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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느림의 미학에 빠진 청춘, 아이슬란드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텅 빈 아름다움을 담아내다! 남다른 동체시력으로 남들은 보지 못하는 찰나의 순간을 보는 능력자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 「슬로우 비디오」. 영화 속 주인공 역을 맡은 차태현은 자신의 동체시력을 이용해 집중적으로 보고 기억한 것들을 그림으로 남기는데, 영화의 주요 배경이 된 종로구 필운동 일대의 지도는 담백하지만 섬세한 터치가 돋보이는 드로잉으로 시선을 사로잡는다. 이 그림, 설마 차태현이 직접 그린 것은 아닐 테고, 과연 누가 그린 것일까? 차태현의 손에서 완성된 영화 속 그림들은 모두 그림 작가 엄유정의 작품이다. 심플함 속에 독특한 느낌이 살아 있는 엄유정 작가의 작품을 평소 눈여겨보던 김영탁 감독은 느리고 따뜻하게 흐르는 영화의 비주얼과 잘 어울릴 거라 믿고 엄 작가를 섭외하게 되었다고 한다. 흥미롭게도 엄 작가가 운영하는 개인 홈페이지의 이름도 ‘슬로우드림(slowdream)’이라고 하니, 느림의 미학에 빠진 영화와 그림이 제대로 만나 빛을 발한 것이다. 홍익대학교 회화과를 졸업하고 현재까지 그림 작가로 꾸준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 엄유정은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개인전과 그룹전을 개최하며 착실하게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국내에서는 물론 2014년 아이슬란드, 2015년 독일 뮌헨, 2016년 일본 도쿄 등지에서 개인전을 열었을 만큼 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많은 관심을 받는 작가이기도 하다. 특히 작가의 그림에 반한 일본의 한 인디밴드가 엄 작가의 ‘설산’ 시리즈 중 한 작품을 재킷 이미지로 차용하면서 이제는 바다 건너 일본의 음반 전문 매장에서도 엄유정 작가의 작품이 실린 CD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재킷을 장식한 작품은 2014년 봄, 꽃이 만개하는 계절에 여전히 하얀 눈이 덮인 아이슬란드로 떠나 그곳에서 보고 느낀 광활한 자연, 그중에서도 새파란 하늘과 대비되는 서른여섯 개의 설산을 그린 연작 중 하나다. 이 연작은 엄 작가가 아이슬란드 북부에 위치한 작은 어촌 마을 올라프스피외르뒤르의 아티스트 레지던시에서 머물면서 매일 낮과 밤, 두 개의 시간을 살아가는 산의 모습을 옮겨 그린 것이다. 척박하지만 행복한 나라, 아이슬란드 하얀 종이 위에 그려진 그곳은 과연 어떤 모습일까? 미국의 한 저널리스트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상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를 찾겠다며 세계 일주를 떠나 다양한 장소,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관찰하면서 행복의 의미를 찾아가는 책 『행복의 지도』. 책의 저자 에릭 와이너는 빙하와 호수, 화산지대로 이루어진 유럽 북부에 위치한 작은 나라 아이슬란드의 행복지수가 높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곳을 방문한다. 소득 수준이 대단히 높은 것도 아니고, 환경이 비옥한 것도 아닌데,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무엇에서 행복을 느끼는 것일까? 몇 날 며칠을 그 답을 찾기 위해 바삐 오가던 에릭 와이너는 훗날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슬란드는 실패를 비난하지 않고 오히려 실패를 통해 더 나은 자신을 찾아가기를 권장하는 사회라는 사실을 말이다. 무한 경쟁 사회에 살다 보면 실패에 대한 두려움이 자연히 싹트기 마련인데 아무도 비난하기는커녕 괜찮다고, 할 수 있다고 응원을 아끼지 않는 사회라니…… 행복지수가 높아질 수밖에 없을 것도 같다. 어디 그뿐일까. 국토는 한반도의 2분의 1, 인구는 약 32만 명에 불과한 아이슬란드는 언뜻 보기에는 거칠고 메마른 땅이지만 알고 보면 천혜의 자연을 품은 아름다운 곳이다. 천년의 세월을 거치며 만들어진 푸른 빙하와 검은 땅 속에서 꿈틀거리는 붉은 용암, 연무를 피워 올리는 거대한 폭포, 그리고 빛의 장막 오로라까지. 마치 상상 속에서나 떠올려봤음직한 환상의 세계가 눈앞에 펼쳐진다. 아직 그곳에 가보지 않았더라도 TV나, 책 속에 실린 그림 같은 풍광에 감탄이 절로 나오는데, 그곳을 직접 경험한 이들 입에서 ‘매일 무언가에 취한 것 같은 기분이었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과장은 아닌 듯하다. 그런 아이슬란드의 풍경을 그림 작가 엄유정은 선과 색채가 어우러진 그림으로 담담하게 담아냈다. 언젠가 마주한 한 장의 폭포 사진에 매료되어 아이슬란드에 흥미를 갖게 되었다는 지은이는 어느 날 문득 복잡한 도시를 떠나 텅 빈 아름다움으로 가득한 곳에서 40일 동안 머물고 여행하며 자연과 사람, 여행의 기억을 기록하고 그림으로 남겼다. 그렇게 완성한 『나의 드로잉 아이슬란드』는 사진 한 장 없이 오직 그림으로만 아이슬란드를 표현하고 채우고 있다. 사진을 볼 때와 같은 생생함은 덜하지만, 아이슬란드와 그림 사이에 존재하는 적당한 거리감이 오히려 보는 이로 하여금 그곳을 상상하고 느끼게 하는 묘한 매력이 있다. 때로는 엉뚱하고, 때로는 쓸쓸함이 물씬 전해져오는 그림은 작가가 말하고자 한 ‘어떤 텅 빈 아름다움의 실체’를 어렴풋이나마 엿본 것만 같은 느낌을 받게 하고, 자신도 모르는 사이 위로와 감동을 받는다. 비록 책에는 아이슬란드의 이모저모를 알려주는 정보는 없지만, 작가가 그랬던 것처럼 문득 번잡함을 벗어나 잠시나마 어딘가 조금씩 비어 있고 얼기설기한 여백이 흐르는 얼음의 나라 아이슬란드를 느끼고픈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아름다운 선물이 될 것이다. 이 책은 아이슬란드 전역을 훑는 활발한 여행기라기보다는, 북부 아이슬란드의 어촌 마을에서 그림을 그리며 살아간 어느 느릿한 은둔기라고 해야 할 것 같다. 너무나도 고요하던 그곳에서 나는 매일 똑같은 곳을 천천히 산책했는데, 이상하게도 매일 새로운 것들에 감탄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그 놀라움은 뭐랄까…… ‘아무것도 없음에 더욱 아름다운 것’이었다. (……) 왜 그렇게 멀리까지 가서 그런 헐렁한 것만 느끼고 왔느냐고 묻는다면 글쎄…… 긁적긁적, 나도 그 이유를 잘 설명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다만 그 헐렁한 풍경들이 내가 삶을 다시 살아가는 데 힘이 되어준 것만은 분명하다고 말하고 싶다. (……) 그 낯선 풍경 속에 잠시 나를 던져본 것은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어떤 것을 바라보며 살아가고 싶어 하는 지에 대해서 조금이나마 깨닫게 해주었다. _프롤로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