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문화론

마루카와 데쓰시
344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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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와 그 너머’ 두 번째 책. 이 책은 1945년 이후 일본의 영화와 문학이 한국전쟁과 동아시아의 냉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한 망각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일본책들이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식민(지)의 역사, 문화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일본 역사를 의식하면서도 이를 전후와 냉전이라는 현재적 경험에 본격적으로 연관시키려는 시도를 꾀한다. 일본인들에게 냉전이라는 역사적 시간대의 입구도, 출구도 모호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는 동아시아 냉전의 한복판을 살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일은 또한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저자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당시 일본의 주류 문화에서 그저 1950년대 일본 사회의 무대 배경 혹은 풍속의 일부로만 기억되고 소비되어 왔다. 그리고 그나마도 재빠르게 잊혀져 방대한 아카이브의 한 편에 죽은 기록으로 보관되려 하는 중이다. 이 두려운 망각의 속도에 맞서서 저자는 이렇게 힘주어 강조한다. “결국 바로 지금,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의 시간성을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 소위 일본의 ‘전후’를 ‘한국전쟁 후’로 대체하는 작업이 요청”되는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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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역자

목차

한국어판 서문 역사를 반성하는 주체의 구도(構圖) 서문 냉전, 동아시아 국민국가 시스템의 ‘고향’을 생각한다 옮긴이 서문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냉전/열전’을 바라보다 1장 다케우치 요시미와 ‘적대’사상 전제 1 일본의 ‘독립’? 전제 2 국민문학? ‘적대’의 사고 결단의 실패를 참고 견디는 일 2장 그 전쟁, 이 전쟁 전쟁과 ‘현실’의 생산 ‘바다’라는 메타포 ‘육지’의 침식 중국혁명의 글로벌화 ‘기아’의 리얼리즘 3장 육체의 자장 냉전의 포지션, 혹은 ‘육체’의 과오 60년대의 잠재적 방향 : 스즈키 세이준의 양의성 전후와 ‘타락한 여인’ 동아시아 냉전에서의 ‘육체’의 행방 4장 회귀하는 아시아, 여백의 아시아 ‘아시아’ 회귀? 60년대 혹은 다케우치 요시미 냉전, 기억, 고도성장 냉전, 노스탤지어, 신식민주의 ‘일본의 장소’란 무엇인가? 5장 한국전쟁이라는 겁화 한국전쟁에 대한 대응 한국전쟁을 둘러싼 투쟁 한국전쟁과 ‘일본’ 두 개의 공간 두 개의 시간 6장 불타는 오키나와 ‘류큐제도’의 일체성 미국과 오키나와 아시아와 오키나와 위기에 처한 현재 7장 포로/귀환의 자장 부두의 어머니 전후의 ‘이야기’ ‘억류자’의 ‘이야기’와 반(反)스탈린주의 종교적으로 체험된 ‘억류’ 8장 대척공간으로서의 아시아 전쟁중의 에너지, 혹은 50년대 한국전쟁하의 서클운동 55년이라는 분수령 토지와 인간의 자유 방법으로서의 ‘고향’ 참고문헌 저자 후기 냉전기 연표(1945-1975) 찾아보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망각의 속도의 맞서는 성찰의 기획 “냉전, 동아시아 국민국가 시스템의 ‘고향’을 생각한다” 동아시아의 냉전체제를 확정한 사건이었던 한국전쟁은 미국에서는 보통 ‘잊혀진 전쟁(forgotten war)’이라 불린다. 지구상에서 북한의 핵 실험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국가 중 하나인 일본에서조차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오늘을 살아가는 일본인들에게 한국전쟁이란 동아시아의 몇몇 이웃 나라들이 겪은 사건, 냉전은 그나마도 세계화(globalization)의 거대한 해일 앞에서 어느새 빛이 바랜 시사용어일 뿐이다. 그러나 비판적 문화연구자인 마루카와 데쓰시(丸川哲史)에 의하면, 일본을 포함한 동아시아 국민국가들의 기원이라는 의미에서 냉전은 부인할 수 없는 ‘현재적 고향’이다. 그렇다면 일본인들에게 냉전이라는 역사적 시간대의 입구도, 출구도 이처럼 모호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실제로는 동아시아 냉전의 한복판을 살고 있었으면서도, 그것을 의식하지 않았거나 못했던 일은 또한 어떻게 가능했을까.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서 출발한다. 그리고 이 질문들에 답하기 위해 1945년 이후 일본의 영화와 문학이 한국전쟁과 동아시아의 냉전을 어떻게 기억하고, 또한 망각하고 있는지 이야기한다. 비판적 시각을 가진 일본책들이 주로 동아시아 국가들과의 관계와 관련하여 식민(지)의 역사, 문화에 집중하고 있다면, 이 책은 전전의 일본 역사를 의식하면서도 이를 전후와 냉전이라는 현재적 경험에 본격적으로 연관시키려는 드문 시도이다. 우리에게 흥미로운 것은 한국전쟁이 이 책에서 차지하는 질적인 중량감 때문이다. 이 전쟁이 공식적으로는 여전히 휴전상태라는 데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북한의 향후 정치ㆍ군사적 행보는 한반도는 물론 동아시아 전역의 ‘현재’ 혹은 ‘미래’ 진행형 아젠다일 수밖에 없다. 이 불안정성의 근간이 되는 것은 바로 현재 동아시아의 모든 국가들이 다름 아닌 동아시아 냉전에 의해 만들어진 냉전국가군 시스템이라는 사실에 연유하기 때문이다. 한국전쟁,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냉전, 열전’을 바라보다 한국전쟁이 전후 양대 세력인 미국과 소련뿐만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광역 단위에서 벌어진 전쟁이었다는 점을 실감나게 전달하기 위해 저자는 하나의 에피소드로부터 시작한다. 타이완의 ‘구로사와’라 불리우는 왕통 감독의 작품 「홍시」에는 저우푸순(周福順)이라는 병사의 에피소드가 잠깐 등장한다. 저우(周)는 원래 국공내전의 과정에서 타이완으로 후퇴하는 배를 놓쳐 그대로 내전의 최종 단계에 투입된 병사였다. 국민당의 패배로 공산당 측의 포로가 되어 그만 대륙에 남겨진 그의 이야기는 그러나 여기서 완결되지 않는다. 저우(周)는 한국전쟁이 시작되자 이번에는 공산당 측의 인민의용군에 편입되어 한반도에서 남측과 싸우게 된다. 거기서 그는 다시 미국의 포로가 된다. 영화는 어딘가 손상된 듯하면서도 기묘하게 수다스러운 저우라는 인물의 표정과 시선을, 그리고 미군에게 타이완행을 호소하기 위해 그가 직접 가슴에 새긴 타이완 국기를 가만히 비출 뿐이다. 저우의 예가 이처럼 웅변하듯, 한국전쟁은 결코 한반도 내부에 한정된 전쟁이 아니라 동아시아라는 광역의 공간에서 치러진 전쟁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한국전쟁에서 미군의 포로가 되어 1954년 한반도에서 타이완으로 보내진 사람의 수는 7,000명 이상이나 되었다. 그러나 그런 존재가 영화 속에 정착되는 데만 실로 50년 가까이나 걸린 셈이다. 한국전쟁과 냉전을 동아시아의 지평에서 바라본다는 것은 저자와 같은 일본 출신 학자에게는, 무엇보다 냉전체제 안에서 일본이 차지한 특권적 위치를 반성적으로 돌이켜보는 데서 시작된다. 실제로 한국과 타이완, 필리핀 등의 반공제국(反共諸國) 연합을 배경으로 한 전후 일본 자본주의의 부활은 이전 대동아공영권의 공간에서 성립된 바 있는 지배적 분업체제의 양상을 반복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최대의 기적-즉 한국전쟁이라는 악몽에 의해 군수경기(국제 군사케인스주의)가 거듭 살아나는-이 일어나게 된다. 저자에 의하면, 패전국 일본이 미국의 승인 아래 전후 ‘부흥’에서 ‘독립’으로 향하게 되는 그 내셔널 히스토리는 아시아의 악몽에 다름 아니었다. 전후 금기가 되어버린 단어 ‘아시아’, 그리고 다케우치 요시미 제국의 기억을 하루 빨리 망각하고 일국적 경제 발전에만 매진하고자 했던 패전 직후 일본 사회에서 아시아는 과거를 상기시키는, 일종의 터부가 된 단어였다. 더욱이 일본이 아시아를 그토록 편리하게 잊을 수 있도록 결정적 알리바이를 제공한 것은 냉전체제로 새롭게 발생한 미소(美蘇) 발신의 적대관계였다. 이 새로운 의사(擬似) 적대관계 아래서, 일본이 과거 아시아와의 실제적인 적대성을 은폐하는 것이 가능하게 된다. 심지어 과거의 적대성을 망각하고 스스로를 피해자로 상상하는 일조차 가능하게 된다. 실제로, 2차 대전 후 시베리아의 일본 포로들이 자신들을 전쟁 포로가 아닌 ‘억류자’로 인식할 수 있었던 것도 이처럼 절묘한 역사의 타이밍에 개입한 냉전 구조의 작용 때문이었다. 저자는 바로 이 지점에서 중국문학 연구자인 다케우치 요시미(竹內好)의 사유와 실천으로 되돌아갈 것을 요청한다. 한국의 학계에도 이미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다케우치 요시미는 일본의 전후 사상사에서 비판과 열광을 한 몸에 떠안고 있는 인물이다. 전후 일본 사회에서, 다케우치는 과거 전전의 일본이 열렬히 제창했던 아시아라는 단위-그것이 침략의 명분에 불과한 것으로 끝났다 할지라도-의 가치와 가능성을 여전히 주장한 바 있다. 전전 침략주의와 결부될 수 있는 위험성을 의식하면서도 아시아라는 틀을 결코 폐기하지 않았던 다케우치의 존재는 ‘냉전(전후) 아시아’를 논의하기 위한 저자의 이론적 출발점인 셈이다. 다케우치가 경제 논리에 떠밀려 이루어진 중일국교정상화(1971)를 결코 환영하지 않고, 오히려 과거 적대성의 기원으로 끊임없이 돌아가 이를 기억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이다. 망각의 속도에 저항하라, 일본의 ‘전후’를 ‘한국전쟁 후’로 대체하는 것 “한국전쟁은 일본의 주류 문화에서 그저 1950년대 일본 사회의 무대 배경 혹은 풍속의 일부로만 기억되어 왔다” 다케우치의 문제의식을 이어 받는 가운데 저자가 이 책에서 주력한 것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일상을 살아가는 현대 일본인들의 의식 속에 이제 그저 ‘센고(戰後)’로 기억되는 이 시기의 풍경이 그렇게나 자명하고 자연스럽게 자리잡을 수 있도록 추동한 유력한 문화적 장치들을 분석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이는 냉전을 둘러싸고 (무)의식적으로 작동했던 당대 일본의 다양한 문화적 기제들(문학과 영화, 지식인들의 담론 등)을 분석하는 일이다. 이 기획 속에서라면 전후 민주주의를 대표했던 사상가이자 정치학자인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 전후 일본 문학의 실세이자 대표적 평론가였던 요시모토 다카아키(吉本隆明), 일본 영화의 거장인 구로자와 아키라(?澤明) 등 일본 전후 문화계의 지도적 인물들 역시 논쟁적인 위상으로 전환된다. 요컨대, 저자에 의하면 한국전쟁은 당시 일본의 주류 문화에서 그저 1950년대 일본 사회의 무대 배경 혹은 풍속의 일부로만 기억되고 소비되어 왔다. 그리고 그나마도 재빠르게 잊혀져 방대한 아카이브의 한 편에 죽은 기록으로 보관되려 하는 중이다. 이 두려운 망각의 속도에 맞서서 저자는 이렇게 힘주어 강조한다. “결국 바로 지금, 한국전쟁의 기억을 되찾는 것뿐만 아니라 한국전쟁 이후의 시간성을 우리가 살고 있다는 자각, 소위 일본의 ‘전후’를 ‘한국전쟁 후’로 대체하는 작업이 요청”되는 것이라고. 동아시아의 흔적들, 그리고 비주류적 계보들을 발굴하다 “그래도 누군가는 이 식민지 전쟁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지 않을까” 한편, 저자의 두 번째 작업은 첫 번째 작업과는 상반된 벡터를 가진다. 저자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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