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모든 ‘브루스 리’를 위하여
독특한 괴조음을 내지르며 공중으로 뛰어오르는 이소룡, 그 순간 화면은 정지하고 화면 바깥으로부터 일제히 총소리가 울린다. 그는 죽었을까? 죽지 않았을까?
영화 연구자 이영재의 아시안 액션영화에 대한 연구는 이 프리즘 프레임 속 ‘얼어붙은’ 이소룡의 신체와 국가에 대한 사유로부터 시작한다.
이 책은 전후 국민국가(/식민지 국가)로서의 한국, 일본, 홍콩의 영화가 보이는 ‘적대’와 ‘폭력’의 이미지, 그리고 ‘남성의 신체’가 국가와 자본 사이에서 길항하며 그려낸 아시아의 신체에 대한 기록이다. ‘아시안 마샬 아츠 필름’이라는 이름으로 언어와 국경을 넘어 아시아의 표상을 형성한,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영화의 정사에도 기록되지 못한 액션영화에 대한 방대하고 실증적인 기록을 소개한다.
정의로운 깡패와 맹인 검객
액션영화는 당연한 말이지만 싸우는 영화이다. 액션은 ‘적대’에서 비롯한다.
액션영화는 그 정의상 ‘적대’와 ‘폭력’을 본질로 삼는다. 저자는 이러한 액션영화의 정의로부터, 당대 액션영화가 그려내고 있는 정치적 무의식을 파헤친다. 가령, 군사정권 시절 김두한에서 용팔이까지 이르기까지 협객─ 즉 ’정의로운 깡패’는 법의 테두리 안에서 범법을 통해 법을, 혁명재판을, 국가가 이룩한 ‘질서’를 우회적으로 긍정한다. 또 전후 일본 국민의 한계 지점이자 구제국의 망각을 불가능하게 하는 상이군인(더 정확히는, 전前일본군 한국인 상이군인)은 영화 속에서 은폐되고, 왜곡된다. 그 빈자리는 ‘볼 수 없는’ 혹은 보지 않는 ‘맹인’ 자토이치로 대체된다. 결국 액션영화 속 남성 신체는 한 국가의 정치적 신체political body의 표상이자, 그러한 정치적 기획을 국제적으로 확장하고 매개하려는 상상·욕망·행위에 의해 구성된다는 것을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적은 누구인가? 누가 나의 편인가? 액션영화는 적과 동지를 나누는 ‘정치적인 것의 개념’의 가장 순수한 영화적 환원물이다.
아시아 남성, 잔혹하도록 물리적인 한계치
1970년대, 범람하는 일군의 액션영화 다발을 기억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소룡이라는 이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과연 이소룡만? 챠리 셀, 바비 킴, 양소룡과 신일룡…… 무수히 많은 이소룡의 아류에서 국적은 모호하고, 그것을 묻는 것조차 무의미하다. 이 영화들은 또다시 전 세계로 퍼져나가며 각양각색의 언어로 더빙된다. 이로부터 저자는 ‘아시아성’에 대한 한 가지 비판적 결론을 내놓는다. 아시아적 가치란 무엇이며, 영화는 무엇을 통해 아시아성을 담아낼 수 있는가? 그것은 “정신적이고 문화적이며 고급한 가치” 속에 있지 않다. 그것은 오히려 근육질의 벌거벗은 몸, 거대한 기계 앞에 선 노동자의 몸, (제임스 본드의 최첨단 기구에 대비되는) 맨몸─ 즉 전 세계에 값싼 상품을 제공해야 하는 저임금 노동력을 구상화한 몸으로 표상되며 다시 그들을 하나로 묶는다.
어쩌면, 형용사로서의 ‘아시안’이라는 가상적 가치 혹은 미학으로 포장된, 이 상품으로서의 영화가 그럼으로써 비로소 ‘세계성’의 획득에 성공할 수 있었던 이 사례는 ‘자유 아시아’라는 자본주의 진영의 영화가 도달할 수 있었던 잔혹하게 상징적이고 물리적으로 의미심장한 최종 귀결이었는지도 모른다. 이 귀결을 실재적인 것 혹은 상징적인 것만으로 이해해서는 안 될 것이다. 이 쟁투의 드라마에는 아시아 남성 하위 주체가 열망했던 욕망의 최대치가, 신체라는 실재적이고도 상징적인 한계 아래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