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은 개발되었으나 조선인에겐 아무것도 없었다!”
식민지 개발·근대화론의 허구와 실상을
명쾌하게 분석·비판한 한국근대경제 역사서
2016 개정증보판 출간!
일본의 조선 식민 지배를 둘러싼 역사 논쟁이 어제오늘의 일은 아니나 한승조 교수의 ‘식민지 축복론’과 일본 후쇼사 교과서의 터무니없는 역사 왜곡, 시마네 현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 조례안 통과로 점점 더 집요해지는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등은 당혹스러움을 넘어 섬뜩함마저 느끼게 한다.
2005년, 오랫동안 일제하 경제사학을 연구해온 충남대학교 허수열 교수가 한·일 우익의 주장의 대표적 근거가 되고 있는 ‘식민지 개발·근대화론’을 철저히 논박해 그 허구를 보여주는 책 《개발 없는 개발―일제하 조선경제 개발의 현상과 본질》을 출간했고, 일본어 번역판으로도 출간되어 학계의 큰 주목을 받았다. 특히 이번에 새롭게 발간된 책은 지난 2005년 첫 발간 이후 수치와 추계 부분을 수정 보완해 7년 만에 새롭게 개정증보판으로 선보이게 되었다.
그러나 ‘식민지적 개발은 조선인의 진정한 개발을 저해한 개발 없는 개발이었다’는 전체적인 기조는 변함없다. 일본 식민 지배기 동안 급속히 근대화되었다는 농업, 공업,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민족별 극심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했으며, 그러한 식민지 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조선인들의 삶의 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개선될 전망도 없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개발의 허구성을 논증한다.
식민지 ‘개발’의 실상은 곧 ‘종속’과 ‘차별’의 강요
이 책의 목적은 제국주의 침략을 옹호하는 사람들의 가장 대표적인 주장인 ‘식민지 개발·근대화론’이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명백하게 밝히는 것이다. 실증적인 접근을 강조하는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은 경제성장의 ‘본질’을 꿰뚫지 못하고 그 ‘수치’만을 근거로 삼기 때문에 결국 제국주의 침략을 정당화하는 논리에 빠지고 만다. 그러나 저자는 일본 식민 지배기 동안 급속히 근대화되었다는 농업, 공업, 교육 등 각 분야에서 민족별 극심한 불평등과 차별이 존재했다는 것과 그러한 식민지 경제체제의 구조적 문제 때문에 조선인들의 삶의 질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고 개선될 전망도 없었음을 보여줌으로써 개발의 허구를 명쾌하게 설득시킨다.
먼저 저자는 식민지체제가 지속되는 한 조선인들에게 진정한 의미의 개발은 있을 수 없었음을 입증한다. 일제하 조선의 개발이 일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그것이 조선인의 개발로 이어져야만 한다. 수치상으로만 보면 일제 강점기의 조선경제는 세계적으로 높은 성장률을 달성하였다. 경제의 모든 부문이 급속히 근대화되었고, 자본주의가 확산되었다. 그러나 조선경제를 민족별로 해석하면 전혀 다른 현상이 나타난다. 즉, 민족 간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는 극단적으로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낳았고, 그것은 다시 불평등한 소유관계를 악화시키는 과정이 되풀이되었다.
소수의 일본인이 조선의 부의 대부분을 장악하게 되면서 민족별 경제적 격차는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커졌고, 시간이 경과하면서 그 격차는 더욱 확대되어 갔다. 민족별 경제적 격차의 확대는 민족차별을 더욱 조장함으로써 차별은 일상화되었다. (……) 개발의 결과로 돌아온 것은 소작농이나 임금노동자로서의 비참한 삶이었고, 민족별로 엄청난 경제적 불평등이었으며, 사회적으로 상향 이동의 가능성이 거의 없는 구조적 덫에 걸리는 것이었다.
둘째 저자는 일본의 식민지 지배가 끝나자 그동안 달성된 개발의 결과가 마치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리고 한국경제는 다시 일제 초의 상태로 되돌아가버렸음을 입증한다. 식민지 시대에 이루어졌던 개발의 유산은 남북분단과 해방 후의 혼란기,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거의 무의미한 수준으로까지 축소되어버렸다. 따라서 해방 후 한국의 경제성장에 거의 기여하지 못하였고 오히려 조선인 스스로의 힘에 의한 개발을 저해하는 악영향을 미쳤다.
역사적 통계로 유명한 메디슨의 추계의 의하면 1911년 조선의 1인당 국내총생산은 777달러였다. 일제 강점기 피크에 도달했던 연도는 1937년으로서 1,482달러였지만, 중일전쟁 이후에는 감소추세로 돌아서서, 1944년 1,330달러로 줄어들었고, 1945년에는 616달러로 급락했다. 1945년의 수준은 1911년보다 더 낮은 것이었다. 그리하여 해방이 되었을 때 조선은 그 당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농업국의 하나로 되돌아갔다. 이런 상태가 ‘개발 없는 개발’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셋째 저자는 일제 강점기에 이루어졌던 개발의 유산이 해방 후 한국의 공업화 과정에서 매우 제한적인 역할밖에 하지 못했음을 입증한다. 일제가 제국주의적 침략을 정당화하기 위해 내세운 ‘개발’의 실상은 곧 ‘종속’과 ‘차별’의 강요였다. 즉, 자국의 이익을 관철시키기 위해 이웃나라의 자유의지를 짓밟는 제국주의적 침략은 생산적·발전적 근대화 과정과는 거리가 먼 야만화, 반문명화의 과정에 불과했다.
일제 강점기에 도입된 각종 근대적 제도들이 해방 후 한국사회의 형성에 적지 않게 기여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또 다른 측면에서의 많은 부정적 측면을 수반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쉽게 평가하기 어렵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남북분단과 민족갈등이다. 일제 강점기에 활약했던 많은 조선인 기업가들은 해방 후 친일파라는 멍에를 숙명처럼 짊어지고 다녀야 했고, 그런 것들이 오늘날 한국의 기업이나 기업가에 대한 부정적 시각을 형성하는 데 일조했다.
일제하 조선경제 개발 경험 통해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의 폐단 경계
저자는 이러한 점들 때문에 일제 강점기의 개발은 ‘개발 없는 개발’이었다고 결론 내린다. 그러나 이 시대에 이루어진 각종 제도의 변화와 근대적 요소의 도입이 해방 후 한국 사회의 전개과정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한 측면과, 한편으로 식민지 지배기 동안 받은 깊은 상처와 남북분단, 한국전쟁, 그 이후 이어지는 휴전상태의 후유증이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채 남아 있기 때문에 이런 점에 대한 평가가 동시에 진행되어야 일제지배에 대한 종합적 평가가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반일감정이나 한국의 민족주의 혼을 다시 불러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협량한 민족 이기주의의 발호가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일제 강점기 조선경제의 개발 경험을 통해 비판하는 데 있다고 강조한다. 최근 일본의 행태와 일련의 사건들에서 잘 알 수 있는 것처럼 국수주의적 민족주의나 지나친 우경화는 근린 국가들 사이에 지울 수 없는 상처와 갈등의 골을 확대시킴으로써 현재와 미래의 상생적 발전을 가로막기 때문에 철저히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저자는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국수주의적 민족주의에 대해서도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일침을 놓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