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천만원 고료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아몬드》 작가 손원평 신작 장편소설 《서른의 반격》 출간
“가서 항의해요,
가만있으면 그게 당연한 줄 알아요.
그래도 되는 것처럼 대한다구요!”
88년생 웃픈 서른들의 쩌릿한 등짝 스매싱!
지난 3월 발표된 7천만 원 고료 제5회 제주4·3평화문학상 수상작 《서른의 반격》이 출간되었다. 1회 수상작 구소은 장편 《검은 모래》, 2회 양영수 장편 《불타는 섬》, 3회 장강명 장편 《댓글부대》, 4회 정범종 장편 《칼과 학》에 이은 다섯 번째 수상작이다. 1988년에 태어나 2017년 올해 서른 살이 된 주인공을 중심으로 권위의식과 위선, 부당함과 착취 구조의 모순 속에서 현재를 견디며 살아가는 이들의 특별한 ‘반격’을 그렸다.
대기업 산하 아카데미에서 인턴으로 근무 중인 서른 살의 김지혜. 평범하지만 질풍노도의 하루하루를 살고 있는 그녀 앞에 어느 날 묘한 기운을 지닌 동갑내기 88년생 규옥이 나타난다. 함께 우쿨렐레 수업을 듣게 된 무명 시나리오 작가 무인과, 밥 먹는 인터넷 개인방송을 하는 남은, 그리고 지혜와 규옥은 이 사회를 구성하는 99프로가 부당한 1프로에게 농락되고 있는 현실에 분개하며 재미있게, 놀이처럼 사회 곳곳에 작은 전복을 꾀하기로 뜻을 모은다.
소설가 한승원, 현기영, 문학평론가 최원식으로 구성된 제주4?3평화문학상 심사위원단은 심사평에서 “위트가 넘치는 싱그럽고 유쾌한 소설이다. 사건과 주제를 형상화시키고 도출해내는 작가의 힘, 소설미학이 돋보인다”며 “그들의 저항은 비장하거나 영웅적이거나 하지 않고, 게임처럼 경쾌하게 행해진다. 소설의 주인공은 그러한 저항의 몸짓들을 직접 목격하고 경험하면서 자신의 왜소한 순종적 자아를 벗어내고 주체적 자아를 되찾게 된다”고 심사경위를 밝히며 작가에게 수상의 영예를 안겼다.
남 얘기 같지 않은 이 시대 청춘들의 이야기
티 나지 않게, 특별하게 시작되는 ‘을’들의 반격
《서른의 반격》의 주인공 김지혜는 1988년 서울올림픽이 열린 해에 태어나 2017년 올해 서른 살이 된 비정규직 인턴이다. 본래 할아버지가 작명해준 ‘추봉’이라는 이름을 받게 될 운명이었으나 어머니의 투쟁으로 ‘지혜’라는 당시로서는 세련된 이름을 얻은 역사가 있다. 그러나 그즈음 같은 반에는 유행처럼 ‘지혜’들이 여러 명씩 있었고, 그 탓에 한때 ‘김지혜 삐(B)’로 불리기도 했던 그녀는 평범한 삶에 익숙해지고 자신을 속박하는 관계들에 별 대항을 하지 못한 채 성장한다.
손꼽히는 대기업 공채에서 떨어진 후 어떻게든 본사 정직원이 되겠다는 꿍꿍이를 가지고 아카데미에 입사한 그녀가 말단 인턴으로서 종일 하는 일이라곤 복사하고 의자를 까는 일이 전부다. 이따금 그녀의 업무에는 김 부장이 자리를 비웠을 때 팀장을 따라 들어가 면접관 흉내를 내야 하는 것도 포함돼 있다.
그래, 다들 이런 기분이구나.
그 자리는 팔짱을 낄 수 있는 자리였다. 다리를 꼴 수도 있고 갑자기 울린 휴대폰에도 여유 있게, 잠시만요, 라며 전화를 받아도 되는 자리. (…) 이 자리에 앉아 있다는 건 결정권을 가졌다는 걸 의미한다. 일정 수준의 경험과 시간을 보내고 나서야 앉을 수 있는 자리. 그런데 나는 머릿수를 채우기 위해 소품처럼 앉아 있다. 내가 아니라 낡은 곰 인형이었어도 상관없었을 거다. _31~32쪽
그러던 어느 날 동갑내기 신입 인턴 규옥이 나타난다. 그는 아카데미의 인기 강사인 박 교수의 단행본 원고를 다 써주고 나서 알바비도 못 받았던 남자다. 지혜는 그를 한눈에 알아본다. 임금 체불에 열정 페이를 강요당한 그가 며칠 전 커피숍에서 그 교수에게 “부끄러움을 모르고 살면 언젠가 인생 전체가 창피해질 날이 온다”고 일갈하며 사람들 앞에서 창피를 주던 순간 옆에서 그 장면을 지켜보았기 때문이다.
지혜는 규옥과 함께 아카데미 직원에게 제공되는 공짜 강의로 우쿨렐레 강좌를 듣게 되면서 조금씩 가까워지고, 수업이 끝나고 뒤풀이에 남은 사람들과 뜻밖의 모임을 하게 된다. 그곳에는 다 쓴 시나리오를 헐값에 넘기고 창작자로서의 권리를 보호 받지 못해 슬럼프에 빠져 있는 백수 작가 무인, 국회의원이 된 동업자에게 사기를 당한 후 삶의 자신감을 잃어버린 남은 아저씨가 있다. 지혜 역시 사무실에서 아무 때나 트림하고 방귀를 뀌는 등 매너 없는 김 부장에 대해 토로한다. 그러나 입바른 말 한번 했다간 미운털이 박히고, 궂은일을 맡게 되고 견딜 수 없게 되고 밥줄이 끊길 수도 있다. 힘 있는 자들에게 항의해본들 아무것도 바뀌는 건 없을 거라고 자포자기하는 그들에게 그러나 규옥은 단호한 눈빛으로 작지만 가치 있는 전복이 필요함을 역설한다.
“그렇게 생각하는 한 세상은 점점 더 나빠질걸요? 억울함에 대해 뒷얘기만 하지 말고 뭐라도 해야죠. 내가 말하는 전복은 그런 겁니다. 내가 세상 전체는 못 바꾸더라도, 작은 부당함 하나에 일침을 놓을 수는 있다고 믿는 것. 그런 가치의 전복이요.” _68쪽
“세상은 경직돼 있고 모두가 무기력증에 빠져 있죠. 난 반기를 들어보고 싶어요. 치기 어리다고 욕 들어도 좋으니 적어도 반항을 해보고 싶다고요. 역사가 말해줬듯 급진적인 혁명은 실패할 겁니다. 세상은 점점 팍팍하고 딱딱해지고 있어서 겉으로 보이는 움직임은 통제되거나 검열되니까요. 난 통제나 검열이 불가능한 일들을 해보고 싶은 겁니다. 재미있게, 놀이처럼 말이죠.” _86~87쪽
김 부장을 응징하기 위해 꾸민 규옥의 ‘장난 편지’가 의외의 효과를 거두자 네 사람은 고무된다. 그리고 우쿨렐레 수업이 끝나면 약속한 듯 모여 새로운 일들을 공모하기 시작한다. 경범죄로 보기엔 약하고 명예훼손이라 칭하기엔 애매한 장난스런 반격이 매주 벌어진다. 특별한 방식으로 티 나지 않게 끈질기게 행동하는 동안 SNS에 목격담이 올라오고 그들의 ‘반격’을 따라 하는 사람들도 생겨난다.
우리는 배금주의와 세습적 행정으로 악명 높은 목사가 있는 교회에 가서 그 목사가 복도를 지나칠 때 목탁을 두들기며 나무아미타불을 외치기도 했고, 장애인이라고 손님을 쫓아낸 힙한 레스토랑에 넝마 같은 옷을 입고 가 신용카드를 내밀었다. 근로자들에게 임금을 체불한 대형 마트에서 지점장이 나타나기를 기다렸다가 ‘지불하라’라고 쓰여 있는 마스크를 뒤집어쓰고 춤을 추며 짧은 노래를 부른 뒤 일 분 만에 사라지기도 했다.
부당한 권위를 이용해 세상을 뻣뻣하게 만드는 사람들이 대상들이었으며, 그들을 곤란하게 하고 면박을 주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의 목적이었다. _129쪽
일방적이고 인격 모독적이며 약자를 착취하는 권위주의에 저항하는 퍼포먼스를 하면서 그들은 재미와 통쾌함을 느낀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혜는 갑작스런 김 부장의 퇴사와 함께 정규직 제안을 받고, 작은 사건과 갈등들이 이어지는 사이 규옥과 무인, 남은의 관계역시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는데…….
이 시대 청춘의 끝자락을 달리는 1988년생들, 그리고 불가항력적인 착취 구조에 신음하던 개인들은 과연 힘 있는 기성세대들이 만들어놓은 판을 그대로 항복하고 흡수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주역이 될 것인가.
한국사회에 미만한 부당함과 위선에 일침을 놓다
게임처럼 경쾌하게 그려낸 작은 체 게바라들의 전복의 한 방
《서른의 반격》에서 작가가 설정한 1988년은 한국 사회 전반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시기이다. 권위주의의 해체를 모토로 삼았던 ‘보통 사람’을 자칭한 군인 출신이 대통령으로 당선되었고, 공무원 사회에서 관료 권위주의를 청산하자는 운동이 벌어졌던 때이기도 하다. 이른바 ‘위로부터의 혁명’이 진행되었던 것이다. 그것이 성공하지 못했기에 역설적으로 오늘날 《서른의 반격》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