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쓰는 설공찬전

이서영님 외 2명
112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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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공찬전>을 쉽고 재미있게 그림 동화처럼 새로 쓴 소설책이다. 난재 채수의 한문소설 국문번역본이 1996년, 국문학자 이복규 교수에 의해 일부 발견되었는데, 이 소설은 원본은 한문이지만 1511년 당시에 이미 국문으로 번역되어,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서 한글로 읽힌 최초의 소설로서 국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다. <설공찬전> 국문본은 <묵재 일기>라는 한문일기책 속에서 이복규 교수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팀이 수집해 온 <묵재일기(1535년~1567년)> 10권의 책 복사본을 검토하다 제3책 뒷장에서 <설공찬전> 국문본 일부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설공찬전>은 중종 때(1511년), 왕명으로 수거되어 불태워진 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려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는데 1996년, 국문번역본이 발견되었고, 2020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그림 듬뿍 담아 이야기책으로 다시 펴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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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들어가며 Introduction 006 추천의 글 A Letter of Recommendation 014 다시 쓰는 설공찬전 1장 살구나무 아래서 under the apricot tree 017 2장 공찬이의 죽음 death 027 3장 공침, 공심에게 빙의되다 obsession 035 4장 공찬이의 혼령이 공침이에게 들어가다 045 5장 공찬이의 저승 이야기 underworld 051 6장 비사문천왕:착한 사람 복을 받고, 059 나쁜 사람 벌을 받고 the Lord of underworld 7장 작별 그리고 새로운 시작 new start 069 ┃별책 1 [설공찬전]의 작가 난재 채수는 누구인가 084 ┃별책 2 [다시 쓰는 설공찬전]을 펴내며 093 ┃나가며 Epilogue 100 ┃참고자료 104 ┃참고문헌 107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다시 쓰는 설공찬전은 설공찬전을 쉽고 재미있게 그림 동화처럼 새로 쓴 소설책이다. 난재 채수의 한문소설 국문번역본이 1996년, 국문학자 이복규 교수에 의해 일부 발견되었는데, 이 소설은 원본은 한문이지만 1511년 당시에 이미 국문으로 번역되어, [홍길동전]보다 100년 앞서 한글로 읽힌 최초의 소설로서 국문학사적 가치가 매우 높은 책이다. [설공찬전] 국문본은 [묵재 일기]라는 한문일기책 속에서 이복규 교수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팀이 수집해 온 [묵재일기(1535년~1567년)] 10권의 책 복사본을 검토하다 제3책 뒷장에서 [설공찬전] 국문본 일부를 발견하였던 것이다. [설공찬전]은 중종 때(1511년), 왕명으로 수거되어 불태워진 후 역사 속으로 사라져 버려 그 내용을 전혀 알 수 없었는데 1996년, 국문번역본이 발견되었고, 2020년 쉽고 재미있는 이야기와 그림 듬뿍 담아 이야기책으로 다시 펴내게 되었다. [설공찬전]이 당대 대중의 인기를 끌었던 요인 중 하나는 사람들에게 친숙한 귀신 이야기와 무속 이야기 등이 절묘하게 결합되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대중들의 손에서 손으로 이 소설책이 넘나들자 결국 조정에까지 전해져 모두 불태워지기에 이른다. 이 책이 불태워진 가장 큰 이유는 '왕이었더라도 반역하여 집권하는 경우 지옥에 떨어진다'는 설명이었을 것이다. 당시 중종은 반정을 통하여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이 되었기 때문이다. 또 당시는 유교 이념이 정치와 사회의 근간이었는데 유교 이념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영혼과 죽음의 세계를 끌어와 당시 사회를 비판한 것도 불태워진 이유였을 것이다. 특히 '여성이라도 글만 할 줄 알면 얼마든지 관직을 받아 잘 지내더라'는 표현은 당시 유교 사회의 한계를 꼬집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임금에게는 무조건 복종해야 하고, 남자는 귀하고 여자는 천하다는 '남존여비' 사상에 반하는 [설공찬전]은 비난의 표적이 되었고 결국 책이 모조리 불태워지게 된 것이다. [설공찬전]은 1511년에 집필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6세기 채수의 사고는 21세기인 지금에도 유효하다. 16세기에 받아들여질 수 없었던 혁신적인 그의 사고방식을 담은 [설공찬전]은 당대 사람들의 보편적인 관념을 깨뜨리는 혁명적인 사고를 담고 있는 책이다. "[금오신화]에 이어 두 번째로 나온 고전 소설이자 최초의 국문 번역 소설로서 국문학사적 가치가 높다. 독자들에게 광범위한 영향을 미쳤으며, 소설의 대중화를 이룬 첫 작품으로 평가되는 [설공찬전]을 그림과 함께 재미있게 다시 쓴 책인 것이다. [홍길동전]은 1618년, [설공찬전]은 1511년이니 [설공찬전]이 [홍길동전]보다 100년 전에 국문(번역)소설로서 대중에게 읽힌 책이 오늘 날 21세기에 화려하게 되살아난 것이다.. 채수는 왜 혼령이 빙의되고 귀신이 등장하고 저승을 경험하게 하는 소설을 썼을까? 그 자신이 10대 때 귀신 체험을 하였던 기억이 있었고 백성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많이 가졌기 때문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이야기를 백성들이 공감할 수 있도록 그들의 입장에서 써내려간 것이다. 채수는 매우 강직해 임금에게 직언을 서슴지 않았던 사람이다. 그는 성종에게 이렇게 말한 적도 있었다. 채수는 혼령이 빙의되고 귀신이 등장하고 저승 경험을 하게 하는 등 당대 독자들의 흥미를 유발함으로써 자신의 강직한 생각을 사람들에게 표현하고 싶었던 것이다. 국문학사적으로도 [설공찬전]의 가치는 높이 평가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설은 1470년대에, 김시습(1435년~1493년)이 쓴 [금오신화]다. 여기에는 한문으로 된 5편의 소설이 실려 있다. 그 뒤를 잇는 작품은 1553년, 신광한(1484-1555)이 한문으로 지은 [기재기이]다. 두 작품 사이에는 80여 년간의 사이가 있어 아쉬움을 느꼈으나, 그 중간에 창작된 [설공찬전]이 발견됨으로써 소설의 발달과정을 자연스럽게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아울러 최초의 국문소설로 말해지는 허균(1569년~1618년)의 [홍길동전]은 세종대왕의 한글 창제로부터 170여 년 정도의 거리가 있어, 학계에서는 [금오신화]와 [홍길동전] 사이에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한글 작품이 있었으리라고 추정해 왔는데, 그 좋은 물증으로 나온 것이 [설공찬전] 국문본이다. 원작은 한문이지만 나오자마자 한글로 번역되어 모든 사람이 읽었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설공찬전]은 순창을 배경으로 한 오래된 귀신이야기다. 그러나 혁신적인 사고방식을 담고 있어 이것을 21세기적으로 해석하여 다시 쓰는 설공찬전으로 쉽고 재미있는 그림 이야기로 재탄생시켜 상상가득한 이야기로 되살렸다. 지나온 역사가 없다면 지금의 우리 또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거와 현재의 융합이 새로운 미래로 나아갈 수 있는 지혜로운 방법일 것이다. [다시 쓰는 설공찬전]은 판타지적 이야기로 권선징악과 여권 신장 및 가부장적인 사회 풍자를 재미있는 스토리로 우리에게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다. 귀신 이야기, 빙의 스토리 풍자와 그림을 가득 담은 ‘다시 쓰는 설공찬전’의 매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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