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장 걷게 하라, 그러면 많은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
서울시는 지금 자동차 중심의 도시에서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로 바꾸기 위해 안간힘이다. 홍대앞, 상수동, 이태원, 가로수길 등 서울에서 지금 가장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은 보행자 중심의 길이다. 상권을 홍대에 빼앗긴 신촌이 선택한 방법도 차를 막아 보행자 전용도로를 만드는 것이었다. 또 박원순 서울시장은 뉴욕 하이라인에서 서울역 고가공원 계획을 발표하고 자동차도로를 걷을 수 있는 길로 바꾸려 애쓰고 있다. 경제적 이익과 정치적 목적 등이 뒤섞여 있지만 도시와 지역이 흥하는 가장 간단하고도 확실한 방법이 “걸어다닐 수 있게” 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제프 스펙의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원제: Walkable City)는 어떻게 해야 사람들이 도시에서 걸어다니게 되는지를 이야기하는 책이다. 미국 여러 도시에서 도시 설계와 도시 재생에 참여한 저자는 추상적인 이론과 탁상행정이 아니라 실제 사례를 중심으로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않아야 하는지를 조목조목 지적한다. 저자는 “당장 걷게 하라! 그러면 많은 보상이 뒤따를 것이다”고 단언한다.
저자는 얼마나 맘편하게 걸어다닐 수 있는지, 그 척도를 나타내는 ‘워커빌리티’가 그 도시의 흥망성쇠를 좌우한다고 말한다. 실제로 워커빌리티 점수를 매기는 사이트는 현재 미국 내에서 가장 유명한 사이트 중 한곳이 되었다. 워크스코어 사이트에서는 보행 점수에 따라 도시를 5개 카테고리로 분류하는데(26쪽), 점수에 따라 부동산값이 정해지는 경향까지 더해져 하루 방문자 수가 400만이 넘는다고 한다. 그곳에서 워커빌리티 100점을 받은 도시는 대표적으로 뉴욕. 50점 이하를 받은 도시들이 대개 살기에 불편하다는 평가를 받는데, 수도 없이 많은 교외지역이 10점 이하를 받는다. 매 쪽마다 생생한 이야기들이 넘쳐나는 이 책은 1부를 통해 ‘워커빌리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왜 중요한지를 설명한 다음, 2부를 통해 워커빌리티 100점을 받기 위한 10가지 실천 방안들을 제시한다.
이동수단이 삶의 방식보다 중요하다
제프 스펙은 우리에게는 『킨포크』라는 요리책으로 알려진 도시 포틀랜드를 예를 들며 워커빌리티가 얼마나 중요한지 이야기한다. 다른 도시들이 성장을 위해 앞다투어 고속도로를 건설하던 수십년 전부터 포틀랜드는 대중교통시스템과 자전거 활성화에 투자했다. 1인당 이동거리, 1인당 자동차에 쓰는 비용, 도로 위에 머무는 시간 등 각종 지표와 통계를 통해 이동 수단의 변화가 도시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꼼꼼히 추적한다. 어떤 지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면 인구가 증가하고 그 이후 삶의 질이 높아진다는 식의 발전 단계는 옛날 이야기다. 지금은 정반대로 더 높은 삶의 질이 보장되어야 한다.(38쪽) 다른 모든 조건을 초월하는 것이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의 위대한 힘’이라고 말한다. 이는 끝없이 이어진 교외와 공동화된 도심지가 만연한 미국 도시에 내려진 진단이지만, 국내도시에도 거의 그대로 유효하다. 부산, 대구, 전주, 진주 등 도심지의 인구감소와 경제 활동 둔화로 골치를 썩지 않는 도시가 없을 정도다. 인구 감소와 신도시 개발이 한계에 달한 지금 “걸어다닐 수 있는 도시” 만들기는 한국의 과제이다.
저자에 따르면 전기자동차는 시작부터 잘못된 대안일 뿐이다. 자동차는 단지 연비의 문제가 아니라 자동차 운행를 위한 엄청난 기반 시설의 건설과 유지를 요구한다. 낭비되고 오염되는 근원은 도로에 있는 연비 나쁜 자동차가 아니라, 이 자동차로 가능해진 모든 일들이다. 교외도시, 새 도로, 과도한 비용이 드는 비효율적인 전력망, 똑같이 반복되는 상점과 학교, 거리에 버리는 시간…. 저자는 “이동수단이 삶의 방식보다 더 중요하”고 아울러 “이동 수단이 삶의 방식 자체를 결정한다”고 단언한다.(59쪽)
워커빌리티의 10단계
제프 스펙의 지적대로 대부분의 도시 계획은 어떤 문제를 해결하거나 개선하는 데 집중한다. 교통체증이 심해지면 도로를 넓히고 혼잡비를 부과한다. 자동차 소음이 심각하면 방음벽을 설치하고, 야간범죄율이 높아지면 가로등을 설치하고 순찰을 강화한다. 하지만 그가 보기에 이 모든 것은 ‘워커빌리티’를 개선함으로써 해결할 수 있는 문제들이다.
1단계: 차를 두고 다녀라
보행자를 위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 해야 할 첫 번째 일은 당연히 차를 두고 다니는 것일 것이다. 저자는 교통체증을 해소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생각이 얼마나 허구인지를 하나하나 지적한다. 일례로 고속도로 투자액이 높을수록 도시의 자산가치가 떨어진다는 사실에 주목한다.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들이 어디에 있는지보다 고속도로 투자액의 차이에 따라 도시의 활력이 다르다는 것이다. 교통량 증가 중 상당량은 도로를 건설했기에 생기는 ‘만들어진 수요’이며 오늘날 도시계획에서 가장 불필요한 작업은 교통체계 연구라는 도발적인 주장을 펼친다. 저자는 “우리의 도시는 단지 자동차가 통과하는 곳이 아니라 도착하기 위한 장소가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2단계: 용도를 섞어라
도시의 땅을 용도에 따라 엄격하게 나누는 조닝(zoning) 대신 용도를 섞는 것이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드는 두 번째 방법이다. 활기 있는 도심을 만들기 위해서는 균형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답은 대개 주거라는 것이 저자의 조언이다. 세금 감면, 토지 거래, 입주 혜택 등으로 기업을 유인하는 관례적인 제로섬 게임은 더 이상 사업체를 도시로 끌어들이기 위한 좋은 전략이 되지 못한다. 더 싼 세금이 있는 곳으로 얼마든지 옮겨갈 수 있기 대문이다. 적정한 가격의 주택을 더 많이 건설하고 거주자들이 원하는 공공시설을 조성하는 것이 거주자들을 도심으로 끌어들이는 최선의 방법이다.
3단계: 주차할 권리를 쟁취하라
세 번째 조언은 주차 문제를 해결하는 데 급급하지 말고 도시 전체적인 차원에서 이 문제를 접근하라는 것이다. 용도별, 지역별 주차장 의무 설치 제도 등의 모순과 난점을 지적한 뒤, 저자는 캘리포니아 남부의 두 도시를 비교한다. 비슷하던 두 지역이 주차장 제도를 바꾸면서 어떻게 극적으로 달라졌는지를 통해 저렴하고 넓은 주차장이 결코 능사가 아니라는 것을 이야기한다.
4단계: 대중교통 시스템을 작동시켜라
대중교통 이용 비율이 지극히 낮은 미국의 경우와 한국의 도시를 나란히 비교하기는 힘들지만, 대중교통은 걷기와 직결된다는 지적은 귀담아들을 만하다. 거의 모든 대중교통 이용은 걷기로 시작하고 걷기로 끝난다. 결과적으로 걸어서 접근할 수 없는 대중교통 수단은 이용률이 지극히 떨어지기 마련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우리는 워커빌리티와 동떨어진 대중교통 체계를 도처에서 만난다(용인의 경전철, 차를 타고 가야 하는 자전거 도로나 보행전용 도로 등).
5단계: 보행자를 보호하라
저자는 보행자 안전을 위한 다양한 실제 사례를 소개한다. 블록의 크기가 교통사고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에서부터, 큰 도로를 다이어트해 작은 도로로 만드는 방법, 좌회전 반경에 관한 조언, 교차로에서 운전자가 보이는 시야각과 도로의 형태 등 실제로 적용 가능한 아이디어들을 제시한다.
6단계: 자전거를 환대하라
흔히 사람들은 날씨와 지형 때문에 자전거가 도시의 주요한 교통수단이 되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저자는 알래스카 바로 아래에 있는 유콘이 샌프란시스코보다 자전거 통근자가 두 배나 더 많고, 언덕이 많은 샌프란시스코가 평지 도시인 덴버보다 세 배나 자전거 이용률이 높다고 말한다. 자전거 도시를 만드는 데에는 환경이나 문화보다 물리적 요소가 훨씬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자전거가 전용도로를 이용해야 하는지 아니면 자동차와 함께 다니는 것이 바람직한지, 도로폭은 어때야 하는지 등등 구체적인 제안들이 이어진다.
7단계: 공간을 만들라
걸을 수 있는 도시를 만들기 위해서는 개별 건물의 형태가 아니라 공간의 형태를 중요하게 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