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미국 현대 소설의 선구자 셔우드 앤더슨 대표작
산업화 시대 고독과 소외를 섬세하게 포착한
슬프고 아름다운 그로테스크의 마을
미국 현대 단편문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셔우드 앤더슨의 대표작 《와인즈버그, 오하이오》가 시공사 ‘세계문학의 숲’ 49번째 작품으로 출간되었다. 20세기 미국 문학 강의에서 《위대한 개츠비》와 더불어 가장 많이 읽히는 작품이자 모던라이브러리가 선정한 ‘20세기 최고의 영문소설 100선’ 중 24위에 꼽힐 만큼 중요한 작품이다. 오하이오 주 작은 마을 와인즈버그를 배경으로, 산업화 시대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의 삶에 대한 막막하고 절실한 갈망과 그 좌절에서 오는 뼈저린 외로움의 정서를 섬세하게 그려낸 연작단편집이다. 산업화 시대 인간의 고독과 환멸이 만들어내는 특유의 정서를 앤더슨은 ‘그로테스크’라 이름 지었고, 삶을 향한 깊은 갈망과 절망 사이에서 기묘하게 뒤틀린 ‘그로테스크’들을 통해 슬프면서도 아름다운 삶의 순간들을 그려 보인다. 1919년 출간된 작품이지만 작품 속 인물들이 품은 주변자적 감수성과 깊은 페이소스는 한 세대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한 호소력을 지닌다.
미국 현대 소설의 선구자 셔우드 앤더슨
세대를 넘어 작가들이 찬사를 바치는 진정한 ‘작가들의 작가’
《와인즈버그, 오하이오》에서 선보인 간결하고 세련된 문체와 산업화 시대의 독특한 인간 군상은 당대 동료 작가들뿐 아니라 후대 작가들에게까지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하드보일드 문체’로 유명한 헤밍웨이의 스타일에 직접적인 영향을 준 인물이 바로 셔우드 앤더슨이며, 윌리엄 포크너 역시 앤더슨을 일컬어 “우리 세대 미국 작가들과 우리 후계자들이 이어갈 미국문학의 전통을 낳은 아버지다”라며 존경을 표했다. 특히 대표작인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아모스 오즈, 레이 브래드버리, 엘리자베스 스트라우트 등 후대의 여러 작가들에게까지 큰 영향을 주었는데, 그중에서도 매년 노벨문학상 후보로 거론되는 아모스 오즈는 “《와인즈버그, 오하이오》는 나의 글쓰기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작품이다. 앤더슨은 문학에 늘 영웅이 있을 필요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었고, 이 작품을 읽은 후 나는 글을 쓸 용기를 가졌다”는 말로 그에게 진 문학적 부채를 고백하기도 했다.
“이곳은 삶으로 가득 차다 못해 찰랑거리며 넘쳐흘렀다.”
슬프고 아름다운 그로테스크의 마을
와인즈버그는 오하이오 주에 실재하는 마을이지만 실제로 그 마을을 배경으로 한 작품은 아니다. 셔우드 앤더슨의 와인즈버그는 광활한 옥수수밭으로 에워싸인 목가적인 곳인 동시에 철로가 놓여 도시라는 거대한 욕망 기계와 연결되어 있는 공간이다. 마을의 많은 젊은이들은 저마다의 욕망에 들떠 마을을 떠나려 하고, 도시에서의 좌절된 꿈을 경험한 이들은 숨어들듯 다시 와인즈버그로 돌아온다. 그리고 그들은 이야기 속 바로 그 순간, 저마다 ‘일생일대의 모험’을 떠나려 한다. 그 모험은 젊은 시절 진짜 모험가가 되고 싶었으나 세월에 휩쓸려 병들어버린 한 여인이 아들의 방까지 가는 짧은 길이기도 하고([어머니]), 더없이 신실한 목사가 창문으로 언뜻 보인 여인의 흰 살결에 육체적으로 도발되는 순간이기도 하며([하느님의 권능]), 오랜 실연을 견디다 못한 여인이 나체로 누군가의 몸뚱어리를 찾아 빗속으로 뛰쳐나가는 순간([모험])이기도 하다. 남들에게는 별것 아닌 일이라도 이들 ‘그로테스크’들에게는 온 존재의 용기를 모두 끌어내야만 가능한 진정한 ‘모험’의 순간이다.
그리고 이러한 모험의 보답으로 이들은 짧은 순간이나마 타인과의 충만한 소통, 구원의 가능성을 벼락처럼 마주하기도 한다. 과거의 트라우마로 “갇힌 새가 날개를 퍼덕거리는 것처럼” 한시도 손을 가만둘 수 없는 외로운 노인이 자신과 닮은 청년의 머리카락을 손으로 쓸어 넘기는 순간([손]), 서로의 영혼을 알아본 가난한 의사와 병든 여인이 섬광이 번쩍이듯 포옹하는 짧디짧은 한순간([죽음]), 자신이 “바람에 날려 마을의 길거리를 헤매는 낙엽 한 장에 불과하다는 걸” 깨달은 소년이 여름밤 나무 그늘 아래서 소녀의 손을 잡았을 때 몸속에 한 자락 바람이 불기 시작한 순간([성숙]), 덧없고 짧은 찰나이지만 그 순간 터지는 삶의 환희는 수많은 절망을 뛰어넘는다.
“발이 너무 축축해.
아무래도 이제 메마른 땅을 밟을 때가 되었나봐.”
셔우드 앤더슨은 작품 속 ‘그로테스크’들 못지않게 작가로서 독특한 이력을 갖고 있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독학으로 자수성가한 후 부잣집 딸과 결혼해 세 아이의 아버지이자 책임감 있는 남편, 성공한 사업가로 평범한 삶을 살던 그는 자신의 소설 속 인물보다 더욱 드라마틱한 ‘모험’을 실제로 떠났다. 서른여섯이던 1912년 앤더슨은 “발이 너무 축축해. 아무래도 이제 메마른 땅을 밟을 때가 되었나봐”라는 수수께끼 같은 말을 남기고 사무실을 나간 뒤 나흘이 지나 자신이 누구인지도 모르는 채로 발견되었다(곧 기억은 돌아왔지만 그 나흘간의 기억은 평생 돌아오지 않았다). 이 일을 계기로 전업작가를 결심한 앤더슨은 사업을 접고 가족도 뒤로한 채 시카고로 혼자 이사해 글을 쓰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금은 주차장이 된 허름한 아파트의 알전구 불빛 아래서 단숨에 이야기들을 써내려갔고, 그렇게 문학사에 길이 남을 걸작을 완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