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모니 브러더스

우오즈미 나오코 · 소설
13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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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산층의 온건하고 보수적인 가치를 대변하는 주인공의 가정에 어느 날, 가출한 지 7년 만에 형이 돌아왔다. 한데 형은 여장 남자가 되어 있었고, 3주 동안 집에 머물기로 했다. 늘 위선적인 웃음을 지으며 집안팎을 가꾸는 교양있는 엄마, 경쟁에서 이기는 것만이 삶의 목표라고 믿는 아빠와 명문 중학교에 이제 막 입학한 열네 살 주인공 히비키는 평범하고 건실한 집안의 일상에 작은 균열이 일어났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주인공과 아버지, 엄마의 기준에서는 형이 부끄러운 낙오자이지만, 3주 동안 함께 지내며 히비키는 형이 음악으로 자신을 표현하며,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여유롭게 누릴 줄 아는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명문중학교에 다닌다는 헛된 자부심을 갖고, 늘 공부에 대한 강박증에 쫓기는 자신과는 달리, 형은 스스로의 모습에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다름을 그저 다름으로서 이해하지 않고 차이 혹은 열등함으로 받아들여, 공동체 밖으로 밀어내는 폭력을 비판하는 이 작품의 원제목'초하모니'는 작가가 지향하는 궁극의 상태를 상징하고 있다. 균열 혹은 부조화에 대해 이야기함으로써 조화의 상태를 향한 작가의 바람을 나타내고 있으며, 편견에 사로잡힌 세상과 기성세대를 보여줌으로써, 남들과 조금 다른 것에 대한 이해와 유연함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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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하모니 브러더스』의 원제는 ‘초(超)하모니(harmony)’로 ‘세상의 온갖 하모니 중에서도 최고의 경지에 이른 하모니’를 뜻하는 일본식 조어(造語)이다. 원제만 본다면 이 작품은 마치 모든 것이 평화롭게 조화되고 통합된 궁극의 하모니 상태를 보여주고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과 인물 사이의 관계는 궁극의 하모니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작가는 ‘조화’보다는 ‘균열’에 대해서 더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다. 국내에 소개된 이 작가의 전작 제목이 『불균형』인 점을 보건대, 작가는 사람들 사이의 다름과 차이에 대해서 슬쩍 넘어갈 것이 아니라 두 눈을 부릅뜨고 그것을 대했을 때 비로소 하모니가 가능하다고 확신하는 듯하다. 이 작품은 일인칭 소설은 아니지만 히비키라는 열네 살 소년의 시선을 통해서 전개되고 있다. 히비키는 공부깨나 한다는 아이들만 모여드는 명문중학교에 이제 막 입학했다. 히비키가 바라보는 아빠는 인생의 가장 큰 목표를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이라 굳게 믿으며 성실하게 살아가고 있고, 엄마는 마당과 울타리에 아름다운 화분을 놓고 정성스럽게 가꾸는 교양 있는 주부다. 그런데 어느 날 히비키가 학교에서 돌아와 보니 한 여자가 거실 소파에 크림색 원피스를 펼치고 다소곳이 앉아 있다. 여자의 얼굴은 분명히 7년 전 집을 나간 형이었다. 형은 노골적으로 여장을 하고 돌아와선 ‘뻔뻔스럽게’ 3주 동안 집에서 휴가를 보내게 해 달라고 부탁한다. 그리고 이것을 신호로 누가 봐도 건실하고 행복한 이 집안에 꽁꽁 묻어 두었던 균열의 조짐들이 드러나기 시작한다. 엄마는 사무적인 말투로 “너도 우리 자식이다. 자식이 엄마 아빠 집에 있겠다는데 안 될 리야 없지.” 하고 허락한다. 식사 때에는 고기를 굽고 와인을 준비하며 그럴듯한 식탁을 차리지만 형이 무슨 말을 해도 딱 잘라 버리고 다른 이야기를 꺼내 형을 마치 없는 사람 대하듯 한다. 더구나 형이 목욕하고 나온 뒤에는 왠지 찝찝하다며 욕조를 박박 닦기까지 한다. 엄마에 비하면 “그런 토할 것 같은 꼬락서니는 집어 치워!” 하고 소리치는 아빠가 차라리 솔직하다. 히비키 역시 형이 돌아온 것이 하나도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히비키에게 더 중요한 문제는 바로 공부. 명문중학교에 입학한 성취감을 느낄 사이도 없이 히비키는 오직 자기 혼자만 수업 내용을 따라가지 못하고 있음을 깨닫고 울렁증을 느낀다. 히비키는 집에 돌아와서도 ‘자 어서, 공부! 공부해야지!’ 하고 스스로를 채근한다. 그런데 형은 히비키가 유지하려는 평정을 무너뜨리고 자꾸만 히비키의 일상 안으로 들어온다. 엄마가 강조했듯이 형은 3주 뒤면 떠나고 없을 테니 생활 리듬이 흐트러져선 안 되는데 히비키는 자꾸만 형에게 말려든다. 그러나 히비키는 형과 지내는 3주 동안, 형이 엄마 아빠에게 환영받지 못하고 거리에 나서면 뭇시선을 받는 존재이긴 해도 스스로는 무척 행복하게 살아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된다. 형은 자신이 남과 다르다는 것을 인정하고 자신의 모습에 충실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누구나 흘려듣는 소리들에 의미를 부여하여 음악으로 담아낼 줄 알고, 무언가에 쫓기지 않고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여유롭게 누릴 줄 아는 삶을 택하고 있었다. 형은 엄마 아빠가 말한 것처럼 ‘경쟁에 낙오된’ 것이 아니라 경쟁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일상에 자리잡은 ‘다름’에 대한 폭력 정상과 비정상 사이의 경계는 모호할 뿐만 아니라 다분히 조작된 것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거의 모든 대상을 정상인 것과 정상이 아닌 것으로 양분하는 습관에 젖어 있다. 그리고 정상이 아닌 것에 대해서는 자신도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폭력을 가하게 된다. 여장을 한 채로 기분 좋게 밤 산책을 나갔던 형이 정체 모를 남자 둘에게 흠씬 맞아 피 흘리며 돌아온 것, 히비키의 형이 게이라는 것을 알게 된 같은 반 두 아이가 계속해서 히비키를 괴롭히고 조롱하는 것이 그렇다. 그리고 이런 폭력은 더 약한 존재에게 이어진다. 아이들의 조롱을 받는 히비키 역시 뚱뚱한 몸집에 사시라서 늘 외톨이인 친구 후토시를 바라보며 ‘아무렇게나 짓밟아도 좋을 녀석’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는 히비키 동네에 불이 나는 장면에서 우리 의식을 지배하는 가장 일반적인 성(性)적 구분을 표현했다. 나란히 자리 잡은 양말 공장에 불이 나고 옆에 있는 스타킹 공장에 옮겨 붙자 아이들이 “남자 공장에 불이 났네!” 하고 외친다. 어렸을 때부터 어른들이 양말 공장은 남자 공장, 스타킹 공장은 여자 공장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대수롭지 않은 구분이 모든 경우에 획일적으로 적용되었을 때 그 파장은 일상을 넘어 의식을 파고들고 결국은 우리를 구속한다. 이 세상에는 남성 호르몬을 가진 존재와 여성 호르몬을 가진 존재 이 두 부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저마다 남성 호르몬과 여성 호르몬의 조합 비율이 다양한 존재라는 발상을 했을 때 타인의 ‘조금 남다른’ 성적 정체성 앞에서도 유연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닐까. 히비키의 형이 여장을 한 자신에게 아버지가 화를 내자 이렇게 말했듯이 말이다. “이렇게 꾸미지 않은 모습은 제가 아니에요. 아버지가 그렇게 말씀하시는 심정은 알아요. 그렇지만 이런 저를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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