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속과 미신으로 요동치는 시대
우리에게 절실한 회의주의자의 사고법
믿음은 어떤 식으로든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 어떤 믿음은 실소나 작은 오해로 끝나지만 어떤 믿음은 우리 삶을 통째로 흔든다. 우생학을 믿고 순수 혈통을 위해 만든 히틀러의 인간 교배 실험장과 홀로코스트는 한 사람의 잘못된 믿음이 얼마나 거대하고 사악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 보여준다.
인간의 문명이 비약적으로 발전했음에도 우리는 여전히 오류에 빠지고 쉽게 미혹된다. 무속을 믿는 한 사람의 비이성적인 사고방식이 국가의 존속과 국민의 생존을 위협할 수 있음을 2025년 한국에서 목도하고 있지 않은가.
한국에 회의주의가 뿌리내린 지 10년. 《스켑틱》에 수록되었던 17편의 에세이를 통해 회의주의자의 사고법을 되새긴다.
《스켑틱》 발행인 마이클 셔머를 비롯해 세계적인 마술사이자 회의주의자인 제임스 랜디, 사회심리학자 캐럴 태브리스 등 대표적 회의주의자들이 우리 인간은 왜 이렇게 믿음에 취약한지, 회의주의적 사고를 갖는 것이 왜 중요한지, 구체적으로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탐구한다. 회의주의자들의 이야기를 따라가다 보면, 무질서 속에서도 패턴을 찾고, 의미를 찾아 나가며, 무엇보다 감정에 휘둘리는 인간의 속성 때문에 우리는 누구나 언제든 음모론자가 되고 미신에 빠질 수 있음을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손 놓고 그저 무속과 음모론의 소용돌이에 휘둘리는 수밖에 없는 걸까?
오히려 그 반대다. 우리가 가진 오류와 취약성을 인정할 때라야 우리는 자신을 점검하고 수정하며 나아갈 수 있다. 과학에 기반한 합리적인 회의주의자의 핵심은 이러한 ‘자기 교정’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의 미래가 믿음에 달려 있음을 생각하면 과학을 토대로 한 합리주의적 사고는 단순히 사고법을 넘어 생존법이라 불릴만하다.
“나는 의심한다, 고로 존재한다”
점검하고 수정하며 나아가는 회의주의자의 사고법
2015년 《스켑틱》 1호를 시작으로 회의주의가 한국에 뿌리내린 지 10년이 되었다. 우리는 회의주의에 얼마나 다가갔을까? 회의주의자의 태도와 사고법을 되새기며 스스로 점검해 보자. 《스켑틱》 10년의 성과는 자신을 계속 점검하고 수정하며 나아가는 그 과정에 있기 때문이다.
마이클 셔머는 인간의 믿음을 설명하기 앞서 빈센트 데티에(Vincent Dethier)를 통해 인간이 가진 호기심을 설명한다. 곤충 행동을 연구한 생물학자인 빈센트 데티에는 인간 종이 다른 동물과 구별되는 특징 중 하나는 지식에 대한 순수한 욕구로, 이러한 욕구가 있기에 세계를 이해하려는 욕구는 자연스러운 본능이라고 말한다.
《파리를 알기 위해》에서 데티에는 과학자처럼 생각하는 과정에서 느낄 수 있는 경이로움을 “세계로 나아갈 권리, 인류의 한 사람이라는 소속감, 정치적인 장벽, 이념, 종교, 언어를 초월하는 느낌”이라고 표현했는데, 인간이 호기심을 해결해 가는 과정에서 이념과 정치적 장벽, 종교, 언어를 허물 수 있는 데에는 ‘과학’의 역할이 크다.
셔머는 우리가 사고를 하는 궁극적인 목적이 우리를 둘러싼 세계와 우리 자신을 이해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이러한 의미에서 합리성은 우리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고 수단이라고 말한다. 합리성은 논리와 증거를 기초로 결론을 내기 때문에, 인류가 인과관계를 이해하려고 고안한 과학은 합리성을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우리가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아는 것은 달에 드리워진 지구의 그림자의 둥근 모습이나 굽어 있는 지평선 모습, 우주에서 찍은 지구의 사진이라는 과학적 증거를 통해 논리적으로 얻은 결론으로, 합리성을 갖는다. 만약 여기에 오류가 있다면 과학을 통해 교정되고 수정될 것이다. 히틀러가 감행한 극단의 비윤리적인 행동의 근간이 된 우생학이 무너질 수 있었던 것도 과학적 실험과 검증을 통한 자기 교정을 통해서였다.
자기 교정은 과학이라는 방법이 가진 최대 강점이며, 합리적 회의주의자의 핵심이기도 하다.
회의주의자이며 세계적인 이론물리학자 리처드 파인만도 “당신이 어떤 실험을 하고 있다면, 당신은 그 실험에서 제대로 이루어진 듯 보이는 부분뿐 아니라 그 실험을 무효화시킬 만한 것들도 모두 보고해야 한다”라고 말하며 자기 교정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우리는 어떻게 현혹되고 미혹되는가
뇌 메커니즘을 통해 보는 인간의 취약성
신경심리학자이자 소설가 로버트 D. 커벨(Robert D. Kirbel)은 우리가 왜 음모론에 취약한지 세 가지를 통해 설명한다. 명백한 무질서에서도 예외 없이 질서(조직에 대한 인식)가 나타나는 수학의 램지 이론, 진화적으로 생존에 유리한 정보를 탐지하도록 조율된 신호 및 패턴 지각에 관한 신경생리학, 마지막으로 감정적으로 의미 있는 해석을 부과하고 그에 따라 행동을 수정하려는 인간의 성향이다. 그중에서도 세 번째, 감정에 영향을 받는 인간의 취약성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커벨은 인간이 가진 두려움과 불안이 음모론에 취약하게 하는 데 큰 역할을 한다는 점을 강조한다. 두려움과 위협과 같은 감정이 더해지면, 잘못 인지할 가능성이 커지며, 음모론적 사고를 하는 데 요건이 갖춰지게 된다는 것이다.
회의주의자인 대니얼 록스턴(Daniel Loxton)도 14세기에 창궐한 흑사병과 21세기 우리 모두를 혼란에 빠뜨렸던 코로나 팬데믹 속에서 동일하게 음모론이 나타난 것은 전염병을 통해 사람들이 느끼는 불확실성, 불안과 두려움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음모론과 정치의 관계를 연구하는 애덤 엔더스(Adam Enders)와 스티븐 스몰페이지(Steven Smallpage)는 “우리는 모두 수용과 거부를 양극단으로 하는 음모론적 사고의 연속체 어딘가에 위치하고 있다”라고 말했으며, 시카고 대학교의 정치학 교수인 에릭 올리버(Eric Oliver)도 우리 인간은 모두 “마술적 혹은 직관적 사고와 합리적 사고를 양극단으로 하는 스펙트럼의 한 지점에 속한다”라고 했다.
실제 뇌 메커니즘을 통해 살펴보면, 인간 종 성취의 바탕이 된 호기심, 패턴 인식, 원인과 결과 추론, 이미지화, 상상 등의 인지 능력이 과학을 통해 합리적 사고를 하게 해주는 동시에 미신이나, 가짜 뉴스, 음모론 등 유사과학을 믿도록 만드는 운영체제를 갖기 때문에 이상한 믿은 인간의 보편적인 양상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는 모두 음모론자가 될 수 있고, 오류나 미신에 빠질 수 있는 것이다.
회의주의는 어떻게 위대함을 낳는가
찰스 다윈을 통해 보는 회의주의자의 태도
진화론에 큰 기여를 한 영국의 생물학자 찰스 다윈은 자신의 자서전 《나의 삶은 서서히 진화해왔다》를 통해 자신에게 “영리한 사람들에게서 두드러지는 재빠른 이해력이” 없다고 하면서 “비판에 서툴러서, 어떤 논문이나 책을 처음 읽어보면 보통 감탄하기만 하다가 한참 심사숙고한 후에야 약점을 알아차리게 된다”라고 허심탄회하게 고백한다.
과학사학자 겸 진화심리학자 프랭크 설로웨이는 그러한 결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찰스 다윈어떻게 과학사의 거인이 될 수 있는지를 설명하는데, 그 중심에는 회의주의가 크게 작용한다.
회의주의가 드러난 그의 지적, 성격적 특징으로는 다른 사람의 의견을 존중하면서도 기꺼이 도전했다는 점과 자신이 주장하는 이론에 반하는 증거에 특별히 주의를 기울였다는 점이다. 특히 자신의 오류를 인정할 줄 알는 겸손함과 조심스러운 그의 태도는 회의주의의 핵심이다.
설로웨이는 사람마다 선호하는 사고방식이 있기 때문에 과학계에 전통과 변화 사이에는 본질적으로 긴장이 있다고 말하면서 찰스 다윈의 경우 그가 가진 모순적 특징을 두고 “한 개인의 내면에서 그토록 성공적으로 결합되는 경우는 과학의 역사에서 비교적 드문 일이다”라고 말했다. 다윈의 특별한 점은 자기 내면에 있는 긴장을 해소하는 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이러한 긴장은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