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타인의 존엄성을 지키고자 불평등에 맞서 싸운 정의로운 정신 ‘함께 사는 세상’을 향한 노회찬의 삶과 꿈 “인간이 인간을 부당하게 억압하고 착취하는 일을 근절시켜 모든 인간이 인간답게 사는 세상을 만드는 일―그런 사회운동, 정치운동을 펼치는 것이 바로 저의 직업입니다.”(1992년 부모님께 보낸 옥중편지에서, 본문 191~192쪽) 사회적 불평등에 맞서고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기 위해 평생을 바친 노회찬의 삶을 집대성한 『노회찬 평전』이 출간되었다. 이 책을 기획한 노회찬재단은 노회찬의 말과 글, 행적을 모아 ‘노회찬 아카이브’를 구성하였으며, 저자 이광호는 여기에 노회찬의 가족, 동지, 친구들의 기억을 보태 방대한 원고를 정리하였다. 노회찬의 삶을 노동운동과 완전히 분리하여 서술할 수는 없으나, ‘운동사’ 그 자체가 아닌, 이러한 운동의 흐름을 직접 겪어낸 노회찬의 삶에 초점을 맞췄다. 이 책은 노회찬의 62년 동안의 삶을 따라가며 그가 보여준 휴머니즘, 노동운동 및 진보정치에 대한 헌신과 열정을 살펴본다. 이를 위해 ‘있는 그대로 기술한다’라는 원칙을 적용하여, ‘함께 사는 세상’을 이루기 위한 노회찬의 고민과 그 과정에서 내릴 수밖에 없었던 결단, 그에 따른 인간적 고뇌와 이를 극복하고자 노력하는 모습을 담았다. 또한 ‘2023년 현시점의 정본 전기’를 지향하며 노회찬의 생각과 행동을 통해 현재 사회 상황에 적합한 시사점을 제공하고자 하였다. 이 책은 노회찬이 학생운동을 넘어 노동운동에 뛰어들고, 투쟁과 사랑으로 뜨거웠던 젊은 날들을 거쳐, 이후 한국 최초의 대중적 진보정당을 만드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며 진보정치에 몸담기까지, 그가 경험하고 성찰하며 행동하게 된 과정을 상세히 담고 있다. “휴머니스트 노회찬은 지금 뭐라고 말할까?” 노회찬의 삶을 통해 엿본 그의 단면은 독재에 저항하고 억압과 착취에 분노한 휴머니스트다. 혐오와 갈등, 차별과 편견, 냉소와 체념을 발견하기가 무척 쉬워진 사회. 인간에 대한 사랑이 더욱 절실해진 지금이다. 노회찬이 살아 있다고 하더라도, 최근 부쩍 첨예해진 한국 사회의 다양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라면 우리와 함께 고민하고 행동하지 않았을까? 이 책은 “지금 노회찬이라면 뭐라고 말할까?”라는 질문을 던지며 마무리된다. 이 질문은 해답을 찾기 위한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이어가자는 호소이며, 연대를 요청하는 메아리다. 이 책을 통해 완결되지 않은 채 끝난 노회찬의 삶과 꿈을 다시 우리 곁으로 불러내고, 우리와 다를 바 없었던, 우리와 비슷한 고민을 하며 그럼에도 자신의 꿈을 고통스럽게 밀고 나갔던 인간 노회찬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이 앞세우는 노회찬 정신은 ‘평등과 공정’이다. 노회찬 하면 떠오르는 ‘삼겹살 불판’이나 ‘6411 버스’가 그의 생각을 전부 설명할 수 없듯이, 노회찬의 정신을 한 가지 단어나 사상으로 특정할 수 없는 것은 분명하나, 평등과 공정이 현재 사회에 절실한 가치라는 사실을 부정할 수 없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가로막는 불평등과 불의가 여전히 만연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불평등과 불의에 맞서 싸우는 것이 노회찬의 직업이었고, 그 바탕에는 휴머니즘이 있었다. 이 책은 노회찬의 휴머니즘이 “구체적 현실에서 고통받는 사람들을 위한 휴머니즘이었다”(본문 479쪽)라고 말한다. 우리가 아는 노회찬, 우리가 모른 노회찬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사회·정치운동을 직업으로 삼은 반항아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던 2018년 7월의 어느 날.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의 복도에는 조문을 하러 온 사람들의 긴 줄이 계단으로 타고 층층이 이어졌다. 노회찬을 보내기 위해 모인 사람들이었다. 먼저 온 사람 나중 온 사람만 있을 뿐 윗사람 아랫사람은 없어서 국회의장도 차례를 기다려 조문을 했다. 고인을 잃은 안타까움을 간직한 채 저마다 소곤소곤 적당히 복작대는 분위기에는 저잣거리부터 국회의사당까지 평등을 실천하려던 고인의 뜻이 어린 듯했다. 그렇게 사람들은 친구 같았던 정치인을 떠나보냈다. 노회찬의 삶은 어땠을까? 뭇사람들에게 익숙한 건 국회의원으로서의 그의 모습이다. 하지만 그는 한편으로 모범적인 학생이기도 했고, 시험에 낙방해 분루를 삼킨 수험생이기도 했으며, 어려서부터 사회변혁을 꿈꿨던 될성부른 혁명가이기도 했다. 노회찬의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교과서다. “인류가 현재까지 성취해낸 자연, 인간, 사회에 대한 과학적 지식, 보편적 가치와 철학으로 채워진 책.”(본문 43쪽) 이것이 노회찬이 말하는 교과서였으며, 그는 자신의 삶에 교과서가 가장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말한 바 있다. 교과서에서 배운 정의감과 인류애는 확고한 가치로 그의 내면에 자리 잡았다. 1972년 10월 17일 대통령이 국회를 해산하고 이른바 ‘10월 유신’을 발표한 날, 열여섯 노회찬은 부리나케 집으로 가 교과서를 펼쳤다. 교과서에는 그가 생각한 대로 대통령제 아래서 대통령은 국회를 해산할 수 없다고 명시되어 있었다. 이 날로부터 1년 후인 1973년 11월 29일. 고등학생이었던 그는 유신독재 반대 유인물을 제작하여 살포했다. “소년들을 투사로 만든 시대”(본문 105쪽)에서 노회찬은 교과서에서 배운 대로 행동하는 ‘반항적 모범생’이었다. 노회찬만큼 운동과 투쟁에서 잔뼈가 굵은 정치인이라면 대학생 시절에도 학생운동으로 이름깨나 날렸을 거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그는 대학생이라는, 당시로선 특권적일 수 있는 지위를 내세우려 하지 않았다. 저항과 변혁의 맹아는 노동 현장에 있다고 판단하고 일찍부터 자료 조사를 시작했다. 1979년에 대학에 입학했으나 용접을 배우러 다녔고, 83년에 용접 자격증을 따 서울, 부천, 인천의 공장에서 일을 하며 노동운동을 시작했다. 84년부터는 노동 현장으로 가는 대학생 운동가들이 본격적으로 늘어나기 시작했으니 노회찬은 그보다 조금 빨랐던 셈이다. 그가 얼마나 철저히 노동자로서 생활했는지는 아내와의 일화에서도 알 수 있다. 그의 아내 김지선 씨조차 부산의 시어머니를 만나서야 남편이 고려대를 졸업했다는 사실을 들었을 정도였다. 김 씨도 당시 내로라하는 노동운동가였고, 비혼으로 운동에 투신하기로 마음을 먹었는데 노회찬의 절절한 청혼에 마음이 움직여 1988년 부산의 시댁을 찾아갔다고 한다. 그렇게 그해 12월 두 사람은 결혼을 한다. 1987년 6월 항쟁은 제도적 민주화의 길을 살짝 열어주었지만 투쟁의 현장은 여전히 엄동설한이었다. 정부는 여전히 노동조합을 좌경 세력으로만 치부하며 탄압을 했고 노동운동가들은 언제 체포영장이 떨어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활동을 해야 했다. 노회찬 역시 1989년 12월 23일 크리스마스를 이틀 앞두고 대공 수사관들에 의해 체포되었다. 당시 면회가 금지되었지만 김지선 씨는 매일 홍제동 경찰청 대공분실을 찾아가 기어이 면회를 할 수 있게 되었다. 부부는 경찰이 알지 못하게 동지들한테 전할 비밀 쪽지를 주고받기도 했다. 바깥세상을 보지 못하는 2년 4개월 남짓 되는 기간 노회찬은 어머니에게 83통이 넘는 편지를 보냈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낸 편지는 두 배가 넘어 172통에 이른다. 비록 징역살이를 하고 있지만 올바른 일을 했기 때문에 부끄럽지 않다고 결연한 ‘위로’를 담은 편지글 말미에는 면회 오실 때 멀미하시지 않게 ‘귀밑에’를 챙기라는 노회찬 특유의 잔정이 서려 있다. 진보정당 역사와 얽힌 삶의 여적 1990년대 노회찬의 삶은 영화로우면서도 안타깝기도 한,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진보정당의 역사와 겹쳐 펼쳐진다. “불판 갈아보자”는 촌철살인으로 하룻밤 새 화려하게 떠오른 정치 신인으로 비쳤지만 그 뒤에는 기나긴 노력과 활동, 공부가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