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영화평론가 정성일의 첫 번째 평론집 그리고 ‘올드독’ 정우열과의 멋진 영화적 듀엣! “아무것도 아니면서 동시에 그 모든 것, 우리는 그것을 영화라고 부른다.” “영화에 관한 첫 번째 책을 묶으면서 나는 이 책을 어떤 주제, 어떤 토픽, 어떤 시기, 어떤 감독, 어떤 테마에 매달리지 않기로 했다. 만일 이 책에 실린 글들을 묶는 유일한 고정점이 있다면, 그건 우정이다. 영화에 대한 나의 우정, 영화가 내게 준 우정, 영화를 둘러싼 우정. 오로지 영화만이 내 삶을 외롭지 않게 곁에서 안아 주었다. 나는 이 책을 만들면서 내가 맛본 우정을 담고 싶었다.”-책머리에 중에서 세상에는 많은 영화평론가가 있다. 그러나 개별 작품의 비평을 넘어 영화 매체와 우리 삶의 관계를 고민하고, 위기와 한계와 오해에 직면한 영화, 버림받은 영화의 운명을 끊임없이 방어하며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평론가는 손꼽는다. 올해로 26년째 영화평론가로 살고 있는 정성일. 영화의 운명은 곧 그의 운명이기도 하다. 그는 《로드쇼》와 《키노》의 편집장으로서 한국 사회의 새로운 시네필 문화를 형성하는 데 막대한 영향을 끼쳤고, 지난해에는 자신의 첫 장편영화 <카페 느와르>를 찍었다. 여전히 아직 오지 않은 미래의 영화를 기다리며 세상에 대한 믿음을 늦추지 않는 시네필의 ‘큰형님’, 영화계의 ‘전사戰士’ 정성일. 이 책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는 그의 첫 평론집이다. 정성일은 임권택 감독에 관한 두 권의 인터뷰집 등 그동안 여러 책을 엮거나 함께 쓰기는 했지만 단독 평론집은 처음이다. 왜 지금까지 정성일은 영화평론집을 한 권도 내지 않은 것일까? 그는 시간을 견디는 것은 영화이지 평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영화평은 시간과 함께 흘러가고 늘 새로 쓰여져야 한다는 것. 책을 낸다는 것이, 생각이 더 나아가지 못하고 사유의 정지를 요구하는 일이라면 굳이 내야 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었다. 이것이 그가 지금까지 평론집 출간을 미뤄 온 이유의 전부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그의 평론집을 기다렸다. 그의 평론집이 없다는 사실을 의아해했다. 어쩌면 정성일은 첫 평론집을 내면서 죽음, 혹은 정지에 저항하는 책을 상상하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무엇보다 영화가 자신에게 준 우정과 기쁨의 순간을 그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그가 선택한 방법은 영화를 둘러싼 우정을 고스란히 책으로 옮겨오는 것이다. 그는 지구상에서 영화를 가장 사랑하는 강아지 ‘올드독’의 지혜를 자신의 글 가까이에 두고자 했다(“이 지혜로운 강아지는 종종 영화의 핵심을 건드리면서도 시침 뚝 떼고 모르는 척 영화 대신 하늘에 흘러가는 구름을 쳐다보고, 가끔은 영화를 말하면서 삶의 진실을 만진다. 나는 올드독의 그림을 볼 때마다 종종 감동을 받는다. 그건 전적으로 영화를 오랫동안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에서 오는 지혜이다. 나는 그 지혜를 내 글 곁에 두고 싶었다. 이것이 내 솔직한 욕심이다”-책머리에 중에서). 올드독은 만화가 정우열의 페르소나 캐릭터이다. 정우열은 정성일을 자신의 ‘영화적 아버지’라고 고백하며 그를 향한 존경과 우정의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 이제 정성일과 ‘올드독’ 정우열은 영화라는 세상이 우리에게 준 우정에 대해서 글로, 그림으로 이야기한다. 영화를 경유해서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는 것 “세상과 영화 사이의 배움, 나는 그것을 고백하고 싶었다” 책은 영화를 생각하는 ‘좌표’, 세상을 경험하는 ‘감각’, 영화로부터 구하는 ‘배움’에 관한 글 38편과, 정성일이 올드독 정우열에게 보내는 ‘우정의 프롤로그’, <카페 느와르>를 찍은 후 그의 영화 글쓰기에 관한 새로운 0도라고 할 수 있는 ‘自問自答-心情’으로 이루어져 있다. 정우열은 이에 남다른 고심과 망설임으로 영화적 발견의 순간을 카툰과 일러스트로 화답한다. 좌표 예술 혹은 매체로서의 영화 그 자체를 사유하는 글 11편이 실려 있다. 주로 시네필의 윤리와 임무, 평론가의 애티튜드를 지속적으로 질문하는 글들이다. 영화 담론의 위기와 이에 대한 근심을 피력하는 글 “영화비평에 대한 근심과 다시 시작한다는 것”을 시작으로, 영화광을 호명하는 사회적 방식과의 투쟁, 영화가 담고 있는 세상이라는 질문, 위대한 예술의 전통 속에서 생각해 보는 영화의 존재론, 우리가 지금 아시아 영화를 상상해야 하는 이유, 영화를 볼 것인가 말 것인가 라는 윤리의 문제 등에 대한 글들이 펼쳐진다. 감각 세상이라는 살과 감정을 어루만지는 하나의 촉수가 되어 깨달음을 주는 영화적 순간에 관한 글 12편이 실려 있다. 저자의 유년 시절의 스펙터클이었던 장철 영화에 바치는 막무가내 고백담, 타인의 영화적 취향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라는 문제, 스타를 즐기는 방식에 관한 고찰, 오즈 야스지로가 지속을 포기하고 기어이 쇼트를 나눌 때 깨닫는 세상의 질서, 영화를 하는 사람들은 ‘같은 동네에 사는 친구’라는 가르침을 준 구로사와 아키라에 대한 기억, 홍상수와 에릭 로메르의 영화가 교차하고 엇갈리는 지점에 대한 흥미로운 목격 등이 펼쳐진다. 배움 이 시대를 대표하는 영화 작가들에게 바치는 오마주이자 그들로부터 구하는 배움에 관한 글 13편이 실려 있다. 로베르 브레송, 장 뤽 고다르, 에릭 로메르, 클로드 샤브롤, 자크 리베트, 장 마리 스트로브와 다니엘 위예, 테오 앙겔로풀로스, 오즈 야스지로, 허우샤오시엔, 구로사와 기요시, 차이밍량, 가와세 나오미, 그리고 채플린. 여기에 실린 글들은 ‘영화적인 것이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에 대해서 하나의 답이 되어 준 세계에 대한 우정 어린 고백이자, 지지와 동조이다. 두 개의 인터뷰, 그리고 “自問自答-心情” 좌표와 감각 사이, 감각과 배움 사이에 간주곡 형태로 지아장커, 장률과의 인터뷰가 자리한다(“間-지아장커와의 대화”, “間-장률과의 대화”). 이 두 개의 인터뷰는 나쁜 세상 속에서 좋은 영화를 만들기 위해 어떠한 용기가 필요한지를 보여 준다. 그리고 정성일이 <카페 느와르>를 찍은 후 처음으로 쓴 글로, 영화를 연출한 이후 영화비평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절박한 심정으로 웅변하는 “自問自答-心情”이 책의 마지막에 놓인다. 정성일은 <카페 느와르> 11회 차 촬영 현장에서 생각하지 못한 난관에 봉착했다. 감독으로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순간. 하지만 그 결단이 성립될 수 있는가라는 문제. “自問自答-心情”은 그날의 시행착오와 배움에서 시작한다. 그리고 거기서 영화를 쓴다는 것과 영화를 찍는다는 것이 아주 가까운 거리에 있다는 사실을 영화의 역사(로셀리니, 히치콕, 에이젠슈테인, 오즈 야스지로, 고다르, 타르코프스키……) 안에서 구하는 긴 호흡의 독백이다. “언젠가 세상은 영화가 될 것이다”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책의 제목은 철학자이자 영화를 사랑한 들뢰즈가 쓴 글에서 빌려 온 것이다. 정성일은 들뢰즈의 글과 생각으로부터 많은 배움을 얻었고, 세상과 영화 사이의 배움에 대해서 깊은 공감을 표했다. 그는 “그 영화를 사랑하는 건 그 영화가 세상을 다루는 방식을 사랑하는 것이며, 영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고 단언한다. 시네필들의 미치광이 같은 사랑이 돈 후안의 사랑과 갈라서는 지점이 바로 거기라고 말한다. 행동을 완수하기 위해서 죽음의 시간으로 들어서는 듯한, 거의 목숨을 건 영화 읽기. 정성일의 평론집을 기다려 온 독자들은 영화라는 매체에 대해서 완전히 새롭게 생각할 기회를 마련해 준 정성일의 ‘열정 혹은 수난’으로부터 영화를 사유하는 계기와 시간을 다시 한 번 만들어 낼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