를 지각할 때 치르는 엔트로피 비용으로 상쇄되기 때문에 열역학 제2법칙을 위반할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맥스웰의 악마’에 대한 돌파구는 다른 갈래인 컴퓨터과학에서 나왔다. IBM의 물리학자 롤프 란다우어는 컴퓨터가 계산과정에서 쌓인 정보들을 지울 때 열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아내고, 1비트의 정보를 지울 때 3×10-21줄의 열이 발생한다고 계산했다. ‘란다우어 한계’라고 알려진 이 값은 정보와 물리의 깊은 연관성을 드러냈다. 이제 명백해진바, 정보는 실재하며 “정보는 물리적이다!” 즉 정보는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물리적 대상과 결부되어 있다.
이후 정보를 처리해서 일로 전환시키는 ‘정보엔진’을 구현하려는 실험들이 잇따랐고, 마침내 2007년 에든버러대학교의 데이비드 리는 나노기술을 이용하여 ‘맥스웰의 악마’를 분자 수준에서 구현해냄으로써, 정보가 정말로 에너지로 전환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이후 일본, 핀란드, 우리나라 등지에서 실험들이 이어졌고 그 효율도 극적으로 개선되었다. (이 책의 주에 나와 있듯이, 우리나라 울산과학기술원의 박혁규 교수 연구팀은 2018년에 98.5%라는 놀라운 효율의 정보엔진을 구현하는 데 성공했다.)
가까운 미래에 ‘정보를 동력으로 하는 냉장고’ 같은 장치가 나올 수도 있겠지만, 이 책에서 폴 데이비스가 주목하는 것은, 맥스웰은 미처 알지 못했지만, 생명은 이미 수십억 년 전부터 ‘맥스웰의 악마’를 몸속에 구현해왔다는 사실이다. 우리 몸속의 나노 분자기계들은 정보로 넘쳐흐르고 있으며, 정보를 저장하고 처리하는 기술을 완벽히 수행하도록 진화해왔다. 폴 데이비스는 ATP를 효율적으로 운반하는 키네신, DNA와 RNA를 복사 및 전사하는 중합효소의 작용 등을 예로 들며, 생명의 정보관리 기계장치들이 어떻게 고도의 열역학적 효율을 만들어내는지 설명한다.
생명이라는 기계 속 정보를 처리하는 악마
하지만 ‘생명=물질+정보’라는 사실의 확인에서 멈춘다면 이는 생기론의 또 다른 변주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생명에서 정보 패턴이 어떻게 물리화학적 활동을 제어하고 조직화하는지 그 논리와 작동방식을 밝혀내는 작업이 뒤따라야 한다.
폴 데이비스는 힐베르트가 제시한 수학 공리계에서의 무모순성 문제, 러셀이 정식화한 자기지시의 역설,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튜링의 범용 계산기의 이론적 성취들을 차례차례 살펴본 후 이렇게 결론내린다, 생명의 논리 아키텍처가 논리학의 공리를 반영하고, 수학의 토대가 결정 불가능하다면, 생명의 다양성과 복잡성에도 한계가 없게 된다. 즉 생명이라는 복잡계의 정보 패턴들이 몇 가지 내적 규칙을 따르며 “논리의 구속을 강하게 받아도, 예측 불가능한 새로움을 만들어내는 것과 얼마든지 양립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일찍이 폰노이만은 ‘범용 제작기’ 즉 ‘자기 자신의 복사본을 포함해 무엇이든 만들 수 있는 기계’라는 관념을 제시했는데, 폴 데이비스에 따르면 생명(DNA)이 바로 이와 같은 자기복제 기계다. 폰노이만이 그런 자기복제 기계의 간단한 예로 고안한 수학 모형인 ‘세포 오토마타’는 정보와 생명이 연결되는 논리 방식을 잘 보여준다. 세포 오토마타 모형을 토대로 한 ‘생명게임’은 픽셀에 색칠하는 컴퓨터 게임인데, 단순한 몇 가지 규칙을 반복 적용하는 것만으로 아주 복잡한 패턴들을 만들어낸다.
폴 데이비스는 여기서 ‘고장난 라디오 수리’의 비유를 드는데, 환원주의 생물학자들이 이제까지 한 일은 비슷한 라디오들과 비교하며 부품들을 모두 떼어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