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베트남 대(對) 중국 천년 항쟁의 역사를 만나다!
- 삼국지보다 재미있다!
“레러이는 지난 20년간 베트남을 식민 지배해 온 명나라 군을 하노이성 안으로 몰아넣었다. 무려 세 번이나 완전히 진압했다고 믿었던 레러이에게 오히려 절명의 위기에 놓인 명나라 군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레러이는 지금까지 싸워온 베트남 반란군들과는 완전히 달랐다. 그는 먼 훗날 북베트남이 미국과 싸울 때 전범으로 삼았던 게릴라전의 창시자였던 것이다. 그러나 종전까지는 아직 큰 고비가 남아 있었다. 명나라 당대 최고 명장인 유승(柳升)이 15만 대군을 이끌고 남하하고 있다는 보고가 빗발쳤다. 레러이는 힘든 선택을 해야 했다. 하노이의 명나라 군을 먼저 공격할 것인가? 그러다 성 함락 전에 유승의 지원군이 도착하면 역 포위를 당하게 된다. 아니면 북쪽으로 올라가 유승의 지원군을 먼저 상대할 것인가? 그러다 하노이의 명나라 군이 북상해 자신의 배후를 공격하면 패배는 불을 보듯 하였다.”
여러분이라면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할 것인가?
신간『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중국 천년전쟁』에서 만나는 베트남의 역사는 흡사 진흙 속에 묻혀있던 보석처럼 화려하고 흥미진진하다. 진시황 이후 중국을 통일한 역대 왕조들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이로 인해 1천 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서기 938년 불타는 바익당강 위에서 독립을 쟁취했고, 다시 1천 년간 중국과 간단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강대한 외적에 맞서기 위해 베트남은 매번 민족의 모든 역량을 결집했다.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빛나는 지혜와 지도력, 현란한 전략전술, 희생과 배신과 고뇌와 환희는 인간사의 모든 면을 극적으로 보여주었다.
수많은 외세 침략을 극복해 온 우리의 역사도 베트남과 맥이 닿아 공감도를 높인다. 한나라와 몽골 청나라 등 우리와 싸웠던 중국 왕조들의 군대가 남쪽으로 내려가 국경을 넘을 때 베트남은 어떻게 대응했는지 비교하는 것도 또 다른 재미이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베트남 역사의 장대함과 높은 문명 수준을 깨닫고 혹시라도 현재의 경제 격차 때문에 가졌을 편견을 깨게 된다.
저자인 오정환 MBC 보도본부장은 베트남의 역사 가운데 전쟁사에 집중했다. 전쟁은 막아야할 비극이지만, 축적된 갈등의 결과이자 종국적인 변화의 시작이기도 하다. 이를 통해 역사를 살피는 것은 어느 사회의 발전 궤적을 이해하는 지름길 중 하나이다. 또한 저자는 전쟁의 역사를 숫자와 지명의 나열에서 탈피해 생생한 사람들의 이야기로 되살리려 노력했다고 말한다. 승패의 결과를 넘어 그 원인을 하나하나 따졌고, 전장에 섰던 사람들의 신념과 지략 그리고 공포와 용기까지 돌아보았다.
MBC 동남아시아 특파원 출신인 저자는 베트남 역사에 대한 깊은 관심과 함께 본격적인 저술에만 5년 넘게 걸린 방대한 자료수집으로 서술의 정확성을 기했다. 또한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으면서도 핵심을 벗어나지 않는 간결하고 명확한 문체는 20년 넘게 기자로 활동해 온 경륜을 느끼게 해준다. 특히 저자는 수만 대군의 생사를 맡은 장군들의 피 말리는 고민을 목도하고 병사들의 함성, 칼 부딪는 소리, 말들의 울부짖음을 들으며 현장에 선 종군기자의 마음으로 사건을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철학을 전공하고 독학으로 이탈리아사(史)를 공부한 시오노 나나미처럼 홀로 베트남의 역사에 천착한 한 기자의 생동감 넘치는 저서가 우리 출판계에 새로운 스타 탄생을 예고할지 독자들의 반응이 기다려진다.
『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 - 중국 천년전쟁』
중국이 압박할 때 어떻게 할까?
베트남은 작년 10월 미국 군함 두 척의 캄란 항 정박을 허용했다. 1975년 베트남 전쟁이 끝난 뒤 41년 만에 미군이 다시 베트남 땅에 돌아온 것이다. 그전에 대한민국의 베트남전 참전 중 벌어졌던 비극적인 사건을 일부 언론들이 재조명했을 때 베트남 정부는 조용히 여론 확산을 막았다. 왜 그랬을까? 프랑스와 미국에 대항해 수십 년을 싸웠던 베트남 정부가 갑자기 외세 추종적이 된 것일까?
베트남의 과거 역사를 살펴보면 그 이유를 알 수 있다. 진시황 이후 중국을 통일한 역대 왕조들은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베트남을 침략했다. 이로 인해 1천 년간 식민 지배를 받았던 베트남은 서기 938년 불타는 바익당강 위에서 독립을 쟁취했고, 다시 1천 년간 중국과 간단없는 전쟁을 치러야 했다. 베트남의 역사는 중국의 침략에 맞선 투쟁의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송나라가 몽골이 그리고 명나라, 청나라가 대군을 보내 정복 야욕을 드러냈을 때 베트남은 민족의 모든 역량을 모아 맞섰다. 베트남은 살아남기 위해 전시는 물론 평화 시기에도 중국의 정세를 면밀히 살피고 항상 경계해야만 했다. 과거에나 지금이나 베트남이 가장 위협을 느끼는 상대는 중국이다. 오죽하면 호치민 주석도 전황이 다급할 때조차 중국의 병력 파견 제안을 거절하며 “중국군은 한번 들어오면 나가지 않는다”고 말했을까.
우리는 최근 고고도 미사일 방어체계, 사드 배치에 대한 중국의 호된 보복을 당하고 있다. 경제 협력으로 양국이 동반자 관계를 맺었다고 믿었던 우리는 놀라고 당황할 뿐이다. 중국의 실체는 무엇이고 강대국이 힘으로 우리를 옥죌 때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오늘 우리의 해답을 베트남의 오랜 역사 속에서 찾을 수 있다. 베트남은 중국의 왕조들을 적대시하지도 않았지만 전적으로 신뢰하지도 않았다. 중국과의 외교로 친선을 도모하고, 침략해 오면 항전하고, 종전 뒤에는 곧바로 관계 복원에 나서는 유연성을 발휘했다.
신간 『무릎 꿇지 않는 베트남 - 중국 천년전쟁』은 그 같은 베트남의 치밀한 외교와 처절했던 항전들을 마치 옆에서 지켜보듯 생생하게 되살려 내 보여준다. 저자인 오정환 MBC 보도본부장은 시간을 거슬러 가 베트남 지도자들의 민족 생존을 건 고뇌를 목도하고 병사들의 함성, 칼 부딪는 소리, 말들의 울부짖음이 가득한 전쟁터의 모습을 현장기자의 시각으로 냉철하게 전달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독자는 스스로 전장에서 서서 몰려오는 적군을 바라보며 공포를 억누르는 병사들을 독려해 싸우는 듯한 환상에 빠져들게 된다. 고비 고비 필요한 전략 전술을 고안해 이를 베트남 장군들의 실제 선택과 비교해 보는 워게임(war game)도 즐길 수 있다. 또한 그것은 치열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위안과 교훈이 되어줄 것이다. 우리 삶이 아무리 힘들기로서니 몽골의 수십만 대군이 몰려오던 날 하노이 성벽 위에 선 쩐꾸옥뚜언 장군의 막막함만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