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사 100년의 가장 위대한 창조적 비평
1958년 앙드레 바쟁A. Bazin의 요절은 영화이론 및 비평 분야에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었다. 에이젠슈테인S. Eisenstein이 전전戰前 세대를 대표하는 영화이론가라면, 바쟁은 전후戰後 세대를 대표하는 이론가였다. 그는 비록 G. 크라카우어처럼 학적 체계를 갖춘 저서는 남기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남긴 영화에 관한 에세이들 및 숱한 단편들의 영향력은 실로 지대한 것이었다. 바쟁은 전후에 발표한 글들을 엄선하여《영화란 무엇인가? Qu’est-ce que le cinema?》라는 제목의 저서로 출간했다.
‘영화사 100년의 가장 위대한 창조적 비평’으로 평가받는 바쟁의《영화란 무엇인가?》는 본래 전 4권으로 구성된 방대한 저작이다. 이 각권의 구성은 바쟁 생전에 그에 의해 구상되어 3권까지는 실제로 그 자신의 손에 의해 편집되었으나, 마지막 4권만은 사후 1962년 그의 친구 자크 리베트의 책임 아래 완성되어 그의 영전에 바쳐졌다. 이 문집은 너무도 양이 많아 후일 기 엔느벨르Guy Hennebelle에 의해 한 권의 선집으로 출간(파리 : 르 세르프)되었는데, 여기에는 1975년과 1985년판 두 가지가 있다. ‘도서출판 사문난적’이 이번에 번역본으로 삼은 것은 이 가운데 1985년 판이다.
영화 예술이 한창 원숙기에 접어들 무렵, 가장 뛰어난 감수성과 분석력을 발휘하여 비평계를 이끌며 영화의 존재 근거와 심지어 그 진로까지 제시한 앙드레 바쟁의 존재는 오늘에 있어서도 그 마력적인 영향력을 잃지 않고 있다. 흔히들 기술적인 발전에 의한 오늘의 놀라운 화면 구성과, 또 바쟁의 리얼리즘 논지에 대한 피상적 이해가 맞물려 그의 이론과 비평 상의 의의 및 진가를 쉽게 밟고 넘어가려 하는 경향이 농후하나, 열과 성을 다해 쌓아 올린 진정한 노작勞作은 그렇게 가벼운 이들의 구설로 간단히 무너지지를 않는다.
바쟁 영화이론의 논쟁점
영화이론에 관한 바쟁 입장의 정당성에 이의를 제기하고 도전적인 반응을 나타낸 두 계기를 우리는 기억한다. 그 하나는, 프랑스에서 1968년의 학생혁명 이래 한 10년간, 당시 사조에 따라, 바쟁 자신이 창간한 「카이에 뒤 시네마」지의 편집진이 그에게 등을 돌리고, 정치 성향의 이론들을 전파해간 경우이다. 그들은 바쟁이 주장한 사진의 선천적인 사실성寫實性에 토대를 둔 영화의 리얼리즘론을 정신분석학적 이론이나 이데올로기적인 노선에 따라 재론, 반박하고 나온 것이다. 그러나 곧 이러한 과열된 반론은 1980년대 이래 보다 차분하고도 신중한 반성의 시기를 지나면서 그들 역시 영화에 관해 꼼꼼하고도 진지하게 글을 쓰는 바쟁의 후예들임을 인식하기에 이르렀다. 따라서 그들은 바쟁이 혹 특정한 작가를 극찬하고 작가주의를 표방했다든가, 장르와 그 진화에 대한 견해를 피력해간 방식이라든가 하는 것에 대하여 비록 동의하지는 않는다고 하더라도, 영화 작품들에 대한 깊이 있는 통찰로 새로운 경지를 발견해가는 바쟁 스타일의 독창성에 관해서는 자연 수긍을 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또 하나의 좀 더 강력한 도전은 TV나 비디오 등과 아울러 영화의 범람 속에서 특히 미국에서의 이른바 ‘문화연구’ 부문의 개발, 확산에 바탕을 두고 대두되었다. 영화 작품 자체에 토대를 두고 영화를 논단하는 게 아니라 ‘문화연구’의 일환으로 연구될 때, 그것은 광고나 도시인구의 통계, 또는 텔레비전을 통한 사전 교화 등에 의해, 관객들 간의 차이와 변화가 그대로 모두 값을 지닌, 안목의 혼란 내지는 평가의 무정부 상태를 초래할 위험이 개재한다. 영화 특유의 기여나 영화작가의 위신이 현저하게 격하될 위험이 있는 이러한 조건에서 바쟁의 입지는 매우 협소해질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바쟁을 자세히 읽는다면, 영화의 연구가 오히려 문화연구에도 중요한 한 통로가 될 수 있음을 알게 한다.
그토록 열렬한 영화애호가요 그토록 탁월한 영화비평가였건만, 그는 이미 그의 글에서 그런 비평이 의미를 갖는 것은 오직 이 매체의 상세한 역사와 사회학의 문맥에서만 가능하다고 주장한 바 있었던 것이다. 영화작가가 그 시대의 문화적 동향과 작업 현장을 어떻게 보고 쓰는가를 관찰하면서 그를 이해해야 한다고 여긴 까닭에, 각색과 장르에 대한 그의 관심이 생겨났던 것이며, 또 영화를 다양한 시대의 각기 다른 이들을 위한 잡다한 문화적 기능에 이바지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가 있었던 것이다. 탐험영화에 대한 그의 관심도 이와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영화연구와 문화연구는 서로의 영토를 잠식하는 반목관계가 아니라 서로를 끌어안아 자신을 살찌게 하는 친화 관계에 있다.
《영화란 무엇인가?》의 구성과 내용
책의 차례의 순서대로 ‘사진적 영상의 존재론’에서 ‘영화 언어의 진화’에 이르는 일곱 편의 글은 제 1권 《존재론과 언어》(1958)에서 선집한 것으로서, 이 선집은 영화 예술의 존재론적인 철학적 기초를 목표로 쓴 것으로 그의 영화이론과 비평의 핵심을 담고 있는 가장 중요한 논문들이다. 따라서 그의 영화사상의 요체가 여기에 주로 집약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다음으로 ‘비순수 영화를 위하여-각색의 옹호’에서 ‘베르그송적 영화-「피카소의 비밀」’에 이르는 여섯 편의 글은 제 2권《영화와 기타 예술들》(1959)에서 모은 것으로, 소설 연극 회화 등의 예술들과 영화의 관계에 초점을 둔 논문들이다. 소설이나 희곡을 원작으로 하는 각색영화, 또는 소위 미술영화의 문제를 논란하는 속에서 바쟁의 입장은 이들을 분리된 장르의 측면에서 바라보지를 않고, 문학성과 영화성, 연극성과 영화성, 회화성과 영화성이라는 변증법적 통일의 가능성에 시선을 던져 그 적극적인 예술적 존재가치를 인정하고자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런 관점에서 만들어진 훌륭한 영화를 그는 성공작으로서 평가한다. 이와 같은 논지의 전개과정에서 드러나는, 그 지식의 해박함, 밀도 있는 문체의 탁월한 조성능력, 단순히 영화의 틀에 매이지 않고 다른 예술, 다른 학문 분야를 자유로이 넘나드는 고차원의 변론술은 독자들에게 충분히 지적 자극을 가져다주리라고 믿는다.
또한 ‘「독일 영년」’에서 ‘「영화에서의 에로티시즘」의 여백에’로 이어진 역시 여섯 편의 글은 제3권《영화와 사회학》(1961)에 수록된 것들로부터 추린 것으로서, 영화와 사회와의 관계를 중심 테마로 사회학적 관점에서 논한 글들이다. 여기선 그가 얼핏 보기엔 별 것 아닌 영화에 대해서까지 눈을 돌려 예리한 비평을 가하고 있는데, 이렇게 일견 평범한 작품에 대한 그의 비평적 재능의 근저엔 영화에 대한 강렬한 애정이 있음을 쉽게 알 수가 있다. 이 애정 때문에 결국 그는 통속적인 대중 영화나 스펙터클 영화에 대해서까지 관심을 기울여 그 영화적 장점과 문제성을 발견할 수가 있었던 것이다. 끝으로 ‘영화적 리얼리즘과 해방 시대의 이탈리아 그룹’에서 ‘「유럽 51년」’까지의 여덟 편은 《현실의 미학-네오리얼리즘》(1962)이란 제목의 제4권으로부터 추출한 글들로서, 이탈리아 네오리얼리즘 영화를 통해 영화에서의 리얼리즘 문제를 추구한 논문들이다. 바쟁은 따로 그가 특히 좋아하고 높이 평가한 장 르누아르, 오손 웰즈, 찰리 채플린에 관해 한 권씩의 단행본을 썼으며, 또한《잔혹영화》와《점령기 레지스탕스 시기의 영화》라는 평론집이 별도로 편집·출간된 것이 있지만, 가장 중요하고도 문제적인 내용으로 비중이 큰 글들은 역시 이 《영화란 무엇인가?》에 수록된 것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