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인권 신장의 신기원”-“폭력으로 얼룩진 비극”
찬양과 저주 사이, 프랑스혁명의 민낯
균형 잡힌 이해를 위한 입체적 조명
프랑스혁명은 자유롭고 평등한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위대한 실험이요 거대한 발걸음이었다. 그러나 일 년 남짓한 ‘공포정치’ 기간에 50만 명이 감옥에 수용되었고 3만 명 이상이 처형되었다는 사실 등 폭력성 또한 혁명의 또 다른 얼굴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이제까지 한국의 프랑스 혁명사 이해는 혁명을 예찬하고 방어하기에 급급했던 감이 있다. 이 책은 ‘인권’이라는 ‘빛’에 초점을 맞추어 혁명을 바라보았던 그 같은 흐름에서 벗어나, ‘폭력’이라는 ‘어둠’에도 시선을 돌려 혁명의 참모습을 파악하려는 시도에서 기획한 것이다.
이 책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혁명을 ‘쫓아가지’ 않는다. 한국프랑스사학회 회장을 역임한 지은이는 혁명과 반혁명, 혁명가, ‘혁명사’로 나누어 혁명의 다양한 모습을 입체적으로 살펴보았다. 사건을 날줄로, 혁명가를 씨줄로 삼아 혁명의 맥락을 짚어내는 방식이다.
반혁명 민중봉기와 잔혹한 진압이란 숨겨진 얼굴
1부 ‘혁명과 반혁명’은 혁명의 결실이라 할 인권선언‘들’과 혁명에 대한 ‘반동’을 정리하고 분석한다. 그 과정에서 1791년 교황 피우스 6세가 인권선언이 인간의 ‘권리’만 선언했지 ‘의무’는 선언하지 않았음을 지적했다든가, 올랭프 드 구즈가 인권선언이 남성 중심인 것을 비판하며 〈여성과 여성 시민들의 권리선언〉을 작성했고, 후일 사회주의자들은 소유권을 신성불가침한 자연권으로 규정한 것을 비판했다(45쪽)는 사실을 만날 수 있다. 무엇보다 17만 명이 희생된 프랑스 서부의 방데전쟁(64쪽), 리옹 반란, 슈앙(올빼미)이라 불린 농민군 등 우리가 몰랐던 반혁명의 민낯이 드러난다. 지방의 농민봉기가 귀족 주도가 아니었다는 점, 혁명정부가 이들을 잔혹하게 진압했다는 사실(77쪽) 등을 접하면 혁명의 ‘신화’가 깨지는 충격을 경험하게 된다.
영웅에서 배신자로, 청렴지사에서 독재자로
혁명의 ‘별’ 로베스피에르 외에 라파예트, 시에예스 신부, 콩도르세, 당통, 샤를롯 코르데 같이 반혁명가나 기회주의자로 낙인찍힌 혁명가들을 조명한 2부 ‘혁명가’는 드라마틱하다. 혁명가들의 생애, 사상, 의의를 약전 형식의 글은 간략하지만 신선해서 일반 독자들의 시선을 끌 만하다. ‘두 세계의 영웅’에서 ‘혁명의 배신자’로 몰린 라파예트(229쪽), 1789년 《제3신분이란 무엇인가?》로 혁명의 불을 지폈으나 1799년 보나파르트와 함께 쿠데타를 일으켜 혁명을 끝낸 시에예스(268쪽), 잔다르크를 자처해 마라를 살해한 코르데(388쪽) 등의 삶은 보통사람에게 인간적 흥미와 더불어 생각거리를 던진다. 민중은 그의 원칙주의와 청렴함에 열광했으나 시종일관 완전한 ‘개혁’을 요구하며 끊임없이 ‘적’을 만들어낸 끝에 동료 혁명가들에 의해 독재자로 몰려 처형된 로베스피에르의 행적(372쪽)은 오늘날에도 자못 시사하는 바가 있는 것으로 읽힌다.
‘정통 해석’과 ‘수정 해석’의 엇갈림
3부 혁명사는 서양사 연구자들 또는 역사 애호가들을 위한 파트다. 프랑스혁명의 비극적 종말을 예고한 버크, 이상을 좇았던 페인을 시작으로 혁명을 보는 역사가들의 시각 변화를 짚어내기 때문이다. 민중사관이라 할 미슐레, 미국 독립혁명과의 차이에 주목한 한나 아렌트에 이어 알베르 소불의 마르크스주의 혁명사, 프랑수아 퓌레의 수정주의 혁명사가 꼼꼼하게 정리해냈다. 여기에 이른바 ‘정통 해석’과 ‘수정 해석’의 엇갈림을 소개하면서 지은이는 이에 대한 이의를 제기한다. “수정주의 역사가들은 정통주의 역사가들과 ‘다른’ 생각을 한 것이지 ‘틀린’ 생각을 한 것이 아니다. 다른 생각을 틀린 생각이라고 단죄하는 것이야말로 독선이며 틀린 생각이다.”(529쪽)
지은이는 맺음말에서 “혁명가들이 “혁명의 정의를 실현한다”는 명분으로 스스로 제시한 혁명이념을 파괴했을 뿐만 아니라, 혁명의 적을 만들어내고 학살”(568쪽)했다고 지적한다. 아마도 책을 읽고 난 독자들 대부분도 이 책이 “프랑스혁명의 실상은 프랑스혁명을 ‘자유, 평등, 박애’의 모범적인 시민혁명으로 동경하고, 혁명을 이상적인 사회 변혁의 수단이라고 생각하는 이상주의자들에게 경종을 울린다”(578쪽)는 데 동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