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 한낙원과학소설상 수상
2022년 예스24 독자 선정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
지금 가장 기대되는 작가, 연여름 첫 장편소설 출간!
첫 소설집 『리시안셔스』로 일상의 틈에서 탄생하는 SF를 선보이며, 독자들에게 아름다운 서정을 물씬 느끼게 해주었던 작가 연여름의 첫 장편소설 『스피드, 롤, 액션!』이 출간되었다. 소외된 약자를 특유의 따뜻하고도 사려 깊은 시선으로 담아낸 작가는 “SF만이 가능한 현실 비판의 예시 같은 작품”(구한나리 심사위원장)이라는 극찬을 받으며 2021년 SF어워드 중단편 우수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작가는 어린이·청소년 SF 단편소설에 주어지는 한낙원과학문학상을 수상하며 부드러우면서도 올곧은 소설 세계를 다시 한번 인정받았다. 평단의 고른 지지와 함께, 이듬해에는 예스24 독자들이 뽑은 ‘한국문학의 미래가 될 젊은 작가’로 선정되면서 연여름은 지금 가장 기대되는 작가가 되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이 작가가 기대되는 까닭은 소설에 대한 그의 미더운 입장 덕분일 것이다. 한 인터뷰에서 “저는 우리의 약한 입장들이 얽혀 촘촘한 그물을 만드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황금가지, ‘[장르의 사람들] 인터뷰’ 중)라고 밝힌 것처럼, 작가는 약한 존재들을, 그들의 얽히고설킴을 이야기의 중심에 두고 있다. 현실에서는 황당할 정도로 좋은 일들이 잘 일어나지 않기에 소설에서 그러한 즐거움을 얻고자 하는 이들도 있겠으나, 작가는 작지만 또렷한 질감을 지닌 것들에 온 마음을 기울인다. 아마 아주 작은 변화가 가져다주는 어떤 가능성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일 테다.
“지금을 신나는 러닝타임으로 살면 어때?”
이 시간이 지나면 우리는 헤어지게 되겠지만,
미리 슬퍼하는 대신 다 함께 식탁에 둘러앉자!
새해가 전혀 기대되지 않는 쓸쓸한 12월, 이야기는 한때 밥집이었고 이제는 영화의 세트장인 <미미 분식> 안에서 시작된다. 감독인 보리는 이곳에 머물면서 친구를 간절히 기다리는 중이다. 원래 산부인과 전문 병원의 원무과에서 일하던 보리는 출생률 저하에 따른 경영난으로 어쩔 수 없이 퇴사하고 이 기회에 꿈꾸었던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터였다. 직접 쓴 시나리오와 이에 딱 어울리는 완벽한 장소, 퇴직금과 펀딩 모금액으로 마련한 제작비까지, 꿈은 곧 이루어질 듯 보였다. 그 꿈을 일깨워준 친구가 제작비를 들고 잠적하기 전까지는.
어째서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은 오지 않고 도리어 엉뚱한 이들만 찾아오는 것일까? <미미 분식> 사장님의 손녀라며 한 여자아이가 분식집에 밀고 들어온다. 삼수생에 이름은 율이라고 밝힌 여자아이는 할머니의 기일이니 추억할 겸 며칠 묵었다 가겠다며 막무가내다. 익숙한 듯 찬장을 열어 라면을 꺼내고, 낮잠 좀 자겠다며 이층으로 올라가는 율에게 보리는 속수무책이다. 무엇보다 율은 보리가 손도 대지 못하던 영업용 가스레인지를 켜고 라면을 끓일 수 있었다. 보리는 더이상 컵라면을 먹고 싶지 않았기에 율과의 동거를 수락한다.
율과의 생활에 조금 익숙해질 무렵, 촌스러운 양복 차림의 남자 상은이 <미미 분식>에 나타난다. 그는 아무래도 자신이 시간에서 미끄러진 것 같다며, 1998년 9월 27일에서 왔다고 밝힌다. 원무과에서 일하며, 터무니없는 이야기에 동조해주는 건 문제 해결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걸 체득한 보리는 그의 말을 흘려듣고 내보내고자 한다. 시간 여행자라니,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하지만 IMF 사태로 해고되기 전까지 관광호텔의 레스토랑에서 일했다며, 한 끼 대접하겠다고 나선 상은의 손맛을 본 후 보리는 마음을 바꾼다. <미미 분식>의 메뉴판에는 없는, 그 따뜻한 토마토수프의 맛이 지나치게 감동적이었으므로.
그리고 며칠 후 세 번째 손님이 나타난다. 성별을 가늠할 수 없는 외모에, 마치 시대극이나 판타지 영화 촬영장에서 이탈한 배우처럼 요즘과 다른 옷차림을 한 사람이다. 무엇을 하는 사람일까? 어디서 온 것일까? 보리는 율, 상은과 힘을 합쳐 쓰러진 그를 방으로 옮기고는, 곱게 갈아 끓인 흰죽과 약을 챙겨 먹인다.
대체 어쩌다 여기서 영화를 찍는 게 아니라,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과 함께 밥을 먹고 있는 것일까? 한 달간 촬영 장소로 빌린 <미미 분식>에서의 시간은 끝을 향해 흘러가고, 이제 곧 새해가 찾아올 것이다. 직장도, 꿈도 잠시 멈춤 상태, 보리의 겨울은 수상한 사람들과 나누는 따뜻한 식사로 채워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