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부도 체념도 없이 말하거니와,
읽고 쓰는 일은 내 삶의 거의 전부이다!
『몰락의 에티카』에 이른 문학평론가 신형철의 첫 산문집
글을 쓴다는 것은 그 어떤 공동체를 향해 노를 젓는 일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 그의 첫 산문집을 펴낸다. 2008년 12월에 그의 첫 평론집 『몰락의 에티카』가 나왔으니까 햇수로 3년 만에 선보이는 그의 두번째 책이다. 『느낌의 공동체』라는 제목의 그 울림. 앞서 펴낸 전작에서 그는 그 ‘느낌’이라는 지점에 대해 시보다 더 아름다운 문장으로, 소설보다 더 드라마틱한 구조로 우리의 공명을 흔들어놓은 바 있다. “나는 너를 사랑하기 때문에 지금 너를 사로잡고 있는 느낌을 알 수 있고 그 느낌의 세계로 들어갈 수 있다. 그렇게 느낌의 세계 안에서 우리는 만난다. 서로 사랑하는 이들만이 느낌의 공동체를 구성할 수 있다. 사랑은 능력이다.”(『몰락의 에티카』중에서) 그렇게 그는 그 느낌을 짚고, 사랑을 안았더랬다.
그 사랑으로 향하는 ‘느낌의 공동체’라…… 깊은 우물에 눈이 비치는 말이다. 뾰족하기보다 둥글고 삼각형이기보다 원의 뉘앙스를 풍기는 말이다. 뉘앙스…… 어쩌면 이 책을 한마디로 압축하는 단어에 가장 버금가지 않을까 싶다. 느낌이 어떻게 오는가, 하니 느낌은 그렇게 오는 거니까. 느낌은 다만 느끼는 자의 열린 미각에 남는 뉘앙스로 가까스로 짐작할 수밖에 없는 것일 테니.
『느낌의 공동체』는 2006년 봄부터 2009년 겨울까지 그가 보고 듣고 읽고 만난 세상의 좋은 작품들로부터 기인한 책이다. 그가 말하는 좋은 작품이란 “내게 와서 내가 결코 되찾을 수 없을 것을 앗아가거나 끝내 돌려줄 수 없는 것을 놓고 간”, 그래서 희미한 사태를 일으켰던 아름다운 화염의 주동자들이다. “느낌은 희미하지만 근본적인 것이고 근본적인 만큼 공유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을 서럽거나 감격스러워 울게 만든 그 느낌의 원형들을 총 6부로 여기 나눠 담았다. 이른바 시인, 시집, 세상, 소설, 영화, 시의 얼굴로. 그리고 이 사이사이 전주와 간주와 후주라는 부표를 달고 시와 소설과 비평이라는, 여기 담긴 모든 텍스트들의 그 ‘처음’ 그 ‘시작’ 그 ‘맨얼굴’을 다시금 들여다보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있다.
1부는 ‘원한도 신파도 없이’라는 타이틀로 경향신문에 연재했던 것을 모았다. 강정을 필두로 황병승까지 총 10명의 시인을 가나다순으로 배치했는데 이는 일종의 ‘시인소사전’으로 원고지 10장 안팎으로 한 시인과 한 시인의 시세계를 미리보기 식으로 일러주고 있는데, 종래에는 ‘한국시인소사전’이라는 제목으로 한국시사의 중요한 부록이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갖게 하는 기획이다. 어떤 시인의 말마따나 “뒤에 있어서 더 자유롭고 자유롭기 때문에 더 과감한, 본문보다 재미있는” 그 부록 말이다. 2부는 ‘모국어가 흘리는 눈물’이라는 타이틀로 『한겨레21』에 연재했던 것을 모았다. 출간 당시 그의 눈에 가장 핫한 시집과 시대적 분위기에 맞물려 함께 읽었으면 하는 시를 모아 문학과 사회를 한데 비벼냈다. 3부는 ‘유산된 시인들의 사회’라는 타이틀로 대학신문에 연재했던 것을 모았다. 그만의 시사적인 시선이 어디를 어떻게 향하고 있는지 침착한 그의 겨눔부터 명중의 찰나까지 긴장감을 놓지 않으면서도 특유의 미문을 부릴 줄 아는 시사단평의 참신한 전형을 우리에게 선보였다. 4부는 ‘얼어붙은 바다를 깨뜨리기’라는 타이틀로 『시사IN』에 연재했던 것을 모았다. 예서 그는 그가 읽은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고전이며, 앞으로 고전이 되기에 충분한 텍스트에 대한 애정을 확실히 드러내고 있는데 5부 ‘훌륭한 미친 이야기’라는 타이틀로 『풋,』에 연재되었던 영화와 원작이 되는 소설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란히 놓고 읽어도 좋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6부는 ‘만나지 말아야 한다’라는 타이틀로 이문재, 권혁웅, 나희덕, 이수정 시인의 시로 시 읽기의 다양한 방법론을 제시하고 있는데, 이는 다음 평론집의 예고편이자 그 스스로 본업인 평론으로 돌아왔다는 것을 선언하는 장이기도 하다.
『느낌의 공동체』는 비교적 쉽게 읽힌다. 분량도 대부분 두 장 안팎에서 마무리된다. 그렇다고 해서 쉽게 쓰였다는 말이 아니다. 무거운 주제를 가볍게 풀어주는 누군가가 있다면 그의 내공은 상당할 것이다. 이번 책으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이점은 바로 그런 그의 뒤를 작정하고 뒤쫓아볼 용기를 갖게 하는 자신감의 부여다. 바야흐로 읽고 싶고, 쓰고 싶게 만드는 문학의 가장 처음이자 가장 마지막 욕구, 이를 부르는 질투의 책이랄까.
곁들여보건대, 이 책을 읽어나가는 데 있어 반드시 필요한 도구가 있다면 이는 바로 연필이 아닐까 싶다. 연필 한 자루만 있다면 이 책이 곧 내가 되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을 터, 이 봄 밑줄 긋고 싶은 문장들로 한창 꽃잔치라면 이를 따서 한껏 가슴에 새기시라. 그 진물 오래 나를 물들일 것이니, 책이라 함은 평생 그 빛깔의 옷을 우리에게 입혀주는 것이니, 느낌이란 바로 그러한 끼얹음과 끼얹어짐의 뉘앙스일 것이니, 이를 좇아 평생 노를 젓는 우리라는 공동체, 그것이 바로 삶이라는 상징이기도 한 까닭이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