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칠 카피라이터의 촌철살인 심야일기
<양도둑>은 일상 곳곳에서 마주치는 인생의 의미를 함축적인 글과 위트 있는 그림, 감성적인 사진으로 자유롭게 담아낸 포토에세이다. 저자 이토이 시게사토는 <이웃집 토토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등의 카피로 유명한 지브리스튜디오 대표 카피라이터다. 그가 다양한 분야에서 일가를 이룬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깨달은 삶의 지혜와 평범한 일상에서 수집한 갖가지 생각 모음을 솔직하게 담아낸 이 책은, 얼핏 보면 한밤중에 혼자 노트에 끼적인 듯한 엉뚱하고 유머러스한 글들로 가득해 웃음을 자아낸다. 하지만 카피라이터 특유의 감성으로 툭툭 던지는 개성적인 문장들은 곱씹을수록 진한 맛이 느껴지는 독특한 매력을 뿜는다.
매순간이 소중한 삶, 그 안의 수많은 관계, 인간이기에 느낄 수밖에 없는 미묘한 감정들에 대해 이토이 시게사토가 내놓은 짧고도 묵직한 한 마디인 ??양도둑??은, 바쁜 일상에서도 차 한 잔의 여유를 찾는 이들에게 ‘매일을 다르게 보는 법’을 알려줄 것이다.
<양도둑>은 작지만 완성도 높은 만듦새로 화제를 모았는데 표지화를 그린 세계적인 화가 나라 요시토모는 종이 선정과 디자인, 인쇄까지 직접 꼼꼼하게 감리를 할 정도로 이 책에 큰 애정을 가지고 작업에 임했다. 뿐만 아니라 내로라하는 가수, 시인, 화가, 평론가, 소설가, 캘리그래퍼, 스케이터 등 유명인들이 가세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장식한 각 페이지들은 신선한 재미를 준다. 한국어판에서도 원서의 편집과 제작의 묘를 그대로 살려 소장 가치를 높였다.
[출판사 서평]
작지만 강력하고, 짧지만 여운이 긴, 건조한 말투지만
감성을 자극하는 기묘한 책
이토이 시게사토는 언제나 발칙한 상상력과 기발한 아이디어로 대중을 놀라게 한다. 넘치는 독창성을 바탕으로 카피라이터라는 하나의 직업에 만족하지 않고 게임 제작자, 작사가, 탤런트 등 다방면에서 왕성하게 활동하며 일본 대중문화 분야에서 자신만의 독특한 입지를 만든 만능 엔터테이너이다.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성공도 하고 인정까지 받다니, 그 정도로도 이미 충분히 부러움을 살 만하지만 그런 시게사토 역시 언제나 치열한 현역으로 남기 위해 매 순간을 고민하고 있음을 그의 일상다반사를 기록한 <양도둑>은 여과없이 보여 준다.
저자의 관심사가 워낙 다양하다는 것을 말해주듯 <양도둑>에서도 가족과 친구, 반려견, 일과 꿈, 음식, 여행 등 종횡무진 돌아다니는 그의 화제는 어디로 튈지 예측이 불가능하다. ‘가치에서 자유로워지면’, ‘힘을 사용할 때는’, ‘듣기는 최고의 배려’ 등에서는 인생을 살아오면서 터득한 지혜를 덤덤한 어조로 이야기하는가 하면, ‘여름밤의 수박’, ‘폭풍우를 기다리는 남자’, ‘무허가 시인조합’, ‘고양이와 사귀는 법’ 등에서는 어른이 되어도 여전히 가슴 속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날것의 감성을 고백한다. ‘헐뜯기 벌레’, ‘춤추는 바보에 보는 똑똑이’, ‘초식남을 우습게 보지 마라’ 등 세태를 꼬집는 날카로운 쓴소리도 마다하지 않지만, ‘남은 피자 맛있게 먹는 법’, ‘탄수화물의 노래’, ‘야키니쿠를 먹는 순서’ 등 음식 앞에서 무너지는 평소의 모습을 솔직하게 드러내 보이는 유쾌함도 잃지 않는다. 그리고 이 모든 이야기는 결국 그가 내린 인생에 대한 한 마디 정의로 모아진다. 삶은 모든 순간이 가장 아름다운 때라는 것.
매일 똑같은 일상이지만 애정을 담은 시선으로 찬찬히 바라보았을 때 우리에게 주어진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알아보는 눈이 생긴다는 그의 간결한 말 조각들에는 여유와 통찰이 가득하다.
이 책은 만듦새에서도 저자의 끈질긴 장인정신이 발휘되어 매 페이지마다 글자의 크기나 컬러, 디자인 등을 달리하여 그저 평범한 책이 아니라 작품 한 편을 감상하는 듯한 보는 즐거움이 배가된다. 마치 여백조차 독자에게 말을 건네는 듯 치밀하게 계산된 디자인은 읽는 맛을 더한다. 누구나 순서에 관계없이 이 책의 한 페이지를 펼쳐본다면, 바로 거기에 아마도 자신이 원했던 강력한 말이 담겨 있을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인생은 한 페이지들의 모음이 아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