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tflixed’라는 신조어가 있다. 직역하면 ‘넷플릭스당하다’인데, 미국 실리콘밸리에선 기존 비즈니스 모델이 붕괴되었을 때 이 말을 사용한다. 1997년 DVD 대여 업체로 시작한 넷플릭스는 2007년 인터넷 스트리밍 기술을 가장 먼저 적용하며 세계 미디어·엔터테인먼트 업계를 장악했다.
<넷플릭스하다>는 스리체어스 북저널리즘 시리즈 다섯 번째 도서다. 넷플릭스가 약진하면서 미국 최대의 비디오 대여점 ‘블록버스터’는 파산했고, 미국 최대의 케이블TV ‘컴캐스트’도 내리막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2017년 미국 내 넷플릭스 가입자 수가 케이블TV 가입자 수를 넘어섰다. 방송 지형을 바꾼 넷플릭스는 이제 콘텐츠의 성지, 할리우드로 진격하고 있다. 넷플릭스가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으로 거듭날 수 있게 된 혁신의 비법은 무엇일까.
<넷플릭스하다>는 넷플릭스의 8가지 혁신 비법과 한국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기업 경쟁력 제고 방안을 위한 제언을 담았다. 그동안 글로벌 기업을 연구한 책은 대부분 해당 기업이 탄생한 국가의 시점에서 서술되었다. 그러나 이 책은 한국 케이블TV와 위성 방송 서비스 론칭에 직접 참여해 본 기업가의 눈으로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의 혁신 비법을 읽어낸다. 제목 '넷플릭스하다'는 시장에 파괴적 혁신을 일으킨 넷플릭스를 동사화한 표현이다.
북저널리즘은 북book과 저널리즘journalism의 합성어다. 우리가 지금, 깊이 읽어야 할 주제를 다룬다. 단순한 사실 전달을 넘어 새로운 관점과 해석을 제시하고 사유의 운동을 촉진한다. 현실과 밀착한 지식, 지혜로운 정보를 지향한다.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시장의 지각 변동은 미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적인 현상이다. 동시 다발적으로 일어나는 기술 발전에 따라 소비자의 선호 역시 국경을 초월해 변화한다. 혁신 기술이 미디어와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변화를 촉발하는 것이다. 스마트 디바이스, 광대역 네트워크, 클라우드 컴퓨팅 등 기하급수적인 기술 성장이 혁신자를 만들어 내는 일종의 플랫폼 역할을 한다. 그리고 그 중심에 넷플릭스가 있다." (본문 16p 넷플릭스당하다 中)
글로벌 미디어 플랫폼 넷플릭스는 1997년 DVD 대여 서비스로 출발했다. 현존하는 미디어 플랫폼 중 가장 먼저 온라인 서비스를 시작하며 20년 만에 세계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뒤흔드는 파괴적 혁신자가 되었다. <넷플릭스하다>는 애플을 밀어내고 페이스북, 구글, 아마존과 함께 미국 첨단 산업계의 ‘빅4’로 성장한 넷플릭스의 성공 비결 8가지를 분석한다.
넷플릭스는 론칭 초기부터 경쟁업체와 노선을 달리했다. 오프라인 서비스에 집중하는 시장의 분위기와 달리, 인터넷을 활용하며 온라인 시장을 선점했다. '기술 위에 쌓아 올린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지향하는 넷플릭스는 당대 최신 기술을 적용해 혁신 서비스를 제공한다. 승승장구한 것처럼 보이는 넷플릭스에도 위기는 있었다. 넷플릭스의 장악력에 위협을 느낀 기존 콘텐츠 업체들의 견제에 사업이 위태롭기까지 했다. 그러나 넷플릭스는 위기마저 반등의 기회로 삼았다. 빅데이터 분석, N스크린 전략, 자체 콘텐츠 제작 등 넷플릭스의 혁신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저자 문성길은 넷플릭스 혁신의 핵심을 기술이 아닌 '이용자 중심의 경영'에서 찾는다. 넷플릭스의 원칙은 간단하다. 무엇이 이용자에게 더 이로운가. 넷플릭스가 데이터를 분석하고 스크린 수를 늘리는 이유는 이용자 편의에 있다. 철저히 이용자 입장에서 생각해 원하는 작품을 원하는 시간과 장소에서 감상할 수 있도록 한다.
"빅데이터, 기술 혁신, 개방과 제휴 등 넷플릭스가 성공할 수 있었던 혁신의 핵심에는 이용자가 있었다. DVD를 우편으로 배달하고 연체료를 폐지했던 때부터 넷플릭스는 이용자 관점에서 생각했다. N스크린 환경 개선, 추천 시스템 등 넷플릭스가 자랑하는 기술은 이용자의 입장에서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해 고민한 결과물이다. 소비자 불편을 혁신하는 사업자가 기존의 판도를 뒤엎는다." (철저한 개인 맞춤 서비스 中)
2016년 1월 넷플릭스가 국내 서비스를 론칭하고 1년이 지났다.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 소식에 민감하게 반응하던 국내 미디어 사업자들은 넷플릭스의 생각보다 저조한 실적에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그러나 저자는 아직 안도하기에는 이르다고 말한다. 실제로 넷플릭스가 신규 시장에 진출해 효과를 거두는 데 평균 3년 정도가 걸렸다. 2011년 브라질 진출 초기, 넷플릭스는 콘텐츠 부족과 취약한 인터넷 인프라 등으로 어려움을 겪다 3년이 지난 시점부터 가파르게 성장했다.
케이블 TV와 위성 방송 론칭에 참여한 경험이 있는 저자는 넷플릭스의 국내 진출을 우려하다가, 파장이 크지 않다는 사실에 안도하는 국내 미디어 기업의 현주소에 안타까움을 표한다. 이러한 태도는 세계 7위의 미디어·콘텐츠 강국이 보일 태도는 아니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한국에 넷플릭스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글로벌 미디어 기업이 없다는 사실에 안타까워한다.
"미디어 변혁기에 우리 현실은 어떨까. 거대 기업은 전통적인 수익을 지키기에 급급해 혁신 기업이 들어오지 못하도록 울타리를 친다. 거기에 더해 정부는 각종 규제를 도입해 실험 대신 기존 기업의 안전을 보장한다. 넷플릭스, 유튜브와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는 미디어 기업이 태어나지 못하는 이유다." (서문 中)
국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변화의 물결은 이미 시작되었다. 넷플릭스만이 문제가 아니다. 아마존 구글뿐 아니라 알리바바, 텐센트로 대표되는 중국 세력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여전히 국내 미디어 사업자들은 정부의 규제에 기대 밀려오는 혁신의 물결을 막아서는 데 급급하다. 패스트 팔로워(Past Follower)가 되어서는 변화의 파도에 올라탈 수 없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
<넷플릭스하다>는 30년 간 업계에 몸담으며 한국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의 발전을 위해 고민한 저자의 결과물이다. 저자는 국내 사업자도 시장의 파괴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선도자들의 혁신 방법을 먼저 배워야 한다. 이 책에는 넷플릭스의 혁신 비법과 국내 미디어, 엔터테인먼트 산업 경쟁력 제고를 위한 제언이 함께 담겨 있다. 세계 미디어·콘텐츠 시장의 트렌드를 읽고, 나아가 트렌드를 선도하기 위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