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볼로냐 국제아동도서전 수상작가 안 에르보의 작품
기발한 상상력이 불러 온 '새로운' 시간 이야기!시간이 낮에서 밤으로 곧장 흘러가던 아주 오랜 옛날, 어디선가 '파란 시간'이 나타난다. 바싹 마른 몸에 장대발을 신고, 아무 말도 하지 않는 파란 시간은 태양 왕과 밤의 여왕 모두에게 내쫓김을 당한다. 파란
시간은 갈 곳이 없어 여기저기를 떠돌다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이 싸우는 사이에 몰래 그 사이로 끼어 들어가는데.....
아이들에게 시간은 어려운 주제이다. 만질 수도 볼 수도 없는 추상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 에르보는 《파란 시간을 아세요?》에서 이렇게 까다로운 시간 개념을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쉽고
아름답게 묘사해냈다.
작가는 우선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도록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을 도입해 시간을 크게 둘로 나누었다. 이글거리는 '태양 왕'이 나타나면서 시작되는 낮은 온 세상이 자기 색깔을 찾는 화려함으로 가득하다.
반면에 밤은 모든 것을 암흑으로 뒤덮어 버리는, 냉정한 얼굴의 '밤의 여왕'이 나타나며 시작된다. 그런데 하루가 사과 반쪽처럼 정확히 둘로 나뉘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나머지 시간, 그러니까 새벽녘이나 해질녘의
시간은 어떻게 묘사할 것인가? 여기부터가 작가의 상상이 뻗어나가는 부분이다. 낮도 밤도 아닌 이 시간을 안 에르보는 '파란 시간'이라고 명명한다. 파란 시간은 위용을 갖춘 앞의 두 시간과 달리 외모부터 아주 나약해
보인다. 마른 체구에 장대발을 신고 조용히 걷기만 한다.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이 제 영역을 지키며 힘을 과시하는 것과 달리 아직 자기 자리를 잡지 못한 파란 시간은 방랑자처럼 떠돌아다닌다. 그러다 밤과 낮이 서로
으르렁대며 싸우는 틈을 타 그 사이로 슬그머니 끼어 들어간다. 드디어 자기 자리를 잡게 된 것이다.
작가가 밤이라 하기에도 또 낮이라 하기에도 모호한, 두 시간이 미묘하게 교차하면서 생기는 그 시간을 파란 시간이라고 이름붙인 것도 용하지만 그것을 소재로 이야기를 생각해냈다는 것이 더욱 놀랍다. 더구나
파란 시간이 해질 무렵에만 있는 것이 아니기에, 새벽 공주를 등장시켜 사랑에 빠진 파란 시간이 새벽에도 나타난다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안 에르보는 왜 파란 시간을 이야기할까? 태양 왕과 밤의 여왕은 '파란 시간'과 비교해 볼 때 막강한 힘을 가진 절대적인 존재이다. 각각 남자와 여자로 대비해 그린 낮과 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닮았다.
또 여기저기서 내쫓김을 당하는 나약한 파란 시간은 우리 아이들을 꼭 닮았다. 제자리를 잡지 못해 떠돌던 파란 시간의 모습은 온통 어른들의 문화로 가득 찬 이 세상에서 스스로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를 보여 준다. 하지만 아이들은 파란 시간이 그랬듯이 그 누구에게 집중받지 못하더라도 끊임없이 자신을 알리려고 노력한다. 그렇게 천천히 정체성을 찾아가며 사랑도 한다. 어른들은 아이들을 지구의 미래라고
여기면서도 정작 아이들이 손길을 뻗어 오면 귀찮아하며 외면할 때가 많다. 그런 어른들을 향해 안 에르보는 아이들에게 시간을, 관심을, 맘 편히 쉴 곳을, 사랑을 주라고 외치는 것은 아닐까.
안 에르보는 어른들은 무심코 지나쳐 버리지만 어린이들은 몹시 궁금해할 이야기를 잡아내는 데 탁월한 재능을 보인다. 전작인 《달님은 밤에 무얼 할까요?》에서처럼 언제나 아이다운 물음에서 시작된 상상의
조각들을 하나하나 이어 아름다운 책으로 엮는다. 그렇기 때문에 아이들은 편안히 그의 책을 읽고 느끼고 좋아하게 되는 것이다. 《파란 시간을 아세요?》를 통해 아이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시간'조차 친구처럼 편안하게
여기게 될 것이다.
■역자의 말여기 지극히 아름답고 세련된, 시적인 그림책 한 권이 있다. '텅 빈 시간(L'heure vide)'이란 원제까지 떠올려 보면 철학적이기까지 한 책이다. 옮긴이로서, 아동문학에 몸담고 있는 사람으로서 이
책을 우리 아이들에게 전달하게 되어 몹시 기쁘고 행복하다.
아이들은 모든 추상적인 것들을 구체적이고, 살아 있는 인격체로 바꿔서 받아들이는 힘이 있다. 이 그림책을 만든 안 에르보야말로 그런 어린 시절의 능력을 잃지 않은 드문 작가이다. 어른들이 어렵게 말하는
텅 빈 시간, 파란 시간의 개념이 그의 그림책 속에서는 길고 마른 몸에 푸르스름한 외투를 걸친, 슬프고 우스꽝스런 얼굴의 남자로 살아서 움직이고 있다. 파란 시간은 하루의 시간대로 보면 낮에서 밤으로 넘어가는
해질녘의 짧은 시간이다. 이를테면 그것은 생활이나 재충전을 위한 휴식이라는, 맹렬한 시간들 사이에 낀 잔잔하고 고즈넉한 시간이다. 생각에 잠기고 꿈을 꾸는 시간. 그것은 생명을 이어가기 위해 끊임없이 애써야 하는
존재들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슬프고 아름다운 시간이다. 그 파란 시간이 해질녘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새벽 공주를 사랑하게 된 덕분에 새벽녘에도 우리는 그를 볼 수 있고, 하얀 장미를 책 속에 끼워 넣은 덕에 하얗게
안개 낀 밤의 틈바구니에서도 우리는 그를 만날 수 있다. 파란 시간의 철학적 깊이와 아름다움을 굳이 설명할 필요는 없으리라. 아이들은 파란 시간의 슬프고 우스꽝스런 이미지를 가슴에 품게 될 것이다. 그것이면
아이들의 영혼은 한 순간이나마 파란빛으로 물들 것이고, 밤과 낮만 알았던 그 전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아이가 될 것이다. 내 어린 시절에도 이런 그림책이 있었다면 나는 꼭 시인이 되었을 텐데, 그 점이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