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커 상 수상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
넷플릭스 화제의 드라마
「그레이스」의 원작 소설
2000년 부커 상을 수상한 이래 현대 영문학을 이끄는 작가로 자리매김한 대표적인 캐나다 작가 마거릿 애트우드의 작품 『그레이스』가 민음사에서 새로운 장정으로 출간되었다. 페미니즘, 계급과 빈부 차, 전쟁과 폭력을 망라하는 주제로 부커 상을 수상한 작품 『눈먼 암살자』는 출간 당시 “새로운 세기에 나온 첫 번째 위대한 소설”로 불렸으며, 또 다른 소설 『시녀 이야기』는 트럼프 시대의 미국을 예견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지난 5월엔 “휴머니즘과 우리 시대를 증언하는 힘”을 지닌 작품에 수여하는 프란츠 카프카 상을 수상하고 올해 가장 유력한 노벨 문학상 후보 중 한 명으로 거론되며 다시 한번 작가로서의 저력을 알렸다.
『그레이스』는 1843년 캐나다에서 실제 일어났던 살인 사건을 바탕으로 쓰인 미스터리 소설이자, 기묘한 매력을 지닌 여인 그레이스 마크스와 그녀를 둘러싼 인물들의 복잡한 욕망을 파헤치는 심리 소설이다. 16세의 나이에 살인에 가담하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30년간 옥살이를 하다 사면된 그레이스는 19세기 내내 큰 논란을 불러일으킨 인물이다. 애트우드는 일찍이 그레이스의 이야기에 매료되어 CBC 텔레비전 드라마 「하녀」의 극본을 집필했다. 하지만 가려진 진실을 보다 정확하게 드러내기 위해 다양한 사료들을 참고하고 연구하여 「하녀」 이후 20년 만에 소설 『그레이스』를 완성했다. 살인을 저지른 가해자인지, 누명을 뒤집어쓴 피해자인지 파악하기 어려운 그레이스의 실체를 쫓으며 애트우드는 독자들에게 정교하게 짜인 흥미진진한 진실 게임을 선사한다. 이 소설은 미국 넷플릭스(Netflix)에서 드라마로 제작, 2017년 11월 국내 오픈을 앞두고 있다.
영악한 살인범인가, 순결한 희생양인가?
살인자로 지목된 아름다운 여인을 둘러싼 상반된 주장들
1843년 7월, 캐나다 토론토 근처의 시골 마을에서 하인과 하녀가 공모해 집주인과 그의 정부였던 가정부를 살해한 사건이 일어났다. 치정과 폭력과 하극상으로 뒤범벅된 이 사건은 캐나다뿐 아니라 미국과 영국에서도 대서특필되었고 범인 중 하나가 매력적인 용모의 열여섯 살 소녀라는 점이 논란을 더욱 키웠다. 어리고 아름다운 그레이스를 두고 사람들은 집주인 키니어 경을 짝사랑하다 질투에 눈이 멀어 남자 하인 맥더모트에게 살인을 교사했을 것이라 수군댔다. 반면 거칠고 사나운 맥더모트의 협박에 못 이겨 어쩔 수 없이 범행에 가담했을 것이라고 두둔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결국 교수형에 처해진 맥더모트와 달리 그레이스는 변호사와 몇몇 명사들의 노력 덕분에 종신형으로 감형되었다. 그러나 수감된 뒤에도 그녀가 정말 살인을 저지른 것인지 의견이 분분했고 그녀의 이름은 끊임없이 언론에 오르내렸다. 이후 30년간 그레이스는 교도소와 정신병원을 오가는 삶을 살다가 계속된 탄원 끝에 마침내 1872년 사면으로 풀려났다. 석방된 뒤의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그레이스』는 그레이스가 수감된 지 16년 후의 이야기로, 정신과 의사 사이먼 조던과의 대화를 통해 그녀의 삶과 행적을 쫓는다. 그레이스가 대화를 나누는 동안 줄곧 퀼트를 하면서 이불 조각을 만드는 것처럼, 작가 역시 남아 있는 사료들을 기반으로 퀼트 조각을 맞추듯 이야기를 재구성한다. 1인칭 시점과 3인칭 시점을 혼용해 주관과 객관이 충돌하는 순간을 예리하게 그려 내는가 하면, 실제 기록으로 남아 있는 편지와 픽션으로 구성된 편지를 섞어 놓는 등 사실과 허구를 함께 직조하기도 한다. 19세기 중반은 새로운 정신병 이론이 잇따라 나오고 공립과 사립 양쪽으로 정신병원과 요양원이 설립되던 시기였다. 과학자와 작가 모두가 기억력과 기억상실, 몽유병, 히스테리, 최면 상태, 신경 질환, 꿈의 의미와 같이 이성으로 설명할 수 없는 현상에 열광했다. 애트우드는 이러한 사회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해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거짓인지 분간하기 어렵게 하는 소설적 장치들을 마련하고 독자들에게 수수께끼를 던진다. 그레이스는 과연 누구인가? 그녀에 대해 추측하게 해 주는 온갖 단서를 활용할수록 독자들은 오히려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진다. 그녀는 사람들이 말하듯 악마의 얼굴을 감춘 팜 파탈이었을까, 아니면 순진하고 순결한 소녀였을까.
남성 중심의 가부장적 현실 속에서 자신의 목소리를 찾으려는 여성의 몸부림
너무나 가난한 집, 술과 폭력에 찌든 아버지, 캐나다에서의 새 출발을 꿈꾸며 대서양을 건너는 선상에서 병으로 떠나 보낸 어머니. 이런 환경에서 그레이스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기는커녕 열세 살부터 하녀로 일해야 했다. 도움을 준다고 하는 높으신 ‘나리’들은 무지한 그레이스를 인형 취급하고, 그녀는 재판에서 자신의 목소리가 아닌 그들의 의견에 따라 사건을 진술한다. 그리고 역시 권력을 가진 ‘나리’들의 주장과 결정에 따라 종신형을 선고받는다. 하지만 그레이스가 자신의 입으로 사건을 서술하기를 바란 애트우드는 그녀가 자기 삶을 직접 회고하는 방식으로 소설을 전개한다. 애트우드가 되살려 낸 그레이스의 모습은 재판 기록이나 교도소 일지에 남아 있는 살인 용의자이자 무기수로서의 모습과 사뭇 다르다. 작가는 기록에 잡히지 않는 그레이스의 진짜 자아, 그 내면을 복원해 사건을 다양한 관점에서 분석하고 진실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한다.
19세기라는 시대적 배경, 귀족과 하녀 또는 남성과 여성이라는 불평등한 관계에서 그레이스는 보호받지 못하는 약자이다. 살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 그녀 주위에 있던 남자들은 그녀를 자기 뜻대로 휘두르려고만 한다. 폭력적인 아버지를 비롯하여 친절하게 굴지만 결국 그레이스를 희롱하는 키니어, 거칠고 무뚝뚝한 맥더모트가 모두 그렇다. 수감 중인 그레이스를 찾아와 회고를 이끌어 내는 사이먼 역시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재판 당시 그레이스를 둘러싼 이들이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 멋대로 재단하려 한 것처럼, 사이먼도 그녀를 도마 위에 올려놓고 기억상실증인지 아닌지, 정상인지 비정상인지 진단하려고 한다.
캐나다 최초의 페미니즘 작가로 평가받는 애트우드는 여성이기 때문에 겪는 질곡을 작품에서 여러 차례 다루었다. 『시녀 이야기』의 여성들은 정체성을 잃어버린 채 오로지 기능으로만 존재하고, 부커 상 수상작 『눈먼 암살자』에 나오는 여성들은 사랑하지도 않는 남성에게 팔려 가거나 부질없는 약속에 유린당한다. 『도둑 신부』에서도 여성들은 자신의 욕망을 드러내는 데 어려움을 겪고 남성들의 시선에 갇혀 산다. 그레이스 사건에서 애트우드는 한 여인을 둘러싼 남성들의 폭력적인 시선을 읽어 낸다. 그들은 사실 여부와 관계 없이 그레이스에게서 보고 싶은 모습만을 보았고 그것이 그레이스의 본성이라고 여겼다. 애트우드는 소설 『그레이스』에서 이 왜곡된 시선을 걷어 내고 복잡한 내면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 그레이스를 그리며 그녀에게 자신의 목소리를 되찾아 준다. 무엇이 진실인지는 끝내 알 수 없지만 진실이란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사실이야말로 애트우드가 이 매혹적인 게임에서 독자들에게 전하는 메시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