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에 사는 오랜 이웃,
평화를 부르는 다정한 거인 고래와의 특별한 만남
세상 끝에 사는 외로운 괴수,
산업혁명의 등불을 밝힌 경제적 자원,
이윤을 창출하는 수족관의 엔터테이너는
어떻게 인격을 지닌 권리의 주체와 기후변화의 해결사로 거듭났는가?
모비딕의 고향 낸터킷(미국), 최악의 돌고래 학살지 다이지(일본),
인간에게 놀러 오는 돌고래가 사는 샤크베이(호주) 등
세계 20여 곳을 누비며 고래의 생태, 문화, 역사를 담은
고래와 인간에 관한 거의 모든 이야기!
고래의 생태적 지식을 토대로 인간-고래 관계의 역사를
통사적으로 다룬 단 한 권의 책!
남방큰돌고래 ‘제돌이’ 야생방사의 시동을 건
환경논픽션 작가 남종영의 최고의 고래 개론서
좌초한 신화, 고래
바다의 괴수에서 돈벌이로 전락하다
고래에 대한 설명으로 ‘경이로움’보다 더 적절한 말은 없을 것이다. 고래는 경이로움, 그 자체다. 다른 바다 동물들과 달리, 육지에서 바다로 되돌아간 고래는 엄청난 몸집부터 뛰어난 지능, 운동 능력, 생태와 문화까지 놀라운 이야기로 가득하다.
어느 영화에선가, 바다에 가본 적 없는 산적들에게 해적이었던 사내가 고래를 설명하는 장면이 나온다. 모닥불을 가운데 놓고 빙 둘러앉은 무리 바깥으로 둥근 원을 그리고 나서, 고래의 눈 크기가 이 정도라고 이야기한다. 이어서 고래의 크기와 생김새, 생태를 설명한다. 코는 머리 뒤쪽에 있고, 이빨 대신 수염으로 먹이를 잡아먹으며, 가끔씩 숨을 쉬러 바닷물 위로 나와 비처럼 물줄기를 뿜어댄다고 말이다. 또 새끼를 낳고 젖을 먹인다는 이야기도 이어진다. 산적 무리는 거짓말을 한다면서 해적 출신 막내를 흠씬 두들겨 팬다. 영화를 보는 사람이야 고래의 생김새와 생태를 이미 알고 있으니 재미있게 웃어넘기지만, 고래를 본 적 없는 사람이라면 정말 그런 동물이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인지 고래는 다양한 문화권에서 신화와 전설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누이트의 여신 세드나 전설에, 구약성경 <요나서>에, 신드바드의 모험과 피노키오 이야기에 고래는 중요한 역할로 등장한다. 고래를 섬으로 착각했다는 이야기는 동서양 어디에서나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이렇듯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거대하고 영민한 동물이 바로 고래였다. 그래서 고래에 생활의 많은 부분을 의존했던 이누이트 부족은 고래 사냥에 나서기 전에 그리 까다로운 정화 의식을 치렀는지도 모른다.
캐나다 밴쿠버 섬과 북서태평양 연안에 거주해온 누차눌쓰Nuu-chah-nulth 부족은 사냥 한 달 전부터 아내와 잠을 자면 부정탄다고 여겼다. ‘눗카Nootka’라고 불리기도 하는 이 부족의 고래 사냥꾼 가운데 한 명이라도 터부를 깨면, 사냥은 실패로 돌아가고 선장이 책임을 졌다. 남편이 바다에 나가 있는 동안 아내는 집에서 고래가 오도록 문을 열어두고 조용히 기다렸다. 만약 낯선 사람이 집을 방문하면 사냥은 실패한다고 믿었다. 누차눌쓰 부족의 샤먼은 사당을 짓고 고래 사냥꾼 아내의 배설물을 갖다놓았다. 아내의 배설물이 고래를 해안가로 유인한다고 믿었다.
_147-148쪽 (고래야, 네가 원하는 걸 주었다)
이런 생각을 변화시킨 것은 고래의 좌초, 스트랜딩(죽은 고래가 육지로 떠밀려오는 것)이다. 당시에는 고래의 좌초가 그 자체로 놀라운 자연사적 사건이었다. 16세기 후반까지도 사람들에게 고래는 여전히 신비로운 동물이었으며, 민간 구전에서는 ‘바다의 괴수’로 인식되었다. 하지만 르네상스적 인식 변화와 과학의 발전으로 인해, 사람들이 뭍으로 올라온 고래를 관찰하고 해부하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각을 갖게 되었다. 이제 고래도 한낱 동물에 지나지 않는다고 여기게 된 것이다.
이후 두려움과 경외의 대상이었던 고래는 돈벌이의 수단으로 전락한다. 스페인 비스케이 만을 시작으로 북극해와 북아메리카의 낸터킷까지 세계 곳곳에서 경제적 이득을 위해 ‘바다의 거인’에게 작살을 던지기 시작했다.
살육되고, 감금되던 존재가
다정한 거인으로 재인식되기까지
두려움의 대상, 신화적 존재, 바다의 괴수였던 고래가 한 마리 동물로 추락하고 바스크족이 상업적 목적으로 고래를 잡아들이자 영국, 네덜란드, 미국, 러시아, 일본 등 제국주의 열강들은 모두 포경산업에 뛰어든다. 고래기름과 고기, 경랍 같은 고래 부산물을 얻기 위해서 전 세계 바다가 핏빛으로 물들어갔다. 감당할 수 없는 엄청난 크기의 대왕고래 같은 대형 고래를 잡아들이기 위해 포경선들은 갈수록 크기를 키웠다. 머지않아 포경선은 바다의 공장이 되어버렸다. 그리고 더 이상 잡을 고래가 없어지면 다른 곳으로 이동해서 다시 작살을 던졌다.
디젤엔진을 단 배가 등장하고 폭약 작살이 발명되면서 고래 개체수는 기하급수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다. 양차 세계대전 이후엔 어군 탐지기와 소나(잠수함의 음파탐지기), 비행기까지 더해졌다. 이때부터 고래는 발견 대신 수색되었다. 그렇게 20세기 중후반에 접어들자 고래가 잘 잡히지 않았다. 포경선도 하나둘 팔리기 시작했고, 흥청거리던 포경항도 점차 퇴색되어 갔다. 1986년 점점 사라져가는 고래 때문에 포경산업이 시들어갈 즈음, 국제포경위원회는 상업포경을 전면 금지한다. 이로써 15세기 스페인의 바스크족이 본격적으로 개시한 상업포경은 500년 만에 막을 내린다.
무엇이 고래를 구출했을까? 인간들의 현명한 지혜도, 지구를 사랑하는 마음도 아니었다. 그저 부족해진 자원량으로 인해 포획 비용이 상승했기 때문에 작살을 던지지 않은 것뿐이다.
_274쪽(고래의 노래)
그러나 상업포경이 금지된 이후에도 고래에 대한 인간의 착취는 계속되었다. 포경 금지 대상이 아니었던 돌고래와 범고래는 여전히 잡혀 수족관에 갇히고, 인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고통받았다. 좁은 수조와 냉동 생선, 쇼에 적응해야 했으며 조련사의 지시에 따라 쇼 동작을 배워야만 했다. 그래야 냉동 생선이라도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는 사이 ‘야생의 몸’은 ‘돌고래쇼의 몸’으로 변해갔다.
이렇게 ‘경제적 자원’으로 격하되어 대량으로 살육되고 감금됐던 고래의 현실에 대해 반대 목소리가 커진 것은 최근의 일이다. 환경운동가와 과학자, 그리고 미디어 제작자들이 오랫동안 공을 들인 결과다. 과학자가 고래의 행동·생태 연구 결과를 발표하면, 미디어는 이를 고도의 정신 작용과 다양한 감정, 그리고 개성과 문화로 번역했다. 환경운동가는 ‘고래도 생명’이라고 외치며 정부, 산업계와 싸웠다. 경제적 자원이던 고래가 ‘다정한 거인’으로 재인식되고 나아가 ‘권리의 주체’로 호명된 것은 이러한 문화적 동력들이 뒷받침해 준 덕분이다.
평화와 환경을 지키는 다정한 거인,
권리의 주체에서 ‘비인간인격체’로
이제 고래라면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자폐 스펙트럼 장애를 앓고 있는 그녀가 시끄럽고 자극적인 지하철 소음에서 멀어져 오롯이 고래의 노래에 집중하며 안정을 찾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런 우영우를 지켜주듯 지하철 위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고래의 이미지가 생각나니 말이다.
고래에 대한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많은 철학적 함의를 내포하고 있다. 일찍이 데카르트는 동물을 자의식은 물론, 감정과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존재로 정의했다. 오직 자극에 기계적으로 반응하는 존재로 규정한 것이다. 고래도 이런 기계적 존재로 인식되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거울실험으로 논파된다. 오랑우탄, 고릴라, 보노보, 코끼리, 유럽까치와 함께 돌고래도 자의식이 있음을 증명했다. 다시 말해 이 동물들도 인간처럼 감정과 고통을 느끼는 것은 물론 자신을 타자화(他者化)할 수 있는 고도의 정신 작용을 가졌다는 뜻이다.
고래를 인격적으로 대우해야 할 이유는 무수히 많다. 고래는 이제 평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