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싱턴 포스트 만들기

벤 브래들리
45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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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옮긴이의 말 머리말 1장 하버드에서 2장 해군 장교로 태평양전재에 참전하다 3장 뉴햄프셔, 풋내기 기자 시절 4장《워싱턴 포스트》와 만나다 5장 파리, 미국대사관 공보관 브래들리 6장 다시 기자 브래들리가 되다 7장 워싱턴으로 돌아가다 8장 존F. 케네디와의 만남 9장 내 인생을 바꾼 사람들 10장 존F. 케네디의 암살 11장《워싱턴 포스트》1965~71 12장 펜타곤 페이퍼 공방전 13장 워터게이트, 워터게이트! 14장 워터게이트 이후 15장《워싱턴 포스트》1975~80 16장 재닛 쿡 사건의 교훈 17장 국가안보, 공적인 것과 사적인것 18장 떠나며, 또 나아가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워싱턴의 중소 신문사에서 미국 유수의 언론으로 성장한「워싱턴 포스트」, 그 배후에는 언론인 벤 브래들리가 있었다. 혈기 넘치는 젊은 기자들의 기사를 옹호하고 지원하며 보도를 밀어붙인 편집인으로서의 집념, 그리고 캐서린 그레이엄이라는 훌륭한 사주 아래에서 기자들을 지휘한 발군의 리더십은「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의 언론계에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벤 브래들리가 증언하는 20세기 미국의 대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 보도에 얽힌 다채로운 일화들은 언론의 올곧은 상을 고민하는 동시대의 우리에게 유의미한 고민을 던져줄 것이다. 워터게이트 보도를 주도하며 <워싱턴 포스트>를 미국의 대표 언론으로 성장시킨 언론인 벤 브래들리의 살아 있는 증언들 워터게이트 사건을 계기로 워싱턴의 중소 신문사에서 미국 유수의 언론으로 성장한 <워싱턴 포스트>, 그 배후에는 언론인 벤 브래들리가 있었다. 혈기 넘치는 젊은 기자들의 기사를 옹호하고 지원하며 보도를 밀어붙인 편집인으로서의 집념, 그리고 캐서린 그레이엄이라는 훌륭한 사주 아래에서 기자들을 지휘한 발군의 리더십은 <워싱턴 포스트>가 미국의 언론계에서 굳건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큰 힘이 되었다. 벤 브래들리가 증언하는 20세기 미국의 대사건들, 그리고 그 사건 보도에 얽힌 다채로운 일화들은 언론의 올곧은 상을 고민하는 동시대의 우리에게 유의미한 고민을 던져줄 것이다. 미국 최고의 언론, <워싱턴 포스트>는 어떻게 탄생했는가 <워싱턴 포스트>는 《뉴욕 타임스》와 함께 미국 최고 유력지로 꼽히는 신문이다. 애초에는 민주당 기관지로 창간되었으나 이후 매각되어 민주당과 관계를 끊는다. 신문은 점차 보수주의와 상업주의에 물들었으며, 특히 미국 역사상 최악의 대통령이라는 평을 듣는 워런 하딩의 입김이 지나치게 반영되어 신문의 평판이 땅에 떨어졌다. <워싱턴 포스트>는 파산지경에 내몰렸으며 결국 유진 마이어에게 넘어갔다. 마이어와 그의 사위인 필립 그레이엄은 독립적인 논설과 정확한 보도, 국제적인 감각으로 신문을 되살려냈으며 폭넓은 독자층을 확보해나갔다. <워싱턴 포스트>가 그저 그런 군소 신문사에서 일약 미국을 대표하는 정론지로 자리매김하게 된 계기는 뭐니뭐니해도 워터게이트 사건이었다. 재선을 노리던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하수인들이 워싱턴의 워터게이트 호텔에 있던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침투해 불법행위를 저지른 이 사건은 뇌물수수와 매수, 협박, 공직자의 노골적인 거짓말로 미국 민주주의의 병폐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말았다. 닉슨은 이를 ‘3류 주거침입’ 사건으로 치부해 꼬리를 자르려 했지만, 《워싱턴 포스트》는 치밀하고 끈질긴 탐사보도로 사실을 밝히고 여론을 불러일으킴으로써 닉슨을 권좌에서 끌어내렸다. 미국 역사상 현직 대통령이 불법행위로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물러난 초유의 사건이었다. 진실을 밝히는 것, 특히 모든 정보와 권력을 한손에 쥔 최고 권력자의 불법행위를 둘러싼 진실을 밝히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결정적인 정보는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신기루처럼 좀처럼 드러나지 않고, 사회 혼란이 우려된다며 이제 그만 덮어버리자는 압력과 회유가 들어온다(실제로 국무장관을 지냈던 헨리 키신저가 이런 주장을 펴기도 했다). 더불어 허위사실을 유포한다는 모함을 씌워 거액의 소송을 걸거나 심지어 목숨을 위협하기까지 한다. <워싱턴 포스트>는 역설적으로 험난하고 ‘좁은 길’을 선택함으로써 그것이 생명의 길임을 보여주었다. 반세기 전 부패하고 무능한 하딩 대통령의 ‘친구’가 되어 몰락의 길을 걸었으나, 이번엔 국민과 민주주의의 편에서 부정한 권력과 끝까지 맞서 싸움으로써 미국을 대표하는 신문으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것이 비단 몇 십 년 전 미국에만 해당되는 이야기일까. 꼿꼿한 기자, 대통령의 친구, 뛰어난 언론인의 일생 브래들리는 전통적으로 공화당을 지지해온 보수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전형적인 WASP였다. 하버드를 졸업하자마자 태평양으로 달려가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세상에 다시 돌아온 그는 뉴햄프셔 주의 작은 신문사 기자를 거쳐 <워싱턴 포스트>에 들어간다. 당시 <워싱턴 포스트>의 발행부수는 워싱턴에 있는 네 개 일간지 중 3위였다. 봉급은 짜기로 악명 높았지만 아무도 겁내지 않고 어떤 주제도 두려워하지 않는 개혁적 저널리즘을 추구한다는 명성을 얻고 있었다. 하지만 신문은 매년 적자를 면치 못하고 있었으며, 성장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불투명한 전망과 원치 않는 가십기사들 사이에서 고민하던 브래들리는 옛 친구의 천거로 파리 미국대사관 공보관에 자리를 얻어 유럽으로 건너간다. 냉전시절 소련과의 외교전, 매카시 하수인들과의 갈등, 로젠버그 부부의 사형 사건 등 풋내기 공보관이 경험하고 바라본 세상일은 녹록치 않았다. 그는 다시 타자기를 두들기는 책상 앞으로, 사건이 벌어지는 현장생활로 돌아간다. <뉴스위크> 파리지국장을 맡은 것이다. 당시는 1960년대였고 세계는 크게 흔들리고 있었다. 알제리인들은 독립운동의 불꽃을 댕겼고 이집트의 나세르는 수에즈운하를 국유화했다. 베트남에서 프랑스군은 궤멸당했으며 이스라엘은 팔레스타인 가자지구를 침공했다. 브래들리는 알제리와 수에즈 그리고 가자로 날아가 총탄이 쏟아지는 최전선에서 취재해 기사를 송고했으며 방금 함께 있었던 동료 기자들의 희생을 목격하기도 했다. 제국주의의 침탈에 대항하는 제3세계 민중들의 저항이 세계사를 새로이 써나가던 희망의 시대이기도 했던 당대 역사의 현장을 지켜보고 이를 기록한 것은 기자 브래들리에게 커다란 행운이었다. 우연은 가끔 사람의 인생을 바꾼다. 브래들리가 워싱턴 포스트에 들어간 것 자체가 우연이었고, 창업자의 사망으로 존폐 여부가 불투명하던 <뉴스위크>를 예전 상사였던 <워싱턴 포스트>의 필 그레이엄에게 인수하지 않겠느냐고 제의한 것 역시 마찬가지였다. 이 우연은 결국 <뉴스위크> 기자 브래들리를 <워싱턴 포스트>편집인으로 이끌었으며 이로서 브래들리와 <워싱턴 포스트>의 신화가 시작된다. 1960년대 미국의 희망이었던 케네디와의 만남도 우연이었다. 두 사람은 한 동네 주민으로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영광과 좌절, 희망을 함께 나누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의 눈에 비친 존 케네디는 어떤 사람일까. 그는 우선 매력적인 사람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가족 간의 우애를 소중히 여긴 사람이었으며 세상에 알려진 것처럼 엄청난 바람둥이이기도 했다. 기자들이 대통령후보의 이력과 사생활을 탐정처럼 꼼꼼이 파헤치는 오늘날 같은 풍토라면 케네디는 결고 대통령이 될 수 없었을 것이다. 케네디는 자기 생애 최악의 경험이라고 토로한 피그스 만 침공이 실패로 끝나자 “저 새끼들(군 지휘부)이 과일 샐러드를 앞에 놓고 저기에 앉아서 고개를 끄덕이며 그게 잘될 거라고 했지. 내가 왜 그렇게 바보짓을 했을까?”라며 후회했다고 한다. 워터게이트 사건은 언론과 정치인들의 관계를 근본적으로 바꿔놓았다. 기자들은 이제 정치인과 관료들이란 필요하면 아무 때나 거짓말로 치부를 가리려 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소위 펜타곤 페이퍼 사건도 마찬가지였다. 이것은 미국이 역사상 가장 부도덕한 전쟁인 베트남전쟁에 개입하는 과정과 역사를 다룬 미 국방성의 연구자료이며 분량이 무려 1만 4000페이지에 달했다. 먼저 <뉴욕 타임스>가 이 문건을 근거로 미국민은 전혀 몰랐던 정부의 전쟁계획을 폭로하자 정부는 언론이 국가안보를 위협한다며 비난하며 소송을 걸어 관련 기사의 보도를 정지시켰다. 미국 정부는, 이 보도가 “국가에 큰 위험을 초래할 수 있으며” “병사들의 죽음, 동맹의 파괴, 적과의 협상에서 어려움 증가, 협상에 나선 우리 외교관의 무능”을 초래할 수 있다고 주장했지만, 세월이 흘러 당시 행정부 입장을 대변했던 어윈 그리스월드는 소송 자체가 신기루였다고 털어놓았다. 그들은 정부의 실책과 부정을 가리기 위해 ‘국가안보’를 내세워 국민의 알 권리를 묵살하려 했던 것이다. 이런 일은 세계 어디에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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