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비다 행성에 찾아온 행성감기.
그로 인한 식량 부족 사태 발생!
이 행성적 재난을 해결할 자 누구인가!
라비다 행성에서는 본래 농작물이 저절로 자랐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라비다 행성이 행성감기에 걸려버렸고, 농작물은 더 이상 자라지 않게 된다. 설익은 농작물, 딱딱해진 농작물 등으로 인해 라비다 행성에는 식량 부족 사태가 벌어진다. 라비다인들은 식량 소비를 줄이기 위해 하나의 육체를 여럿이서 나눠 쓰기로 하지만 그 효과는 미미했고, 다른 대책이 필요해졌다.
라비다 행성의 농업사령관인 띵은 오랫동안 지구의 TV프로그램을 시청해왔는데, 그 중 가장 좋아하는 프로그램은 <농사의 전설>이다. 양동마을 사람들이 농사를 지으며 생활하고, 서로 잘 지내는 모습이 보기 좋았기 때문이다. 띵은 이들에게 농사 비법을 전수받아, 라비다 행성의 식량난을 해결하기로 결심한다.
그렇게 라비다 행성으로 지구인들을 모셔, 아니 납.치.해왔는데, 이게 웬일. 지구인들은 자신들은 배우이지 농업전문가가 아니라고 한다. 연기만 했을 뿐 실제 농사에 대해선 아무것도 모른다는 지구인들. 띵은 난감하기만 하다. 이미 많은 예산이 투자된 만큼, 지구인들의 직업이 무엇이든 무조건 농사를 성공시켜야만 한다.
난감한 건 지구인들도 마찬가지다. 지구인들은 띵이 자신들을 찾아왔을 때, ‘당연히’ 몰래카메라 예능프로그램이라고 생각했다. 시청률 하락으로 드라마 폐지설이 나돌던 중에 최고 인기 프로그램의 방문이라니! 그저 반갑기만 했고, 여기서 자신들을 홍보하면 된다는 생각에 신이 나 의심조차 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예능이 아닌 ‘Real’이라니... 황당하고 두렵고 어이없다. 심지어 난생 처음 보는 행성에서 이름도 처음 들어본 식물 농사를 성공시켜야만 지구로 돌아갈 수 있다고?!! 울며 겨자 먹기로 농사에 나서지만 계속 실패할 뿐이다. 그럴수록 라비다인들의 경계와 의심도 심해져 간다. 답답함과 분노가 폭발할 즈음, <농사의 전설>의 주인공인 조세열이 한 가지 방법을 찾는다.
과연 라비다 행성의 식량 부족 사태가 해결될 수 있을지,
지구인과 라비다인, 또 다른 행성인의 관심이 집중된다!
사랑스럽고 유쾌한 우주풍자극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풍자로 이루어져 있다. 때문에 처음 작품을 접할 때는 당황스러울 지도 모른다. 하지만 물 흐르듯 작품을 따라가다 보면, 어느덧 작가 특유의 개그코드와 문체에 마음이 동한다. 그때부터는 작품에 훨씬 더 몰입하게 돼 ‘이것의 의미는 뭐지?’, ‘이런 사회문제를 풍자한 것은 없나?’ 라며 찾아보게 된다.
그러면서 점점 입가에 미소가 지어지고, 마음이 간질간질해진다. 작품 곳곳에 인간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가득 묻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소수자를 대하는 태도는 더없이 따뜻하다. 그들을 결코 동정하지 않으며, 하나의 주체로 온전히 존중하고 있다. 서로에게 편견 없이 대하는 캐릭터들은 우리를 돌아보게 만든다.
모든 캐릭터를 사랑스럽게 대하는 작가를 통해 우리는 위로를 받는다. 많은 이들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 하고, 현재의 행복은 물론 미래의 행복까지 바라는 작가의 간절함이 새삼 낯설게도 느껴진다. ‘누군가에게 이토록 애정 어린 응원을 받은 적이 있었나?’라는 생각까지 들게 만들 정도.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의 메인 배경인 라비다 행성은 신비롭고 유토피아적인 공간이다.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지구와는 다른 모습에 ‘한 번쯤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한다. 하지만 라비다 행성 안으로 들어가 보면 지구와 다를 것 없는 문제를 발견할 수 있다. 식량 문제, 육식과 채식, 세대 간 갈등, 미디어의 역할, 타인을 대하는 태도, 전쟁 등 작품을 구성하고 있는 모든 요소가 지구의 현대 사회와 꼭 닮았다.
이러한 라비다 행성의 갈등을 지구인들이 해결한다. 다른 행성으로 납치된 문제투성이 지구인들이 의도를 가지고, 혹은 우연히 그들의 문제를 해결하는 이 역설적 구조에서 작가는 현대 사회에 대한 본인만의 생각을 풀어낸다.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기존 가치관을 강화시켜줄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자신의 가치관과 정반대일 것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그저 흘러가듯 어떠한 영향도 미치지 않을 것이다. 이 작품은 어떠한 방향으로도 강요하지 않는다. 이야기 속에서 ‘소통의 중요성’을 매끄럽게 풀어내, 단지 이 작품에서는 이러하니 그것을 즐기면 된다고 말하고 있다. 그뿐이다.
듣도 보도 못한 쁘띠 SF의 등장!
작가 이선은 재기발랄한 상상력으로 모던한 즐거움을 만들어내는 데 탁월한 능력을 지녔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에서 그 재능을 무한히 펼친 결과 고급스러우면서도 귀여운 SF블랙코미디가 탄생했다. 다양한 캐릭터들이 소소하게 벌이는 에피소드, 신비로운 생명체의 귀여운 행동, 뻔뻔하게 느껴질 만큼 자유로운 언어유희, 은유를 바탕으로 한 세밀하고 입체적인 설정과 이야기, 무심하게 아닌 척 하면서 촘촘하게 깔아둔 복선 등 이 작품은 일반적인 SF소설과 다른 결을 지녔다. 정교한 과학적 지식이나 새로운 과학적 상상력 및 신문물, 디스토피아적 세계관 등을 기대하는 독자라면 이 작품이 무척 낯설 것이다. 또한 ‘이 작품의 장르를 SF라고 분류하는 것이 맞을까?’ 라는 의문을 가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런 점 때문에 이 작품을 세상에 선보이고, 추천할 수 있다.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은 SF장르를 새롭게 개척하고, SF장르에 새로운 독자층을 유입시킬 수 있는 작품이다. 이를 통하여 점진적으로 SF시장을 확대시키는 것까지 도전할 만하다.
또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의 공간적 배경인 베델스크 행성계는 꽤 탄탄하고 흥미롭게 구축되어 있어 이를 활용한 연작 시리즈도 기대할 수 있다. 이 작품 이후에 라비다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라비다 행성에서 다시 지구로 돌아간 지구인의 이야기, 베델스크 행성계의 각 행성에서 벌어지는 이야기 등 독자들도 끊임없이 상상하게 만들 정도로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이 보여주는 세계는 독특하고 매력적이다.
지구인들이 라비다 행성에 변화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행성감기에 걸리지 않는 법>이 무궁무진한 발전 가능성을 지닌 SF시장을 어떻게 움직일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