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계문학상, 아쿠타가와상 수상
일본 현대문학사에 길이 남을 작가 마루야마 겐지
시의 함축성과 소설의 서사성을 갖춘
천 개의 시어詩語가 빚어낸
한 편의 아름다운 소설
나는 그 모두가 확실하게 보이기 직전에 몸을 뒤척여 쓰러진 병풍에서 몸을 돌린다.
조금 전까지 마을 하늘에 떠 있던 달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_본문 중에서
“펜이 곧 몸이자 혼(魂)”이라고 말한 마루야마 겐지
문학적 구도자의 고독이 담긴 수작, 『달에 울다』 개정판 출간
마루야마 겐지는 생애 첫 작품인『여름의 흐름』으로 제23회 ‘문학계신인문학상’, 제56회 ‘아쿠타가와상(芥川賞)’을 수상했다. 이후 그에게 주어진 모든 문학상을 거부하고 은거(隱居)하면서 오로지 창작 활동에만 전념했다. 23세의 나이로 일본 최고 권위 문학상을 수상한 그는 세인들의 명성이나 문단(文壇)의 영리를 좇지 않고 소설을 통한 구도(求道)의 길로 접어들었다. 이후 마루야마 겐지는 ‘펜이 곧 몸이자, 혼(魂)’이라고 말했을 만큼 엄격한 문학적 구도자로 살아갔다. 그는 당연하고 평범하지 않은, 누구보다 외로운 삶을 택했다. 마치 그가 추구한 삶처럼 차갑고 단단한 고독을 그린 수작, 『달에 울다』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시소설의 정수 「달에 울다」
운명을 대변한 공간 「조롱(鳥籠)을 높이 매달고」
이 소설집에 수록된 「달에 울다」라는 작품은 얼음처럼 차갑고 단단한 고독을 그려낸 작가의 수작(秀作)이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사과밭을 가진 농가의 외아들로, 아버지와 사과 농사를 지으면서 살아간다. 의지하던 개가 죽은 후에도, 부모가 세상을 떠난 후에도 그는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마을을 한 번도 떠난 적이 없다. 그런 주인공은 인생에서 꼭 하나의 여자를 사랑하게 되는데, 그녀는 소설의 여주인공인 야에코로 주인공의 아버지가 죽인 남자의 딸이다. 주인공은 10대, 20대, 30대를 함께 지내고 마을을 떠난 야에코가 다시 마을로 돌아올 때까지 그녀에 대한 그리움으로 고통스러워한다.
소설은 구성에 있어 특이한 점을 가지고 있다. 시와 소설의 중간적 장르를 갈구해온 작가는 이 작품에 이르러 비로소 시소설(詩小說)이라는 새로운 장르의 정점(頂點)을 이룩했다. 시의 함축성과 소설의 서사성을 함께 가진 문학적 양식을 꿈꾸고 시도해온 그는 이 작품 「달에 울다」를 통해 시소설이라는 대단한 결과물을 제시했다.
소설에 나타난 문단(文段)은 시의 한 연(聯)으로서 기능하며, 그것은 삶의 점묘라는 작가의 창작 의도를 이미지화한 것이기도 하다. 강렬한 이미지를 형성하는 힘을 가진 그의 단문(短文)은 이 글에서 매우 효과적으로 그 역할을 수행하고 있으며, 그래서 이 글은 소설가 마루야마 겐지의 문체적 특성이 가장 잘 드러난 형식이자 내용이다.
어쩌면 작가 자신일 수도 있을 소설 속 주인공은 자기 운명의 비극 때문에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소설에 나오는 인물, 특히 주인공은 자신이 있어야 할 ‘공간’에 집착하고 있다. 소설에서 공간은 시간이 흐르는 길이자 옷이다. 또한 공간은 운명의 대변인이기도 하다.
공간에 대한 고민은 소설집의 두 번째 작품인「조롱(鳥籠)을 높이 매달고」에서도 이어지고 있다. 소설 속에서 과거와 현재는 나란히 공존하고, 또한 둘은 일직선상에 놓여 있다. 환상이 현실과 교차하고 있어서 둘 사이의 구분이 모호하다. 환상적인 현상이나 인물, 공간 등이 현실과 겹쳐져 있지만 바로 그곳에 생의 본질을 파고드는 선명한 리얼리티가 있다. 이것이 바로 작가가 인간과 운명이라는 것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마루야마 겐지가 말하는 소설의 근본
언젠가 마루야마 겐지는 다른 어떤 세계보다 이미지의 세계를 신뢰한다고 적었다.
‘…… 동물원에서 죽은 지 며칠이나 지나 쪼글쪼글 말라비틀어진 새끼 원숭이를 질질 끌고 가는 어미 원숭이를 보았을 때가 그랬다.’ 에세이집 『소설가의 각오』에서
그는 그 광경을 보았을 때, ‘어느 누구의 설명 없이도, 커다란 진실을 획득한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그의 소설에서 발견되는 가장 큰 특징이 바로 사건과 공간의 이미지이다. 그것은 이미지만이 진실하고, 불필요한 감정의 가감 없이 현실을 그릴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이미지는 현실에 닻을 내리고 있기는 하나 그 돛은 상상의 세계를 향해 펼쳐져 있다. 그래서 그는 이미지를 이용한다.
그는 시적 소설, 이미지가 잘 형성된 소설, 문장 하나하나에 정신이 깃든 소설을 위해 그는 지위와 명성, 하다못해 남들이 다 하는 일상적인 생활조차 포기했다. 작가의 이러한 모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일반인들이나 특히, 작가들에게 어필하는 면이 많다.
‘왜 소설가가 되고 싶은 것일까. 왜 젊은 정열을 송두리째 바쳐 순수문학이란 고봉―자신이 이상으로 여기는―에 과감히 도전하는 것일까. 지금까지 아무도 쓰지 않았고 쓸 수 없었던 전혀 새로운 소설을 세상에 내보내, 대가인 척 거드름을 피우며 기존의 작가들을 놀라게 하리란 굳은 결심으로 펜을 잡는 것일까. 유감스럽게도 그들 어디에서도 그와 같은 기백은 느낄 수가 없다. 자아도취를 위하여 소설 비슷한 것을 발표하고는 흔해빠진 타입의 소설가가 되어 편하게 생활하고 싶다는 것이 그들의 동기가 아닐까’라고 말하듯, 자칫 소설 쓰기가 한갓 취미나 여가 생활로까지 여겨지는 현 세태의 단면을 매섭게 꼬집는다.
그는 펜을 쥐기 전에 무엇을 쓰고 싶은가, 무엇을 쓰려고 하는가를 생각지 않는다. 단지, 어느 날 어떤 ‘힘’이라 할 것이 그를 자리에 앉히고, 펜을 들게 하고, 약간은 빙의적(憑依的)이라 할 상태에서 그야말로 우연의 문장들을 만들어낸다.
‘내 취향으로 하자면, 그 「공간」은 작가의 재능을 백 퍼센트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가능하면 허상으로 해주었으면 좋겠다. …… 등장인물들이 아무 의심 없이 그 「공간」에 녹아 있고 내 머리에 그런 점이 보다 선명하게 부각될 수 있으면 그것으로 충분히 가치있는 소설이고, 힘있는 작품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런 소설이어야 독자들로 하여금 산더미처럼 쌓여 있는 다른 일들을 제쳐두고 소설읽기에 빠져들게 할 수 있다.’
마루야마 겐지에게 있어 소설 쓰기란 하나의 구도의 길이자, 자기 발견의 길이다. ‘쓴다’라는 행위를 통해 비로소 그는 비로소 자신의 삶을 발견할 수 있었으며, 세상과 소통하고 교감하는 방법을 찾았다.
근래에 마루야마 겐지는 문명의 미래, 환경.생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실천하며 살고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자신의 정원에 생명을 불어넣는 일에 열중해 꽃 가꾸기에 힘을 쏟는다. 그는 유명한 자신의 정원을 배경으로 삼은 정원 만들기에 대한 에세이집도 여러 권 출간했다. 그의 문학과 문학적 삶은 점차 발전하고 진화하고 있다. 문학에 대한 도전도 계속한다. 영화광이나 속도광을 거쳐, 개를 키우고 정원을 꾸미는 등 예술적인 구도의 길을 가고 있다. 여전히 세상과는 거리를 둔 채 현대 도시문명에 대한 비판적 에세이도 쓴다. 그동안 그의 문학은 모두 실험적이었고, 암중모색이었다. 지금도 그 완성을 향해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