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새로운 전쟁’의 시대가 도래했다
― 더 잔혹하고 더 오래 지속되는 폭력, 새로운 전쟁의 정치경제적 메커니즘
9.11 테러와 아프가니스탄 전쟁, 이라크 전쟁 등 최근 우리가 목도한 세계사적 사건들은 ‘고전적인 국가 간 전쟁’이 역사의 뒤편으로 사라졌음을 말해준다. 국가는 실질적인 전쟁 독점자의 지위에서 물러났으며, 군벌과 파르티잔, 용병회사와 국제적 테러 조직망 등 ‘전쟁사업가’들이 전쟁의 주체로 등장했다. 대규모 전투보다는 ‘난민 행렬, 비참한 수용시설, 굶주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나는 ‘새로운 전쟁’은, 폭력의 강도는 약해졌을지 몰라도 더 잔혹하고 더 오래 지속되는 폭력으로 우리의 삶과 사회 구조에 더 깊이 파고들며 사회경제적으로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이 책은 20세기의 마지막 십여 년 동안에 뚜렷하게 그 경향성을 드러내고 21세기 초 9.11 테러 등을 통해 분명하게 인식된 ‘군사적 폭력의 탈국가화’ 현상을 근대국가체제 성립 이전의 전쟁들과 비교하면서 심도 있게 분석한 저작이다. 저자는 이 전쟁의 변화 양태를 고전적 국가 간 전쟁과 대비되는 ‘새로운 전쟁’이라는 개념으로 제시하며, 이 변화에 숨은 정치-경제적 메커니즘을 분석함으로써 20세기 전반부와 확연히 달라진 현재의 국제 질서와 전쟁 규칙의 변화를 드러내고 전쟁과 정치에 관한 새로운 시각을 제시한다.
정치사상사와 전쟁론 분야의 석학인 저자 헤어프리트 뮌클러 교수는 국가가 중심이 된 영토 분쟁이나 정규군 간의 전투 등 근대의 기본적인 전쟁 패턴이 냉전 이후 무너졌다고 주장하며, 근대의 전쟁 이론에서는 크게 주목하지 않았지만 새롭게 부각되고 있는 민간인 살상, 테러, 군사용역 문제 등을 중요하게 언급한다. 그는 삼십년전쟁과의 비교를 통해 새로운 전쟁이 역사적으로 그리 새로운 현상이 아니며, 지난 200여 년 동안의 대칭적 국제질서 속에서 일어난 국가 간 전쟁이 오히려 역사적으로 예외적인 현상이었음을 설득력 있게 보여주고 있다(저자에 따르면, 사하라 이남 지역의 전쟁들, 유고슬라비아의 붕괴와 관련된 전쟁들, 체첸 전쟁, 아프가니스탄에서의 전쟁들은 모두 18~20세기의 국가 간 전쟁들보다는 삼십년전쟁과 훨씬 더 유사하다).
한국에 거의 소개된 적이 없는 대륙 유럽의 시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도 돋보이는 이 책은, 전쟁을 바라보는 시대착오적 관점을 넘어 전쟁의 변화가 내포하는 정치경제적 의미와 폭력의 작동 방식을 정확하게 짚어냄으로써 ‘전쟁과 평화’에 대한 새로운 시각과 통찰을 제공할 것이다.
2. 새로운 전쟁, 무엇이 새로운가 ― 전쟁의 비대칭화 · 경제화 ·탈군사화
그렇다면 새로운 전쟁은 구체적으로 무엇이 새로운가? 이 책은 그 특징을 ‘전쟁의 비대칭화’, ‘전쟁의 경제화’, ‘전쟁의 탈군사화’로 제시한다.
우선, 고전적 전쟁이 대칭적으로 수행되었다면 새로운 전쟁은 비대칭적으로, 즉 동등하지 않은 적수가 맞서 싸우는 형태로 수행된다. 대칭적 전쟁의 시대는 본질적으로 동일한 형태를 취하는 영토국가 시스템이 형성된 곳에서 나타났으며, 문화 간의 전쟁에서는 비대칭적 전쟁의 발발 가능성이 높다. 저자에 따르면 이것은 결코 단순한 정치적ㆍ군사적 전략의 문제가 아니라, 전사들의 에토스와 전사들을 전쟁법적으로 구속하는 형식들과도 관련되는 문제이다. 대칭적 대결의 조건 속에서 충돌 당사자들은 전쟁 수행의 규칙, 전쟁을 시작하고 종료하는 형식적 행위들과 전쟁포로에 대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범 등에 관심을 가진다. 그러나 비대칭적 조건 속에서 상황은 반대가 된다. 대량살상무기의 사용 중지나 전쟁포로에 대한 고문 금지 같은, 내가 나를 제한하는 것이 또한 적을 스스로 제한하도록 유도한다고 확신하지 않는다면, 자기제한을 스스로 부과하려는 경향은 약해진다. 그러므로 비대칭적 전쟁은 대칭적 전쟁보다 폭력의 강도 면에서는 약하지만 더 잔혹하고 끔찍하며, 무엇보다도 훨씬 더 오래 지속된다. 새로운 전쟁의 지속 기간은 몇 년이 아니라 몇십 년이다. 비대칭적 전쟁은 결과적으로 사회 구조에 훨씬 더 깊이 파고들며, 그렇기 때문에 대칭적 전쟁보다 사회경제적으로 더 심각한 영향을 끼친다.
새로운 전쟁의 두 번째 특징은 ‘전쟁의 경제화’이다. ‘군벌’과 ‘민간군사회사’가 전쟁의 경제화의 주역들이다. 두 세력은 전쟁이 경제적으로 유익하고 전쟁에 참가하는 것이 더 많은 수입을 보장한다는 전제 위에서 군사적 폭력의 사용과 공급을 돈벌이의 수단으로 간주한다. 저자는 이 사실을 돈과 권력을 모두 탐내는 군벌들과 관련하여 자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낡은 전쟁’이 군대와 민간인을 구분했다면, ‘새로운 전쟁’은 지속적으로 새로운 전쟁참가자 유형을 만들어낸다. 이 새로운 참가자들의 특징은 반전 가능성이다. 즉 드러나는 곳에서 그들은 민간인이지만, 가능한 곳에서 그들은 전사이다. 이것이 새로운 전쟁에 구속력 있는 규칙들을 부과하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고, 또한 그 규칙들을 유효하게 만드는 것이 어려운 이유이다.
새로운 전쟁의 세 번째 특징은 ‘전쟁의 탈군사화’이다. 고전적 전쟁은 시민사회로부터 구분되고 국가의 지휘권에 종속되는 군대의 업무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정치적 행위논리와 경제적 행위논리는 ‘새로운 전쟁’의 폭력 행위자들 속에서 결합된다. 전제적 지배 아래 놓이게 된 민간인은 추방당하거나 노예노동을 강요받거나 군벌들의 정치적 정당성 확보를 위한 도구 취급을 받기도 한다. ‘새로운 전쟁’에서 전쟁폭력은 일상의 삶을 구성하는 한 부분이 된다. 전쟁과 평화의 경계는 물론, 전쟁과 범죄의 경계도 흐려지기 시작한다. 새로운 전쟁은 교전과 결전의 모습이 아니라 난민의 행렬, 비참한 수용시설, 굶주리는 사람들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새로운 전쟁은 전투원과 비전투원을 구분하지 않으며, 싸움의 목표와 목적도 명확히 드러나지 않는다.
3. 현재의 안보정치가 직면한 도전 ― 어떻게 21세기의 역사를 준비할 것인가
대칭적 전쟁의 종식과 함께 전쟁의 시대도 끝났다고 생각한 것은 환상이었다. 반(半)국가적이고 사적이며 상업적인 전쟁행위자들의 귀환, 그리고 비대칭성이 지배하는 세계 정치질서로 인해 대칭적 전쟁은 비대칭적 전쟁으로 대체되었다. 저자는 이 비대칭적 전쟁이 21세기의 역사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한다. 새로운 전쟁의 상황에서 유럽과 미국은 상이한 전략을 취하고 있다. 유럽의 방식이 대칭적 정치를 위한 필수불가결의 최소 조건을 복구하려는 것이라면, 미국의 방식은 직접 비대칭화의 경로를 따르는 것이다. 국제 테러리즘에 맞선 싸움에서 유럽의 전략은 내전과 초국적 전쟁에서 붕괴한 국가를 복구함으로써 테러 네트워크가 뿌리 내릴 수 있는 기회를 줄여 테러리스트의 존재와 활동 조건들을 제약하는 것이다. 반면 미국은 테러리스트 조직들에 맞서는 장기적인 전쟁을 준비한다. 그들은 테러리스트 조직들의 공격 능력을 약화하기 위해 지속적으로 치고 빠지는 식의 공격을 한다. 저자는 이런 전쟁에 승산이 있는지 의심하며, 그것이 어쩌면 새로운 ‘제국의 야만 경계선’에서 계속해서 타오르는 전쟁이 될지도 모른다고 지적한다.
저자에 따르면, 미국의 비대칭화 전략은 안전에 대한 신화적 믿음에 기대고 있다. 이 전략은 변화한 상황에 대한 일종의 학습 봉쇄 효과를 가져오며, 이라크 전쟁에서 볼 수 있듯이, 창조적으로 학습하는 비대칭적 행위자들의 비대칭적 비대칭화 전략을 맞닥뜨리게 된다. 2003년 3월에 일어난 걸프전쟁에서 미국은 자국의 압도적인 군사적 우위를 의식하면서 이라크를 공격했고, 적이 자국에 커다란 피해를 입히지 못할 것임을 확신했다. 이라크는 사용할 수 있는 어떤 대량살상무기도 가지고 있지 않았다. 공식적인 주장과 달리 미 행정부는 이 사실을 알고서 전쟁을 시작했다. 미국의 비대칭적 우위는 온전히 확보될 수 있었고, 고전적인 방식으로 수행되는 전쟁에서 이라크가 군사적으로 이길 가능성은 없었다. 그러나 이 비대칭적 우위의 상황은 미국과 영국의 부대가 이라크를 점령하면서 공공의 안전과 물, 에너지, 생필품의 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