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 세계대전사

제러드 L. 와인버그 · 전쟁
4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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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장판 서문 초판 서문 일러두기 제1장 새로운 전쟁을 향해 제2장 독소의 폴란드 침공과 서유럽 전선 개전, 1939. 9. 1 ~ 1940. 5. 10 제3장 뒤집어진 세상 제4장 전쟁의 확대, 1940 ~ 1941 제5장 동부 전선과 전황의 변화, 1941. 6 ~ 1941. 12 미주 색인 지도 목록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여섯 대륙의 전쟁을 포괄한 이 책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연구 가운데 진정한 역사적 걸작이다. 전투, 전술, 작전, 전략. 전장에서 대결을 펼치는 뛰어난 장군들과 전선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병사들. 전쟁은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국운을 짊어지고 역사를 움직인 각국의 지도자, 루스벨트, 처칠, 히틀러, 스탈린. 그리고 수많은 중소국가의 지도자들이 자신의 국가를 걸고 벌이는 대결! 그 역사의 현장을 서술한다. 와인버그는 1차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식민지에 대한 구조변화를 시작으로 2차 세계대전을 모든 방면에서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고, 추축국, 연합국과 중립국이 행한 일들이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함께 설명한다. 이 책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세계의 한 구석에서 발생했던 어떤 사건이 멀리 떨어진 또 다른 지역에서 발생한 사건들과 어떻게 연결되어있는지를 설명하는 최초의 시도라는 점에 있다. - 미국 굿 리즈 추천사 역사를 짊어진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패튼, 주코프, 만슈타인, 롬멜, 몽고메리처럼 전장에서 활약했던 사람들을 기억한다. 하지만 그들을 이끌던 지도자들은 누구인가? 루스벨트, 처칠, 히틀러, 스탈린, 무솔리니, 히로히토, 도조 히데키의 이름은 누구나 알고 있다. 하지만 그들 외에도 전쟁에 큰 영향을 끼친 그리스의 메탁사스, 루마니아의 이온 안토네스쿠, 헝가리의 호르티 제독, 유고슬라비아의 파울 대공, 불가리아의 보리스 국왕, 아일랜드의 이몬 데 발레라,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얀 C. 스뮈츠, 유고슬라비아의 파르티잔 지도자 티토, 팔레스타인의 대 무프티 하지 아민 알 후세이니, 이라크의 총리 알-가일라니, 인도 국민국 지도자 찬드라 보스, 만주국의 푸이, 이집트의 파루크 국왕 등은 그들의 행적에 비해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동안 알려지지 않았던, 세계적 혼돈기에 국가의 방향을 좌우했던 권력자, 지도자들의 행보와 그 과정에서 파생된 수많은 사건들과 그 진실들을 확인해 보자. 패전한 독일은 과도한 배상금에 신음했을까? 1조 마르크 = 감자 1자루. 우리가 알고 있는 1차 세계대전 직후 독일의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상징하는 수치다. 그간의 통설에 의하면 연합국이 강요한 과도한 전쟁 배상금이 끔찍한 하이퍼인플레이션을 야기했고, 나치당은 경제적으로 피폐해진 독일인들의 마음을 파고들었다. 과연 그럴까? 평화 협상 과정에서 제안된 변화들은 독일의 상대적 지위를 약화시키기 보다는 강화시켰다. 그 대표적 사례가 배상에 대한 문제였다. 독일은 자국 통화의 가치를 파괴하는(부분적으로는 자신들이 지급 능력이 없음을 보여주기 위한) 방식으로 지급을 거부해 배상의 상당 부분을 털어냈고 그나마 지급된 배상도 그 이상의 돈을 외국에서 빌려 충당했으며 이 빚의 대부분도 1930년대에 상환을 거부했다. -본문에서 와인버그는 연구를 통해 그러한 통설이 잘못되었음을 설명한다. 하이퍼인플레이션은 결국 배상금을 줄이기 위해 독일이 선택한 결과였으며, 배상금은 대부분 배상금을 지불해야할 나라들로부터 융자한 자금을 통해 상환하거나, 상환 자체를 거부했다. 민족자결주의는 과연 성공했을까? 미국의 우드로 윌슨 대통령이 주창한 민족자결주의는 1차 대전 이후 약소민족들에게 독립의 희망을 주었으며, 한국에서도 3.1 운동의 불씨를 당기고 임시정부 창립으로 이어지는 큰 족적을 남겼다. 그러나 민족자결주의는 2차 세계대전의 계기로도 작용했다. 유럽의 강대국 가운데 가장 마지막으로 국가를 성립한 독일은 민족자결주의 원칙이 평화 협상의 근본 바탕으로 채택되면서 러시아 다음인 유럽 2위의 인구 규모를 온전히 유지했고 자국 영토에서 전쟁을 치른 주변국들과 달리 국토에 거의 피해를 입지 않고 전쟁에서 살아남았다. 독일도 전쟁으로 약화되기는 했지만 다른 참전국들에 비하면 양호한 편이었으며 상대적 잠재력은 1913년보다 1919년이 오히려 더 강했는데, 민족자결주의 원칙과 반전 분위기가 승전국들이 독일을 갈라놓지 못하도록 막고, 중앙과 동부 유럽에 예전과 같은 강대국을 재건하거나 새로운 강대국을 만들지 못하게 했기 때문이다. -본문에서 독일이 패전 이후 새로운 전쟁을 시도할 수 있었던 잠재력의 바탕은 바로 민족자결주의를 1차 세계대전의 전후 지침으로 삼은 연합국의 선택이었다. 그 결과 독일을 견제할만한 능력을 갖춘 중부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과 동부의 러시아 제국, 그리고 그들의 영향력 하에 있던 국가들은 잘게 갈라졌으며, 그 결과 중동부 유럽 일대는 약소국들의 집합이 되었고 분단되지 않은 독일은 중부 유럽에서 가장 강력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다. 아이러니한 전쟁의 시작 2차 세계대전 이전, 독일의 외교적 승리로 사람들이 평가하는 뮌헨 협정. 하지만 히틀러는 뮌헨 협정 자체를 실패로 여겼다? 사람들은 1938년의 뮌헨 협정을 독일의 승리이자 침략행위 앞에 무릎을 꿇었던 굴욕적 사건이라 생각하지만 정작 히틀러는 뮌헨 협정 당시에 크게 실망했으며, 이후에는 자신의 경력에서 가장 큰 실수로 받아들였다. 당시 히틀러는 계획대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했고, 1939년이 되어서야 체코슬로바키아의 남은 지역들을 정복한 뒤 1938년에 자신을 좌절시켰던 요소들을 모두 배제하며 전쟁을 향해 나아갔다. -본문에서 와인버그는 그간의 통설과 달리 히틀러가 유럽에서 전쟁을 시작하려던 시기가 폴란드 침공 당시가 아닌, 바로 주테텐 지방 할양을 요구했던 뮌헨 협정 채결 시점이었다고 주장한다. 히틀러가 지키지도 않을 약속이 적힌 협정문을 들고 평화를 가져왔다고 말한 달라디에와 체임벌린의 결정이 그 당시에도 과연 현대처럼 어리석은 결정으로 여겨졌을까? 와인버그는 체코슬로바키아에 대한 히틀러의 외교적 공작, 뮌헨 협정 과정에서 오간 각국의 치열한 외교적 노력, 그 와중에 소외된 체코슬로바키아의 여러 사건들을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뮌헨 이후 폴란드를 상대로 전쟁에 돌입하는 히틀러의 행동 방식을 통해 히틀러의 진정한 의도를 다시 생각해볼 수 있게 한다. 왜 프랑스는 소극적이었을까? 라인란트 철수, 뮌헨 협정, 폴란드 침공 당시 가짜전쟁, 6주 만의 항복까지. 1차 대전의 승자이자 나폴레옹이 건설한 유럽 최강의 육군을 가진 프랑스는 왜 무기력했을까? 프랑스는 사상자와 물적 피해를 포함한 모든 면에서 전쟁의 부담을 가장 크게 떠안았다. 다른 강대국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승리할 수 있었던 프랑스는 자국의 한계를 절감하고 전후의 세계를 불안한 시선으로 바라봐야 했다 (중략) 전쟁 직후 프랑스 외교관들은 라인란트 영구 점령을 방해하는 대신 프랑스 방어를 위한 군사동맹을 맺겠다던 영국과 미국의 제안으로부터 조금이라도 이익을 건지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였다. 그러나 국내에 산적한 경제적-사회적 문제들은 프랑스가 단호하고 일관된 외교정책을 펼치지 못하게 방해했다. 따라서 프랑스 정부는 독일에 대해 단호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약점만 드러냈으며 그 결과 지난 전쟁의 상처를 회복하지 못한 채 불확실하고 절망적인 시기를 맞이했다. -본문에서 와인버그는 1차 세계대전의 상처와 프랑스 국민들 사이에 퍼져있던 감정적인 영향, 정부의 패배주의 등 다양한 문제들이 프랑스를 소극적으로 행동하게 하고 끝내 패배를 불러왔다고 지적한다. 당대의 프랑스는 영국만큼이나 많은 해외식민지와 그 주둔군, 동원 가능한 전력, 기술적 우위 등을 바탕으로 독일과 맞설 저력이 있었지만, 프랑스인들은 그러지 못했다. 그 시각 남아프리카에서는? 그동안 우리는 당시의 전쟁을 세계대전이라 부르면서도 언제나 유럽의 모습만을, 그리고 부분적으로 태평양 전쟁만을 보아왔다. 하지만 와인버그는 이 전쟁이 왜 세계대전인지 잊지 않았다. 당시 남아프리카 연방(당시는 그렇게 불렸다)의 내각은 전쟁에 참여하지 않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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