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전한 건강권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위해
“우리는 매일 가장 평범한 아픔의 무게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다”
★ ‘안전한 임신 중지’라는 건강권
★ 엄마 뱃속에서 가난을 경험하다
★ 공공병원이 아직도 더 필요한가?
★ 소아마비 백신이 상품화되었다면
★ 뉴욕 시민은 ‘유모’를 원하지 않는다
★ 우리에게는 주치의 제도가 필요하다
★ 건강보장 확대에 맞선 캐나다 의사들의 파업
우리의 현실 삶에서 ‘완벽한’ 건강 상태는 없다. 인간을 포함해 모든 유기체는 끊임없는 외부 스트레스에 반응하며 시시각각 변화한다. 이때 스트레스란 심리적‧신체적 고통을 일으키는 유해한 자극만을 일컫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환경은 ‘랜덤’으로 존재하거나 개인이 자유롭게 ‘선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에서 건강을 둘러싼 이야기는 모두 개인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시 말해 건강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회경제적 조건은 모른 척한다. 그런데 우리가 숨 쉬는 환경, 우리가 일하는 공간, 우리와 관계 맺는 사람들이 나 자신을 통과하면서 마음이나 몸에 어떤 흔적을 남긴다.
김명희의 『가장 평범한 아픔』은 모든 사람이 ‘온전한 건강권’을 누리지 못하는 사회에 대한 비판적 시선을 담고 있다. 저자는 예방의학 전문의로서 공공의료와 건강권을 둘러싼 불평등 문제를 역사적 사실과 해박한 지식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오랫동안 건강 불평등과 노동자 건강권, 건강의 사회적 결정 요인에 대한 연구와 실천 활동을 해왔던 저자는 “건강 불평등은 사회적 질서가 얼마나 불평등한지를 보여주는 잣대이기도 하지만, 삶의 다른 기회들을 제약한다는 점에서 기본권의 침해”라고 말한다. 현장 기반 연구를 바탕으로 한 저자의 깊은 통찰과 과학적 논리, 인문학적 글쓰기는 ‘건강을 돌보지 않는 사회’가 얼마나 위험하고 그것이 어떻게 사회적 불평등으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준다.
제1장과 제2장은 우리의 건강에 영향을 미치는 사회적 ‘건강 결정 요인’을 다룬다. 우리가 선택할 수 없는 것이나 스스로 선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제한된 선택지만 존재하는 상황에서 이루어진 선택이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더 나아가 무엇이 우리의 건강 기회를 제약하는지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3장은 상처를 치유하고 회복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지만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는 ‘사회적 보호장치’의 현재 모습을 다룬다. 제4장은 문제를 문제로 인식하는 수단과 건강 약자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건강 정치’에 대해 이야기한다. 우리 각자가 경험하고 있는 건강 문제들이 나만의 특별한 사연이 아니라는 점을 깨닫는 순간, 개인들의 생애가 모여 사회의 역사가 되고 역사 속에 개인의 삶이 배태되어 있음을 깨닫는 순간, 우리는 세상을 바꾸어나갈 힘과 의지를 얻게 된다.
2024년 2월 한국의 의사 파업과
1962년 7월 캐나다의 의사 파업
2024년 2월 정부가 2025학년도 의과대학의 정원을 2,000명 많은 5,058명으로 늘리겠다고 발표하자, 의사들은 이 의료개혁안에 반대하며 필수 의료 붕괴에 대한 우려, 의료의 질 하락 같은 명분을 내세우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교수들도 제자와 후배들에게 불이익이 초래되면 가만히 있지 않겠다며 집단 사직 의사를 표명했다. 그 후 대형 수련병원들은 진료 실적이 줄어들면서 경영 위기에 빠졌고, 비정규직 노동자들은 고용 위기와 임금 체불을 우려했다. 무엇보다도, 대형병원을 이용하던 중증 환자들이 고통받았다.
정부가 발표했던 의사 증원 방식과 의료개혁안에 대해서는 보건정책 전문가와 시민사회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았다. 이 문제의 당사자는 의사뿐만이 아니기에, 다른 보건의료 종사자들, 전문가들, 시민들과 함께 머리를 맞댔어야 했다. 의사들도 더 나은 보건의료와 공공성 강화를 원한다면, 다른 이들과 함께 싸웠어야 했다. 자기 자신을 민주사회의 구성원으로 인식한다면 동료 시민에 대한 존중과 연대의 마음으로 ‘함께’ 보건의료 개혁에 나서야 한다. 의사들이 독점적 지위를 사회적으로 인정받았다면 책무성이라는 사회계약에 더 충실해야 한다.
1962년 7월 캐나다 서스캐처원주에서 의사들이 파업을 일으켜 응급서비스를 제외한 거의 대부분의 의료서비스가 중단되었다. 정부가 외래진료비까지 모두 포함하는 포괄적인 건강보험제도인 ‘메디케어’를 시행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외 언론들은 의사들의 파업에 우호적이지 않았다. 정부의 보건의료 개혁 조치에 반대할 권리가 의사들에게 없으며, 파업에 도덕적 정당성이 없다고 비판했다. 메디케어 확대를 지지하는 목소리가 훨씬 컸던 것이다. 23일 만에 파업은 종결되었고, ‘사스카툰 협정’이 체결되었다. 의사들도 메디케어를 보편적으로 적용하는 데 합의했고, 정부는 의사들이 메디케어 바깥에서도 진료를 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
의사 개인은 공공재가 아니지만 보건의료는 분명히 공공재다. 어떤 방식으로든 ‘사회적’ 통제는 불가피하다. 의사 면허는 고귀한 혈통의 신분증이 아니라 사회와의 계약서다. 의사들이 말하는 ‘의료 자유주의’는 지나간 시대의 이념이며, 역사적으로 보편적인 것도 아니다. 사회권 확대와 복지국가의 성장은 모두를 보건의료의 이해 당사자로 만들었다. 보건의료 체계의 공공성이야말로, 보건의료 전문가에게 경제적 안정과 전문가적 자율성, 정치적 자유를 보장해줄 수 있다.
건강보험과 산재보험의 그늘
건강보험은 1977년 시작되어 1989년 전 국민 건강보험 시대를 열었다. 또한 갈라져 있던 보험 체계의 통합을 이루어냈다. 역대 정부들은 끊임없이 건강보험 보장성 강화 개선안을 내놓았다. 특히 문재인 정부에서는 이 문제를 획기적으로 진전시키기 위한 ‘문재인 케어’를 시작했다. 그런데 생계형 장기 체납자들은 건강보험의 보호에서 살짝 비켜나 있다. 전체 건강보험료 체납자의 50퍼센트는 월 3만 원 미만의 보험료를 못 내고 있다. 월 보험료가 낮을수록 체납 횟수도 많아졌다. 2014년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서울 송파 세 모녀 가정의 월 건강보험료는 4만 7,060원이었다.
장기 체납자들의 건강보험 가입 이력을 살펴보면 삶의 불안정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들의 사연은 각기 달랐지만, 그 패턴만은 너무도 익숙했다. 가난, 불안정한 일자리와 주거, ‘비정상’ 가족에 대한 제도적·비제도적 차별과 배제, 취약한 사회자본, 갑자기 닥친 건강 문제……. 건강보험료까지 체납할 상황이면 이미 다른 부채가 있고, 다른 공과금도 연체하고 있을 공산이 크다. 건강보험은 보장성 목표를 달성하는 것만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위해 늘어나는 의료비를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건강보험이 그저 보험료를 거둬서 나눠주는 기술적 장치가 아닌 이상, 사회보장제도로서 좀더 적극적 역할을 할 필요가 있다. 보건의료 서비스에 대한 접근성 보장은 건강권의 기본 요소이고, 국가는 이를 보호하고 충족시킬 의무가 있다.
산재보험은 전 세계적으로 가장 역사가 오래된 사회보장제도다. 1884년 독일 비스마르크 정권에서 세계 최초로 시작한 이래 오스트리아·핀란드·프랑스·영국·이탈리아·노르웨이 등이 1890년대에 산재보험을 도입했다. 전 국민 건강보장제도가 없는 미국조차 1911년에 산재보험을 도입했다. 한국의 산재보험은 1988년에 시작된 국민연금과 1995년에 시작된 고용보험보다 훨씬 이전인 1964년에 시작되었다. 군사독재정권에서 그 어떤 사회보장제도보다 산재보험을 먼저 도입했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당시 산재 문제가 얼마나 심각했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사고성 산재는 대부분 추락, 끼임, 부딪힘 등의 사고로, 첨단기술이 아니라 간단한 안전장치와 실천으로 예방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사고로 사망하는 노동자의 행렬이 좀처럼 멈추지 않고 있다. 반복적인 재래형 산재 사고의 본질은 불평등 문제다. 그런데 한국의 작업장에서는 이 간단함이 결코 간단하지 않다. 그동안 산재는 노동자 개인의 부주의로 발생한 사건이나 개인적 비극이나 불운 등으로 치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