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대의 실록은 외면되어야 하는가?
아프지만 알아야 할 비운의 역사
대한제국은 13년 동안 이 땅에 존재했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1910년 일제에 의한 병탄으로 황제의 지위를 잃고, 고종 황제는 ‘이태왕(李太王)’, 순종 황제는 ‘이왕(李王)’이라는 격하된 칭호를 얻게 되고, 결국 대한제국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이러한 치욕의 기록은 당시의 실록에 잘 나타나 있다.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지며 편찬 과정에서 일제의 입김이 작용하였다는 이유로 ‘조선왕조실록’의 범주에 들지 못하고 오늘날 정사(正史) 취급을 받지 못했던 비운의 기록인 <고종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을 다시금 주목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이 책 《대한제국 실록》은 <고종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에서 중요한 주제를 뽑아 원문의 손상을 최소화해 실음으로써 당시의 기록 그 자체를 보여주는 책이다. 서양 사람들을 ‘양이’라 부르며 배척하던 초기의 고종 시대에서부터 한일의정서, 한일신협약 등 각종 조약으로 우리의 주권을 하나하나 내주다 최종적으로 일제에 의해 강제병합까지 되는 마지막 황제 순종 시대에 이르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격변의 시대를 맞은 우리 역사를 어떻게 기록하고 있는지, 당시 황실과 조정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 대한제국의 마지막 역사를 실록의 눈으로 들여다 볼 수 있다.
이양선, 개항, 조약… <미스터 션샤인>의 배경 시대
격변의 시기를 맞은 조선, 그리고 대한제국 13년의 기록
유네스코 세계 기록 유산으로 선정된 《조선왕조실록》은 태조부터 철종대까지의 472년간의 기록만을 말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조선의 마지막 시기인 고종과 순종대에는 ‘실록’의 형태로 기록되지 않았다는 말일까? 아니다. 그렇지 않다. 고종과 순종 시기에도 <고종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이 기록되어 전해지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실록은 일제강점기에 만들어졌다는 이유로 제대로 인정받지 못하고 ‘조선왕조실록’의 범주에 넣지 않는다. 그러나 왕이 내린 교지며, 신하들과 어떤 대화를 했는지, 각국과 맺은 여러 약정 등 구한말 시대의 여러 자료가 풍부하게 실려 있어 왜곡의 이유로 우리 역사에서 배제하기에는 아쉬운 면이 더 크다. 또한 <고종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을 편찬하기 위해 ‘승정원일기’와 ‘일성록’ 등 각종 기록을 사료로서 참고하였기에 제국주의적 사관에만 치우쳐 있다고 보기는 힘들다.
우리가 결과에 대한 가치 평가 못지않게 역사에서 중요하게 여겨야 할 것은 과정과 경과이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으며 그 사건에 대해 조선의 임금과 조정은 어떤 태도를 취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도 역사의 교훈을 얻기 위해 우리가 알아야 할 일이다.
한일협상조약(을사늑약)에 서명한 다섯 명의 대신들(5적)을 처단하라는 신료들의 상소문이며, 자결로 한일협상조약의 부당함과 치욕을 나타낸 우국지사들을 애도한 고종의 말이 실록에는 실려 있다. 순종 시대의 실록에는 피살당한 이토 히로부미를 순종이 조사를 내려 애도의 뜻을 표한 바도 있다. 이러한 기록 모두가 우리에게는 망국의 슬픔이요, 잊어서는 안 될 역사의 한 장면일 것이다.
화제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는 지부상소(持斧上疏)를 올리는 충신과 선비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일제의 편에 서서 그들에게 유리한 결정을 내리도록 압박하는 신료들도 나온다. 실제 조선 말기와 대한제국의 조정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어떤 상소들과 의견들이 오갔는지가 궁금하다면 이 책이 도움이 될 것이다. <고종황제실록>과 <순종황제실록>을 바탕으로 실제 실록 그 자체를 정리한 《대한제국 실록》을 통해 우리 스스로 외면해왔던 구한말 역사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