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하고 싶은 말을 하는 시가 아니라 하지 않아도 될 말을 대충 쓴 시를 나는 지지한다. 예컨대 “‘시는 읽는 장르가 아니라 쓰는 장르’라는 확신을 실천하면서 박세현은 자기 속도로 시를 쓴다.”(차이, 문학평론가) “박세현은 한국시의 어떤 범주에도 귀속되지 않는 변방이자 동문서답이다.”(이심정, 시인) 박세현은 2020년에 출간한 두 권의 산문집을 통해 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가감없이 피력했다. 산문집의 핵심은 한국시가 너무 질서정연하고 너무 시 같다는 것. 시에 대한 평균적 합의가 격파되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 생각이다. 산문집에서 몇 문장을 인용하면서 그의 시집을 염탐한다. * 쓸 수 있는 시를 쓰는 게 아니라 쓸 수 없는 시를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 * 맞춤법에 익숙하면 페이스북 시인이 되는 거지. * 할 게 없으니 시라도 쓴다는 전철 옆자리의 대화를 못 들은 척 흘려 듣는다. 나는 이렇게 모르는 당신들에게 들켜지는구나. OECD 쪽도 궁금. * 오타가 시를 낳는다는 시적 진실은 아직 유효한가요? * 좋은 시인은 부족하지 않다. * 누군가 내 시를 읽으리라는 고상하고 담대한 착각은 언제나 나를 흥분시킨다. * 당신도 시인이 될 수 있다. (단, 수강료만 있다면) * 노래를 위해 창법을 버리듯이 시를 위해 작시법을 버려야 한다. 누구 말이지? * 시인이 직업이 되는 순간은 두 가지 경우뿐이다. 하나는 시를 발표하고 정상적이 원고료를 받을 때 그리고 그 저렴함에 새삼스럽게 놀랄 때 * 시집에 왜 해설을 달지 않으세요? 시집에 왜 해설을 달아야 합니까? 앞 문장의 왜와 뒷문장의 왜는 다른가? 같은가? * -비 맞은 중 염불하는 소리 누군가 내 시를 대신 쓰는 것 같다 (스님, 화 내지 마세요) * 자칫하면 시인된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요? * 시인 듯 시 아닌 시 같은 시 * 2000년대 이후 시들의 공통 특징이 있다면 시를 너무 잘 쓴다는 사실입니다. 반복해서 말하자면 잘 쓴 시가 너무 많다는 겁니다. 이렇게 잘 쓸 필요가 있을까요? 나는 반댑니다. 잘 쓴 시가 보고 싶은 게 아니라 탈문법적이고 비정서법적인 시를 읽고 싶습니다. 수정 이전의 초고만 보고 싶다는 것. 어서 와, 이런 시 처음이지? (산문집 ≪거미는 홀로 노래한다≫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