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처음 소개되는 윌리엄 포크너의 추리소설
윌리엄 포크너는 어니스트 헤밍웨이, 스콧 피츠제럴드 등과 함께 ‘로스트 제너레이션’을 대표하는 동시에 제임스 조이스와 버지니아 울프 등과 함께 모더니즘 문학을 이끈 20세기 최고의 작가 중 하나이다. 그는 ‘의식의 흐름’을 이용한 언어적 실험을 선보이며 현대문학의 지형을 뒤흔들어놓았고 1949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한다.
1942년 1월, 포크너는 자신의 출판 에이전트에게 「나이츠 갬빗」이라는 제목의 단편을 보낸다. 잡지사 세 곳에서 모두 거절 의사를 표하자, 포크너는 몇 년 뒤 이를 확장하여 더 긴 중편 길이의 소설로 개작한 뒤 1949년 추리소설집의 표제작으로 발표한다. 이 책 『나이츠 갬빗(Knight’s Gambit)』에 실린 단편들은 1930년과 1940년대 사이 다양한 시기에 쓰여 발표된 작품으로, 포크너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1949년, 랜덤하우스(Random House)에서 이를 모아 출간한다.
첫 다섯 편의 작품 「연기」, 「몽크」, 「수면 위의 손」, 「내일」, 「화학적 실수」는 여러 잡지에서 처음 발표되었고, 표제작이자 마지막 작품인 「나이츠 갬빗」은 1949년 책으로 엮여 처음 소개되었다.
검사 개빈 스티븐스의 범죄 수사를 좇는 여섯 편의 이야기
『나이츠 갬빗』은 1949년 발표된 윌리엄 포크너의 추리소설집이다. 표제작을 포함한 총 여섯 편의 작품에 검사 개빈 스티븐스가 등장하며, 그는 포크너의 또 다른 추리소설 『무덤 속의 침입자』(1948)의 주요 등장인물이자, 포크너가 창조한 가상의 공간, 미시시피주 요크나파토파 카운티 제퍼슨 출신의 카운티 검사이다. 그는 법보다 정의에 더 관심이 많은 인물로 묘사된다.
이 여섯 편의 이야기에 등장하는 주인공 개빈 스티븐스는 『8월의 빛』, 『내려가라, 모세여』 등을 비롯한 포크너의 작품 열일곱 편에 걸쳐 등장하며, 포크너의 작품 세계에서 가장 자주 등장하는 인물 중 하나다. 그는 주로 정의와 진리의 대변자이자 수호자로 등장한다. 특히 『어느 수녀를 위한 진혼곡』(1951)에서 포크너의 유명한 인용구로 알려진 “과거는 죽지 않는다. 실은 지나간 적도 없다”라는 대사의 실제 주인공이기도 하다. 이 밖에도 포크너의 ‘스놉스 삼부작(Snopes trilogy)’에 속하는 『읍내』, 『저택』을 비롯한 여러 후기작에서 개빈의 목소리가 중요하게 다뤄지며, 이 책 『나이츠 갬빗』에 실린 여섯 편의 추리소설에서 그는 탐정의 역할을 부여받아 주인공으로서 서사를 이끌어간다.
한편, 개빈 스티븐스가 요크나파토파 카운티의 셜록 홈즈라면 스티븐스의 조카로 등장하는 ‘나’ 찰스 맬리슨이 왓슨 박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는 『무덤 속의 침입자』에서 본인이 탐정 역할을 맡아 백인 남자를 살해한 혐의를 받는 흑인 남자의 누명을 벗기고자 한다.
카운티 검사 개빈 스티븐스가 『나이츠 갬빗』에 실린 여섯 편의 추리소설에서 활약을 펼친다. 각각의 이야기에서 스티븐스의 날카로운 통찰과 기발한 추리가 다양한 사건의 숨겨진 동기를 밝혀낸다.
포크너의 우주,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라는 체스판 위의 운명
이 여섯 이야기가 공통으로 그리는 인간은 “흙과 그 위를 밟고 그 안에서 잠들며” 땅에 붙박여 살아가는, “열정과 감정과 믿음의 그 모든 복잡함을 지닌” 존재다. 세대를 거쳐 전해온 오래된 유산의 정당한 주인이 되는 자들, 이 땅을 대변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다른 한편으론 경계를 넘어온 자들, 이 땅의 질서를 무시하고 어지럽히는 외지인이 존재한다.
―옮긴이
포크너 소설의 주요 무대인 가상의 공간 ‘요크나파토파(Yoknapatawpha)’에서 펼쳐지는 이 작품들은 포크너의 대표작인 『소리와 분노』, 『압살롬, 압살롬!』, 『내가 누워 죽어갈 때』, 『8월의 빛』 같은 작품들과도 같은 공간을 공유하며, 미국 남부를 상징하는 것은 물론,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라는 체스판 위에서 인물들은 저마다 욕망과 갈증의 대상을 쟁취하기 위해 희생을 감수한 책략을 펼친다.
포크너는 ‘요크나파토파 카운티’로 불리는 독특한 공간을 창조해 소설 무대로 활용하면서 시대적 변천과 미국 남부사회를 형성하는 것으로 보이는 대표적인 인물들을 등장시켜, 한결같이 배척적이며 부도덕한 당시 사회상을 고발했다.
『나이츠 갬빗』의 소설적 배경도 포크너의 문학세계와 궤를 같이하여 주인공 개빈 스티븐스는 같은 남부 사람들의 기벽과 결점을 기민하게 관찰하고 이해한다. 곧 포크너의 목소리인 그는 카운티 사회 내의 범죄를 수사하고 예방하며, 폭력으로 분출된 인간의 정념을 다룬다. 이야기들은 그의 조카에 의해 서술되며, 시대적 배경인 1, 2차세계대전을 종횡하며 개빈 스티븐스는 마침내 이야기의 끝에서 청년 시절의 연인 해리스와 재회하게 된다. 작품 내내 얽히고설킨 포크너의 미로에서 독자는 포크너가 그린 인간의 사랑과 복잡한 본성, 진실의 양가적인 면을 탐정의 시선으로 좇게 된다.
『나이츠 갬빗』에 실린 단편 중 「연기」는 1954년 각색되어 CBS에서 방영되었고 그해 ‘최고의 텔레비전극’ 상을 받았다. 「내일」은 1972년 로버트 듀발(Robert Duvall)이 출연한 동명의 영화로 각색되었다. 「화학적 실수」는 『엘러리 퀸 미스터리 매거진』에서 “순수에 가까운 탐정 소설”이라는 평을 받으며 편집자들이 선정한 그해 최고의 추리물 2위에 올랐으며, 1954년 ‘클라이맥스’라는 제목으로 각색되어 CBS에서 방영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