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자본주의 위기, 그 근원과 해법에 대한 탐색
무엇이 우리 미래를 압류하고 부채노동에 내모는가
이 책은 세계적인 맑스주의 이론가 데이비드 하비의 2017년작으로,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과 해법을 탐색하며 특히 자본의 가치 운동과 그 내재적 모순을 집중적으로 분석함으로써 맑스 노동가치론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는 저작이다. 지난 2010년 나온 『자본이라는 수수께끼: 자본주의 세계경제의 위기들』(한국어판 이강국 옮김, 창비 2012)의 연장선상에 있으며, 전작과 마찬가지로 현대 자본주의 위기의 근원과 해법에 대한 탐색이 자본주의의 핵심적 장치들에 대한 검토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사회기반시설을 포함한 고정자본에 대한 투자, 근현대의 도시화, 부동산투기, 화폐제도와 부채, 이른바 ‘국가-금융 연계’, 기술혁신과 조직변화, 저항운동 등이 다뤄지는 데서 두 책의 연속성이 드러난다. 이번 책에서는 특히 본론을 구성하는 9개 장 중 7개 장의 제목에 ‘가치’나 ‘반가치’가 들어가 있는 데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의 관심은 무엇보다 자본주의체제 내의 가치의 운동과 이 운동의 내재적 모순에 있다. 하비는 노동가치론을 비롯한 맑스의 수많은 주장과 통찰을 체계화하고, 이로부터 현실적 함의들을 이끌어내며, 나아가 이 함의들을 곤경에 처한 오늘날의 자본주의와 자본 분파들, 국가, 그리고 대중의 삶과 대면시키는 길을 택한다.
하비는 1장 ‘운동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의 시각화’에서 물의 순환을 나타내는 수문학적 순환(hydrological cycle)의 표상(representation)과 비교하여 ‘운동하는 가치’로서의 자본을 강조하면서, 책 전체에서 주장하는 자본의 작동방식과 그로 인한 위기의 불가피성을 압축적으로 설명한다. 하비가 시각화한 자본의 전반적 순환과정은 “(1) 자본이 생산에서 잉여가치 형태로 생산되는 가치증식의 과정. (2) 가치가 상품의 시장교환을 통해 화폐 형태로 다시 전화되는 실현의 과정. (3) 다양한 청구자들 사이의 가치와 잉여가치 분배의 과정. (4) 마지막으로, 청구자들 사이에 유통되는 화폐 일부를 포획하여, 이후 가치증식을 통과하는 자신의 길을 계속 가도록 그것을 화폐자본으로 다시 전화시키는 과정.”(46면)이다. 2장 ‘『자본』이라는 책’에서는 이같은 시각화에서 『자본』 1~3권이 어디에 위치하는지 간략히 설명한다. 1권은 절대적 잉여가치와 상대적 잉여가치, 그리고 가치증식의 과정에 집중하고, 2권은 가치실현에 초점을 맞추는 한편 상이한 자본 회전시간과 고정자본의 순환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살피며, 3권은 임금과 세금 등 다양한 청구자들 사이에서 가치와 잉여가치가 분배되는 주요 형태들을 다룬다. 자본가들은 가치와 잉여가치의 일부를 상업자본가에게는 이윤의 형태로, 부동산소유주에게는 지대의 형태로 건네준다. 가장 복잡하고 문제적인 범주는 은행과 금융기관에 주어지는 이자로, 산업자본가들은 투입물과 산출물의 생산에서 나타나는 회전시간의 차이, 고정자본의 순환 등의 이유로 은행업과 금융에 신세를 지게 되는데, 이들이 대량의 고정자본에 더 의존하게 되면서 더 정교한 신용제도와 금융제도에 대한 요구도 커진다. 한데 이들 은행과 금융기관은 화폐수익률이 높은 곳이면 어디에나 자신이 소유한 자산의 몇배라도 대출을 함으로써 맑스가 가공자본(fictitious capital)의 순환이라고 부르는 세계를 가져온다. 이처럼 금융제도는 “가치생산의 확대를 통해 부채를 상환하라는 자신의 명령을 통해 추가적 축적의 가장 집요한 추동력 중 하나가 된다. 광적인 이윤 추구는 부채상환의 광적인 필요로 보충된다.”(80~81면)
스스로 증가하는 길을 찾는, 이자 낳는 자본
하비는 3장 ‘가치의 표상으로서의 화폐’에서 맑스가 전적으로 가치의 ‘표현 형태’ 또는 ‘표상’이라고 지칭하는 화폐와 신용의 문제를 짚는다.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적 가치의 물리적·물질적 표상을 찾아야 할 필요에서 화폐에 대한 확실한 금속 기반(금과 은)을 채택했는데, 이는 일상적 용도로는 매우 부적합했기 때문에 그것이 효력을 갖기 위해서는 그것 자체의 상징적 표상(지폐와 전자화폐)이 필요했다. 여기서 문제는 화폐의 가격과 가치 사이의 양적 불일치가 나타나며, 더 곤란한 것은 가격이 전혀 가치를 표현하지 않게도 된다는 점이다. 신용이 흔들리면 모든 실질적인 부는 화폐로, 금과 은으로 전화되어야 하지만, 이 요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금과 은은 총생산에 비해 보잘것없는 일정량에 불과하므로, 위기의 시기에 신용제도가 화폐제도로 붕괴하는 것은 불가피하다. 맑스에 따르면 바로 여기서 자본관계는 “그 순수한 형태, 스스로를 증식시키는 가치, 화폐를 낳는 화폐로 전개된다.”(117면) 4장 ‘반(反)가치: 가치저하 이론’에서 하비는 이같은 반가치와 가치저하의 문제를 조명한다. 자본의 운동이 잠시 멈추거나 심지어 속도를 늦추는 것은 가치의 상실을 의미하는데, 생산에서 실현으로의 이행은 자본가들이 생산된 가치의 잠재적 부정과 싸우는, 자본의 전반적 순환 내의 한 핵심 지점이다. “자본순환의 기술적 결함과 정체(停滯)로부터 생겨나는 반가치는 상품화와 사유화에 대한 정치적 저항이라는 능동적 반가치로 변형”(129면)되기도 하는데, 소비자 불매운동과 노동자의 저항과 계급투쟁이 그런 사례다. 하지만 “반가치의 역할이 언제나 적대적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본의 미래를 규정하고 확보하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담당하기도 하는 것이다. 반가치에 대한 투쟁은 말하자면 자본을 늘 긴장하게 한다. 반가치를 상환해야 할 필요는 가치생산을 지배하는 강력한 힘이다.”(132면)
5장 ‘가치 없는 가격’에서는 자연이나 구축된 환경과 마찬가지로 가격은 지닐 수 있으나 가치는 지닐 수 없는 인간 본성의 무상 증여물 중 하나인 과학적·기술적 지식이 어떻게 생산의 고정자본에 편입되고, 그리하여 자동화를 통해(우리 시대에는 로봇과 인공지능을 통해) 노동을 퇴출시키고 무력화하는지를 다룬다. 여기서 자본은 두가지 ‘대(大)모순’을 마주한다. 첫번째 모순은 상대적 잉여가치의 추구를 위한 노동절감적 기술변화가 성공적일 경우 그것은 가치와 잉여가치 추출의 원천인 노동인구를 축소시킨다는 점이며, 두번째 모순은 화폐적 이윤을 극대화하려는 자본이 어떤 가치나 잉여가치도 생산하지 않는 영역에 투자하는 데 이끌리는 잠재적 경향이다. “그 결과는 가치생산에서의 장기 침체일 뿐 아니라, 근래에 우리가 걸어온 위험한 길, 즉 끝없는 화폐 확대의 길인 폰지(Ponzi) 자본주의의 창출이다.”(174면) 6장 ‘기술의 문제’에서는 “그 어떤 사회적이거나 경제적인 문제에도 반드시 기술적 해결책이 있다는 널리 퍼진 믿음”(182면)을 생산하는 기술물신주의의 문제를 논한다. 지금 우리는 기술이 그 자체로 하나의 사업 분야가 되고 혁신을 전문으로 하며 혁신을 생산성 향상을 고민하는 기업가뿐 아니라 모든 사람들에게 판매하는 데 몰두하는 거대한 산업 부문을 마주하고 있다. “모든 문제에 대한 해답으로서의 기술적 해결책과 혁신에 대한 물신적 믿음은 (…) 뿌리를 더 깊이 내린다.”(197면) 그러나 하비는 최근 자본시장에 일어난 혼란에서 드러나듯 “생산성 향상은 (…) 불안정성과 변동성의 문제를 초래하는 데 일조했다”고 지적한다(198면). 기술적·조직적 진보의 불가피성에 대한 믿음과 그에 따른 유토피아/디스토피아의 이분법에서 벗어나야 함을 강조한다.
무엇이 우리 미래를 압류하고 부채노역에 내모는가
7장 ‘가치의 시간과 공간’에서는 가치법칙이 어떻게 시간과 공간 속에서 관철되는지를 살핀다. 하비가 보기에 맑스의 주안점은 상이한 자본들이 화폐 형태에서 가치증식과 실현과 분배를 거쳐 다시 화폐 형태로 돌아가는 데 걸리는 상이한 회전시간인데, 이같은 회전·생산·유통의 상이한 시간들 간의 관계를 어떻게 조정할 것인지가 자본의 전반적 순환에 많은 문제를 제기한다. 자본의 순환과 재생산에는 거대하고 장기적인 물리적 기반시설과 구축환경의 건설이 필요한데, 이에 대한 투자는 과잉축적의 문제를 일시적으로 해소하지만, 다른 한편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