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제공 책 소개

러시아어 원본 번역으로 다시 만나는 타르콥스키 영화 예술의 미학과 시학 타르콥스키 영화 미학의 기원을 탐색하다 영화 예술의 거장 안드레이 타르콥스키는 지금까지 누구도 따라 할 수 없는 독특한 예술 세계를 펼친 영화감독이다. 그의 작품은 영화의 의미와 목적, 방법론에서 수많은 영화인의 모범이자 자극이 되었다. 몽환적이고 난해한 화면, 깊은 상징과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롱테이크 촬영으로 표현되는 그의 기법 역시 영화의 전달 형식에 대한 수많은 성찰을 낳았다. 타르콥스키는 그리 길지 않은 영화의 역사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감독으로 평가받는다. 그 이유는 그의 작품이 영화 자체만이 아니라 세계의 기원, 예술의 본질, 인간의 본성, 나아가 인류의 미래까지 아우르고 있기 때문이다. 이 책 《시간의 각인》은 타르콥스키의 주요 저작이자 세계 영화사의 대표 저술 가운데 하나로 손꼽힌다. 그동안 러시아 영화뿐 아니라 영화 일반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진지하게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읽어봤을 책이다. 이 책에는 타르콥스키 자신의 영화에 대한 철학뿐 아니라 〈이반의 어린 시절〉부터 〈희생〉까지, 그가 제작한 여러 영화의 제작 비화, 출연 배우와 촬영감독 등 스태프들에 관한 이야기가 담겨 있다. 타르콥스키는 이 책 전반에 걸쳐 예술가로서 자기 자신은 물론 타자, 나아가 세계에 대한 책임 의식을 강조한다. 이런 책임감은 대단한 의지와 용기, 사랑과 헌신, 희생이 뒷받침되어야 가능하다. 그에 따르면, 예술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민중에 기여하고 봉사해야 한다. 이를 통해 자신이 사는 시대와 세계를 충분히 인식하면서, 현실과의 관계를 이해하거나 표현할 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한 대변자가 되어야 한다. 이 책은 타르콥스키의 영화 미학과 시학뿐 아니라 문학에서 영화까지 도도히 흐르는 러시아 문화의 지적 전통을 파악하는 데도 매우 유용하다. 예술가의 의무, 민중에 대한 책임과 봉사 “나는 인간에게 희망과 믿음을 주는 예술을 지지한다. 예술은 우리 존재의 의미를 상징한다.” 타르콥스키에게 예술은 언제나 예술 그 자체가 아니라 민중을 향한다. 그는 인간의 정신적 잠재력이라는 절대 자유를 표현하는 데 예술의 기능이 있으며, 따라서 예술이란 “인간 영혼을 집어삼키는 물질에 맞서는 인간의 투쟁을 위한 수단”이다. 예술가는 묶여 있는 사람이다. 결코 자유롭지 않다. 예술가는 자신의 재능으로 민중에게 봉사해야 한다. 예술가를 묶고 있는 것은 자신의 재능과 소명이고, 그것을 통해 민중에 대한 책임을 다해야 한다. 영화 〈스토커〉에서 연약해 보이는 주인공은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려는 의지를 가진 가장 강한 사람이다. 그가 끝까지 살아남는 것 역시 이러한 자신의 의지와 믿음 덕분이다. 스토커의 역할과 본질은 타르콥스키에게 사실상 예술가의 본질과도 같다. 예술가는 “이야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람들에게 봉사하려는 자신의 의지를 드러내 보이기 위해서 자신의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예술은 정신적으로 익사하지 않으려는 인간의 본능이다. 영혼의 밭을 쟁기로 갈아 써레로 고르게 하여 영혼이 선善으로 향하게 하는 것, 이것이 바로 타르콥스키가 바라보는 예술이다. 타르콥스키에게 영화란 무엇인가 타르콥스키에게 영화는 민중에 봉사하기 우한 예술적 수단이다. 그는 사람들이 영화를 찾는 이유가 오락거리나 일종의 환각제를 찾기 위함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그는 사람들이 바로 “시간을 찾아서, 다시 말해 잃어버렸거나 소비한 시간, 아직 얻지 못한 시간”을 찾으려고 영화를 찾는다고 말한다. 영화는 “인간의 사실적 경험을 확장하고 제고하고 집중시켜주”는 예술이며, 바로 거기서 영화의 실질적 힘이 나온다. 따라서 관객은 ‘목격자’에 가깝다고 한다. 타르콥스키가 이상적인 영화로 꼽은 것은 연대기Chronicle이다. 삶을 촬영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재구성하고 재창조하기 때문이다. “인간을 무한한 환경과 나란히 세우고, 그의 옆으로, 그에게서 멀리 지나가는 셀 수 없이 많은 사람과 그를 뒤섞고 세계 전체와 그를 연결하는 데 바로 영화의 의미가 있다”고 강조한다. 어떤 영화감독이든 자신의 영화를 화려하게 꾸미고 싶어한다. 하지만 타르콥스키는 이러한 유혹을 “파멸”이라고 주장한다. 진부한 표현, 낯선 예술 사조에 빠져 “장면을 아름답게, 효과적으로, 박수를 받기 위해 찍는 것은 사실 정말 간단하다. 그러나 이 길로 들어서는 것은 곧 파멸이다.” 타르콥스키가 보기에 영화감독의 과제는 “삶을 재창조하는 것”이다. 이상을 향한 동경, 이상을 향한 강한 열망을 표현하는 것, 그것이 예술의 옹호자로서 영화감독 타르콥스키의 영화관이다. 왜 《봉인된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각인》인가! 이 책은 정확히 30년 전인 1991년 《봉인된 시간》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 출판되었다. 하지만 당시 출간된 《봉인된 시간》은 독일어 번역본을 중역한 탓에 번역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었다. 이 책은 러시아 문학을 전공하고 오랫동안 러시아 영화를 연구해온 라승도가 러시아 원전을 직접 번역함으로써 타르콥스키의 문체를 더욱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또한 중역본에서 발생한 개념상의 혼동이나 혼선, 오해나 오류 등을 바로잡고 더 정확한 표현으로 내용의 이해를 높였다. 예를 들어 ‘역원근법Reverse Perspective’을 《봉인된 시간》에서는 ‘뒤바뀐 원근법’으로 번역된 것, ‘성화벽Iconostasis’을 ‘성화가 그려진 벽’으로 번역한 것 등이 그 예다. 심지어 타르콥스키의 영화 미학에서 매우 중요한 개념인 ‘영화 속 이미지’를 《봉인된 시간》에서 ‘영상’으로 단순하게 번역한 것도 마찬가지다. 《봉인된 시간》에서 이미지라는 단어는 특별한 기준 없이 ‘영상’이나 ‘형상’으로 뒤섞여 번역되었다. 옮긴이 라승도에 따르면, 이러한 번역은 “개념 사용의 일관성을 해칠 뿐 아니라 개념의 올바른 이해도 방해한다.” 특히 이 책의 제목이 바뀐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타르콥스키는 이 책에서 영화감독이 하는 작업의 본질은 “시간을 조각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에게 영화란 반복되어 생성되는 순간을 필름에 각인해 넣으면서 지배하게 되는 가변적·유동적 상태의 기록이다. 옮긴이 라승도는 타르콥스키에게는 조각되고 각인된 시간이 하나의 사실로서 영화 이미지로 변모하며 더 중요하게는 바로 이런 이미지를 통해 진실과 진리의 순간이 포착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 책의 제목 역시 ‘봉인된 시간’이 아니라 ‘시간의 각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