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지정학적 나그네는 쉬지 않는다 ― 삶의 역동성에 중독된 불안한 월경자들 외국인 200만 명 시대, 우리는 삶의 역동성에 중독된 지정학적 나그네다. 어제는 런던 뉴몰든에서 조선족이 일하는 한국 식당에 가 3개 국어 메뉴판을 펼치고, 오늘은 중국 칭다오에서 한족과 조선족이 섞여 일하는 공장을 돌아보며, 내일은 서울 대림동 차이나타운에서 조선족 육아 도우미하고 함께 탈북자가 가져다주는 중국 음식을 먹는다. 평생직장의 잔해 위에서 더 좋은 ‘잡’을 찾아 구인 사이트를 뒤지며, ‘헬조선’을 떠나 북유럽 이민을 꿈꾸고, 목숨걸고 국경 넘어 불법 이민자로 살며, ‘먼 거리 가족’을 견뎌내는 ‘가족의 곳간’이 된다. 경제적 가난, 불확실한 미래, 내 집 마련의 꿈, 사회적 압력 등 ‘경쟁의 지리학’ 속에 떠날 기회만 노리는 우리는 ‘불안’과 ‘역동성’에 포획된 중독자다. 이동의 계급성에 좌절하고 점증하는 양극화에 내몰리는 정처 없는 월경자다. 뉴몰든, 칭다오, 서울에서,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 《우리는 모두 조선족이다》는 이민자가 이민자를 만난 기록이다. 신혜란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교수는 2010년부터 2014년까지 현지 조사와 인터뷰 등 질적 연구 방법을 써 런던, 칭다오, 서울에 사는 조선족과 북한 출신 이민자들을 연구하다가 자기도 이민자라는 사실을 깨닫는다. 신혜란 교수는 학교를 옮기고, 유학을 가고, 전공을 달리하고, 사는 곳을 바꿨다. 조선족은 사는 곳을 옮기고, 직업을 갈고, 나라를 바꿨다. 정처 모를 정체성들이었다. 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 ― 돈, 비자, 집, 환율, 외로움, 외국어, 불안, 망설임 ‘이동의 시대를 살아내는 사람들’을 표상하는 조선족은 경쟁의 지리학을 구성하는 주인공이다. 중국 동북 3성에 모여 살던 조선족은 이민자 밀집 지역이 있는 ‘초국적 도시’ 런던, 서울, 칭다오로 옮겨가고, 살아남느라 고생하며, 구차한 편법을 쓰고, 정체성을 고민한다. 저자는 조선족 디아스포라로 흩어져 살아가는 이민자들을 각각 다른 장소에서 만났고, 시간이 흐르며 일어난 변화를 담아내려 5년에 걸친 종단 연구(longitudinal study)를 했다. 한 번 인터뷰한 뒤 아는 사람을 소개해달라고 부탁해서 다음 인터뷰를 잡는 ‘눈 굴리기 방법(snowball method)’도 많이 썼다. 두터운 인터뷰에 담긴 솔직한 이야기 속에서 우리는 조선족들이 이동하는 이유, 과정, 결과, 전망을 이해할 수 있다. 다른 이민자들처럼 조선족도 삶과 직업의 새로운 기회, 더 나은 교육, 가족이나 친척의 이주 같은 여러 이유 때문에 이주를 결정한다. 이주의 동기, 과정, 결과를 해석하는 틀은 이민자들이 주류 사회에 동화되면서 사라진다는 동화 이론(assimilation theory)과 이민자 ‘밀집 지역’이 발전하는 현실을 설명하는 초국가주의(transnationalism), 곧 다중 정체성 이론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더해 저자는 20개국 ‘찍어야’ 끝나는 불법 이주의 쳇바퀴 위에 선 조선족들을 ‘내모는 요인(pushing factor)’과 ‘끌어당기는 요인(pulling factor)’까지 입체적으로 살핀다. 가명으로 등장하는 조선족들은 합법 신분이 있든 없든 ‘나라를 잘못 만나 떠돌아다니는 사람’이라고 항변하지만, 이동과 떠남이 몸에 밴 일상은 ‘돈, 비자, 집, 환율, 외로움, 외국어, 불안, 망설임’ 같은 단어들로 가득하다. ‘영국 가면 호미로 금을 긁는다’는 말에 이주를 택하고 브로커에게 큰돈을 건넨다. ‘본전’을 뽑느라 불법과 탈법의 경계를 넘나들면서 나쁜 노동 조건과 불안을 견딘다. 도움과 정보를 주는 은인, 받기만 하는 얌체, 돈 떼먹는 사기꾼이 뒤섞인 낯선 곳에서 조선족은 적응, 동화, 비교, 분석의 전략을 알맞게 뒤섞는다. 조선족 이동의 가장 큰 특징은 한인 타운으로 이주한다는 점이다. 살던 곳을 떠난 한국인, 조선족, 탈북자가 뉴몰든에서 만난다. 칭다오에서는 한국인 사장과 조선족 중간 관리자가 부딪친다. 서로 말이 통하니 문제가 없을 듯하지만, 살아온 세월이 다르고 품은 생각이 멀어 갈등이 생기고 오해도 깊다. 한국인 사장은 무능한 조선족이 싫고 조선족 직원은 복종만 강요하고 차별이 일상인 한국인이 싫다. 그런 틈바구니에서 탈북자는 ‘3등 국민’이 된다. 중국에서는 소수 민족이고, 영국에서는 불법 이민자고, 한국에서는 ‘외노자’에 중국인 취급을 받으니, 나는 누구냐고 묻는 딸에게 조선족 엄마는 ‘브리티시 차이니즈 코리언’이라고 답한다. 장소도 늘 문제다. 런던의 주거 빈곤층이 돼 집주인 대신 집을 관리하면서 ‘집 맡기의 경제학’을 실천하고, 여공들이 떠나간 서울의 빈 벌집을 채운다. 저자는 현장 사진과 장소 스케치를 통해 밀집 지역의 구체적인 일상에 가깝게 다가간다. 이민자 밀집 지역은 그 안에 있고 싶으면서 벗어나고 싶은 곳, 안정감과 답답함이 뒤섞인 장소다. 자주 쉽게 움직이는 조선족의 활발한 이동성은 중국이 세계의 ‘공장’에서 ‘시장’으로 바뀌면서 또다시 변화를 겪는 중이다. 경제적 동기로 시작되고 첨단 통신 수단에 기대어 유지되던 먼 거리 가족은 떠날까 남을까, 가족의 재구성이냐 자유의 시대병이냐 하는 갈림길에 서 있다. 이런 이민자들에게 종교는 삶의 질서와 활력과 목표를 주는 ‘복음’이다. 조선족 교회와 탈북자 교회가 공존하는 밀집 지역은 그래서 조선족과 탈북자가 뒤섞인 교회의 확장판이 된다. 조선족은 우리의 미래다 ― 정처 모를 정체성들과 불안의 지정학 조선족은 일찌감치 불안한 이들이다. 식민과 해방과 분단을 거치며 불안한 이동을 먼저 시작하고, 삶의 역동성을 미리 겪었다. 이제 조선족은 멕시코인들이 건너던 국경을 넘어 불법 이주를 하고, 런던에서는 탈북자가 조선족의 뒤를 따른다. 삶의 역동성이 정체성이 된 시대에 이동은 자본의 역마살, 물건의 역마살, 사람의 역마살, 정책의 역마살로 이어진다. 한번 떠나온 사람은 돌아갈 때를 늦추고, 또 다른 가능성을 찾아 어느 곳으로 이동할지 ‘지정학적 눈치’를 본다. ‘왔다갔다’가 몸에 밴 이민자에게 떠나온 곳은 낯설고 머무는 곳은 익숙하다. 이동의 시대를 앞서 살아낸 지정학적 나그네 조선족은 ‘중간자’의 정체성에 기대어 불안의 시대를 건너고 있다. 조선족은 삶의 역동성에 이미 중독된 우리의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