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돈키호테』에 우연으로 들어앉은 이야기란 하나도 없다.”
『돈키호테』 완역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종합 해설서
완역본 『돈키호테』의 번역가이자 연구자인 안영옥(고려대학교 스페인어문학과) 교수가 쓴 가장 종합적인 『돈키호테』 해설서이다. 2014년 열린책들에서 출간된 저자의 완역본 『돈키호테』(전2권)는 현지답사와 충실한 번역과 각주, 참신한 문장으로 많은 호평을 받았고, 국내 번역된 『돈키호테』 가운데 가장 많이 애독되고 있다. 『돈키호테를 읽다』는 『돈키호테』 완역 이후 2년 만에 내놓은 저술로, 번역하면서 달은 840개의 각주에 미처 담아내지 못한 『돈키호테』의 숨은 메시지를 모두 담았다. 세르반테스의 삶과 시대를 검토하는 것은 물론, 패러디와 암시 속에 가려진 작가의 의도와 작품의 미학까지 깊숙이 파고든다. 전공자로서, 국내에 제대로 된 『돈키호테』 이론서가 없다는 데 무안함을 토로하던 저자는 이제 숙제 하나를 마친 셈이다.
우리가 읽은 『돈키호테』는 빙산의 일각에 지나지 않는다!
이 해설서는 총 2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에서는 세르반테스가 액면으로 밝힌 『돈키호테』에 대해 말한다. 기존 기사 소설의 패러디라는 작가의 집필 목적에 따라 기사 소설들을 소개하고, 『돈키호테』에 대한 기존의 평가와 작품의 구조를 밝히며 작품 내용을 요약?해설하면서 패러디 양상을 정리한다. 독자들은 상호 텍스트성, 메타문학, 마술적 사실주의, 독자의 초대와 작가의 실종 등 현대 문학에서 나타난 『돈키호테』의 혁신적인 요소들을 두루 살필 수 있다.
제2부에서는 세르반테스가 기사 소설을 패러디한다는 구실 아래 숨겨 놓은 메시지를 테마별로 밝힌다. 왜 작가는 미친 편력 기사를 주인공을 내세웠는가? 그의 세 번의 출정과 귀환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왜 그는 광인 돈키호테가 아닌, 제정신으로 돌아온 알론소 키하노로 죽음을 맞는가? 또한 작품 속 돈키호테가 토요일마다 먹는 돼지고기와 이발사로부터 빼앗은 대야 투구, 산초의 바라타리아 섬 통치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저자는 우리가 읽은 『돈키호테』는 빙산의 일각이며, 세르반테스 당대의 현실과 그의 독서 목록을 함께 살펴봐야지 책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에 주어진 작은 테마들은 『돈키호테』라는 빙산의 몸체를 읽어 내기 위한 단서들이다.
위작보다 못한 취급을 받은 『돈키호테』
『돈키호테』는 전편 『기발한 이달고 돈키호테 데 라만차』(1605)와 속편 『기발한 기사 돈키호테 데 라만차』(1615)로 이루어져 있다. 전편 『돈키호테』는 당시 3만 부가 팔릴 만큼 출간 후 엄청난 인기를 누렸고, 이후 영어(1612), 프랑스어(1614), 이탈리아어(1622), 네덜란드어(1657) 등으로 번역?소개되었다. 아베야네다라는 필명의 작가가 위작 『돈키호테』 속편(1614)까지 썼을 정도다. 하지만 그런 인기와는 별개로, 당대에 『돈키호테』에 가해진 비평은 차라리 비난에 가까웠다. 대중 작가이자 스페인 국민극의 아버지 로페 데 베가는 고 했고, 스페인 바로크 미학을 정리한 발타사르 그라시안은 <진창에 진흙을 더하는 일이자 더 큰 바보로 한 작은 바보를 세상에서 제거하고자 한 것>이라고 혹평했다. 심지어 18세기 내내 스페인 한림원(우리나라로 치면 학술원)은 세르반테스의 진품에 대해선 몰이해와 홀대로 일관하고, 위작 『돈키호테』를 세르반테스의 진품보다 더 뛰어난 작품으로 떠받들었다.
왜 당대의 문인들은 세르반테스를 인정하지 않은 걸까? 이 책은 당시 스페인을 휩쓸었던 <순혈주의> 광풍에서 답을 찾고 있다. 세르반테스가 활동했던 펠레페 2세(재위 1556∼1598년) 시절, 무적함대의 위용을 자랑하던 스페인은 조상 때부터 순수 기독교인의 피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순혈주의>에 사로잡혀 있었다. 순수한 기독교도의 피를 가진 가문인지 유대교나 회교도인(무어인) 피를 물려받은 가문인지를 캐내 차별을 두고, 끊임없이 자기 검열을 요구했다. 세르반테스와 같이 개종한 유대인 가문의 후손들은 자신들이 충실한 기독교인임을 다른 방식으로라도 증명해야 살아남을 수 있었다. 종교인이나 성경 주석자가 되거나(세르반테스의 조부 후안 데 세르반테스는 종교 재판소에서 변호사로 일했다), 일상에선 『돈키호테』에서 그려지듯 주기적으로 돼지고기를 식탁에 올려놓아야 했다.
그런 점에서 『돈키호테』는 위험한 책이었다. 비록 기사 소설의 패러디라는 가면을 쓰고 있지만, 이 책엔 종교부터 정치, 사회, 예술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현실과 사상을 뒤흔들 다양한 개혁안을 담고 있었다. 당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에 아부하던 비평가들이 『돈키호테』에 담긴 세르반테스의 열정을 알아보고, 그것이 두려웠을 거라는 게 저자의 짐작이다. 로페 데 베가와 같은 일군의 문인들이 그를 음해하는 촌평을 내놓고, 아베야네다라는 익명의 작가가 다분히 체제 옹호적인 성격을 띤 위작 『돈키호테』로 진짜에 반기를 든 이유다. 저자는 말한다.
기력(棋力)에 따라 달라지는 『돈키호테』 읽기
레판토 해전에서 왼팔을 잃고, 귀환 중 터키 해적에 붙잡혀 5년간의 포로 생활을 경험한 세르반테스. 서른세 살에 귀환한 조국은 그에게 숨 막히고 두려운 공간이었다. 중남미로 보내 달라는 두 차례 청원도 거절당하고, 징발관으로 복무 중 교회의 밀을 징발했다는 이유로 파문당한다. 심지어 가족의 일에 연루돼 무고하게 옥살이까지 한다. 저자는 말한다. 세르반테스는 이런 화려한 제국 뒤에 감춰진 비참한 현실을 글로 담아내고자 했다. 결국 당국의 눈을 피하기 위한 방법이 패러디였고, 진실과 우롱, 광기와 제정신, 희극과 비극 간의 끊임없는 역설로 당대의 현실을 녹여 냈다. 20세기 스페인의 지성 호세 오르테가가 <영웅적인 위선>이라 평한 것처럼, 자기 양심을 거스르지 않으면서도 종교 재판의 검열에 걸리지 않기 위해 작가는 『돈키호테』에 감쪽같은 가면을 씌운 것이다.
고전 가운데 『돈키호테』처럼 폭넓게 읽히는 책도 드물다. <고전>이란 이름을 단 작품치고 어렵지 않은 게 드물지만, 읽어 낼 수만 있다면 그보다 더 독자의 지적?정신적 성장을 가져오는 것도 없다. 『돈키호테』는 독자의 인간적 성숙도나 지적 능력, 인생 경험과 독서 수준에 따라 다른 의미와 즐거움을 선사하는 작품이다. 저자가 바둑판에 비유하는 이유이다.
이 책은 『돈키호테』에 대한 좀 더 깊은 독서를 제공하기 위해 쓰였지만, 독자들에게 해석의 가이드라인을 주려는 의도는 없다. 고 말하는 저자는 그 속에 담긴 여러 겹의 이야기를 읽어내 보라고 독자들을 독려한다. 완역본이든 어린이판이든 어느 집에나 책장 한구석엔 『돈키호테』 놓여 있을 것이다. 저자의 지적 내공과 열정이 녹아 있는 이 흥미로운 해설서는 『돈키호테』를 아직 읽지 못한 독자는 물론, 이미 읽은 독자들이 책장 위에 오랫동안 꽂혀 있던 『돈키호테』를 다시 집게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