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문호 도스또옙스끼의 장편 소설의 세계를 맛보기 위해 준비된 '전채'요리
도스또옙스끼는 장편 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중단편은 이러한 작가의 명성 탓에 거의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이 책에 실린 도스또옙스끼의 중단편들은 대문호의 장편들을 읽기 전 미리 맛보는 전채 요리와 같다. 장편 소설에서는 맛보지 못하는 인물 형상, 자연에 대한 시적인 묘사와 감상, 희극적인 에피소드 등 아기자기하고 소소한 읽을거리를 접하게 된다. 도스또옙스끼의 심오한 사상 혹은 무거운 주제 등에 주눅이 든 독자라면 이 책에 실린 4편의 중단편을 통해 작가의 색다른 '가벼움'과 '유머코드'를 접할 수 있을 것이다.
뿌쉬낀하우스에서는 다양한 러시아 문학작품을 국내에 소개하기 위해 러시아 문학전집 '뿌쉬낀의 서재'를 기획하였다. 시리즈의 두 번째 책인 도스또옙스끼의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은 도스또옙스끼 탄생 200주년을 기념한 책으로 작가의 숨겨진 중단편 소설들을 엮은 선집이다.
도스또옙스끼는 장편 소설의 대가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데뷔작 『가난한 사람들』을 제외한 초기 중단편들에 대해서는 작품의 예술성을 논하기조차 꺼리는 것이 비평계의 관례처럼 굳어져 왔다. 사실 데뷔작 이후 작가는 극도의 빈곤 속에서 창작의 위기를 겪으며 글을 쓴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이러한 상황속에서 작가는 다양한 소재와 형식의 소설을 과감하게 실험했다.
「남의 아내와 침대 밑 남편」의 주인공은 의처증이 있는 남편이다. 그는 고상하고 교양있는 신사인 척하지만 사실 그는 질투심 많은 소심한 남자일 뿐이다. 작가는 정부를 기다리는 젊은이와의 만남, 남의 집 침대 밑에 숨게 된 상황 등 주인공에게 일어나는 황당한 사건들을 통해 질투, 불륜이라는 소재를 풍자하고 있다.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은 두 주인공이 서로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으로 된 소설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성공 이후 『분신』과 『쁘로하르친씨』에 대한 혹평 이후 작가는 「아홉 통의 편지로 된 소설」을 씀으로써 다시 『가난한 사람들』과 같은 편지 형식의 소설을 통한 성공을 시도했다. 이름에서 나타나듯 두 주인공은 서로에게 분신 같은 존재다. 편지는 주인공들이 서로 진지한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속에서 보이는 의사소통의 부재는 아이러니하며 이는 현대인들에게도 보이는 모습이다. 도스또옙스끼는 이 코미디 같은 상황을 편지 아홉 통만으로 풀어냈으며, 이러한 구성과 결말에서 우리는 진지한 듯 우스꽝스러운 작가의 유머코드를 느낄 수 있다.
「꼬마 영웅」은 시골의 전원적이고 아름다운 풍경에 대한 묘사와 더불어 '꼬마 영웅'의 어른다운 배려심과 사랑하는 여인을 끝까지 지키려는 중세 기사다운 풍모, 그의 풋풋한 사랑이 묻어나 있다. 작가는 모스끄바 근교의 영지에서 가족들과 전원생활을 누린 적이 있는데 그때의 경험들을 「꼬마 영웅」에 드러냈다. 낭만적으로 묘사되는 배경 때문에 너무 일찍 어른들의 사랑을 알아버린 꼬마 영웅의 아픔이 더 크게 느껴진다.
「크리스마스 파티와 결혼식」에서 돈에 대한 욕심으로 어린 소녀에게 흑심을 품은 율리안 마스따꼬비치, 아이들을 부모의 부에 따라 차별하는 상인 부부의 모습은 크리스마스 파티라는 배경과는 다소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작가는 이름모를 화자의 목소리를 빌려 이 상황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다. 율리안 마스따꼬비치의 탐욕과 속물근성은 도스또옙스끼 소설들에 다양하게 나타나는데 이는 작가의 후기 소설에 등장하는 '탐욕스런 비열한'의 원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