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역사책이 아니다, 기후의 힘을 보여준다”
_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소빙하기의 절정이었던 1640년대 초 중국, 기후위기와 팬데믹, 치솟는 물가와 인플레이션의 치명적 조합이 명제국을 한순간에 몰락시켰다. 많은 역사가들이 명의 멸망을 만주족의 침략과 정치적 파벌주의, 행정 실패, 세수 감소, 농민 반란 등의 도덕적 실패 때문이라 해왔지만 사실 그보다 훨씬 깊은 원인이 있었다. 기후문제다. 저명한 중국사가 티모시 브룩 교수(UBC)의 신작 『몰락의 대가_기후위기와 물가 그리고 명제국의 붕괴』(원제 The Price of Collapse)는 명 말의 정치사가 아니라 어찌 보면 평범한 자료인‘물가’에 초점을 맞춘다. 물가가 기후 변화의 결과만이 아니라 환경 재앙을 감지하는 지표가 된다는 것이 저자의 통찰이다. 기후사와 물가사를 동전의 앞뒤처럼 결합하여 기근 시기 곡물 가격이 환경사적 증거로 왜 중요한지, 단기적인 환경 충격이 시장과 사회를 어떻게 붕괴시킬 수 있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책은 기후위기가 재앙으로 치닫는 과정과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는 곡물 가격의 압박을 받았던 서민들의 경험을 재구성한다. 저자는 흩어져 있던 당대의 여러 기록에서 찾아낸 정보를 토대로 4세기 전 중국 사회의 생필품 값이 얼마인지, 서민들이 어떻게 비용을 감당하려 애썼는지, 그리고 기후 변화가 수확을 파괴하고 가격을 상승시켰을 때 무슨 일이 발생했는지에 대해 생생하게 그려낸다. 또한 명 말의 극단적인 가격이 은의 유입과 화폐 공급량 때문이라는 종래 통설을 반박하며 지구적 무역 때문이 아니라 환경 재앙임을 분명히 밝힌다. 명대 중국이 정치, 경제, 사회, 인구 부양 등에서 당시 세계에서는 가장 선진적인 체제로 위기에 대응하는 회복력이 있었음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1640년대 같은 외부적인 환경 재난 앞에서는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고 했다. 생존 가능과 불가능의 한계를 설정하는 것은 ‘자연’이었다.
기후위기와 팬데믹, 치솟는 물가로 서민의 삶이 몰락하는 이 책의 이야기는 우리 시대의 문제 상황과 다르지 않다. 티모시 브룩 교수는 한국어판 서문에서 “태평양의 격동적인 환경에 둘러싸여 있고 광활한 시베리아 대지 아래에 위치하여 기후 영향에 취약한 반도에 거주한다는 것은 기후 재난이 항상 가까이에 도사리고 있음을 의미한다.”며 한국 독자의 기후 문제에 대한 우려에 공감한다. 이정모(전 국립과천과학관장) 선생은 “단순한 역사서가 아니다. 기후의 힘을 보여준다.”며 이 책을 권한다.
“기근 시기 곡물 가격은 기후 변화의 지표이자 기후(환경)사의 최고 증거, 기후사가 물가사 없이 서술될 수 없으며, 물가사도 기후사 없이는 서술될 수 없다”
명 말 ‘숭정 위기’(1638~1644) 동안 중국에서는 전례 없이 심각한 수준의 한파와 가뭄, 전염병, 돌풍, 지진, 메뚜기 떼 피해가 복합적으로 발생하여 전국적으로 수백만 명이 사지로 내몰렸다. ‘천년 만의 가장 심각한 7년’이었고 그중 1642년은 최악의 해였다. 양쯔강 삼각주 부근 퉁샹현의 사대부 천치더는 이렇게 썼다. “이 시기에는 시장에도 구매할 수 있는 쌀이 없었다. 곡물을 가진 상인이 있어도, 사람들은 가격을 묻지 않고 지나쳤다. 부유한 자들은 콩이나 밀을 찾아 헤맸고, 가난한 사람들은 왕겨나 썩은 음식물을 찾아 헤맸다. 몇 두의 왕겨나 나무껍질을 얻을 수 있는 것만도 기쁜 일이었다.”명제국은 2년 후 붕괴되었다.
중국 벼농사의 특성상 한파와 많은 강수량보다 한파와 가뭄의 조합이 훨씬 위험했다. 여기에 팬데믹이 겹치면서 물가는 치솟았고 인플레이션은 명의 경제와 사회 체제를 무너뜨리며 정치 체제도 함께 무너졌다. 티모시 브룩 교수는 명제국을 몰락시킨 극단적인 곡물 가격과 인플레이션을 설명할 수 있는 유일한 요인은 ‘기후’였다고 단언한다. 수백 개의 가격 데이터를 수집한 후, 그 시점이 소빙하기 기후 변화 시기와 일치한다는 것을 증명한다. 중국을 사로잡은 것은 정치적 실패가 아니라 기후적 실패였다는 것이다.
그런데 저자는 왜 물가에 초점을 맞출까? 기근 시 곡물 가격을 기후(환경)사와 연결짓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자들이 기후 변동을 물리적 지표를 통해 추적하지만 어떠한 기후 시뮬레이션도 1640년대 가격 재앙으로 “사람들이 완전히 지쳐 버린”그 순간을 정확히 포착할 수 없다. 이것이 명대 기후사가 물가사 없이는 서술될 수 없으며, 물가사도 기후사 없이는 서술될 수 없는 이유인 것이다. 곡물이 한파나 가뭄으로 망가질 때, 그 영향은 인간이 기근을 겪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곡물의 기근 가격을 형성했다. 기근 시 곡물 가격이 기후 변화의 척도이고, 우리가 가진 환경사적 증거 중 최고라는 것이 티모시 브룩의 통찰력 있는 설명이다. 이 책은 천치더가 기록한 1640~1642년의 재난 상황과 물가 자료(「재황기사(災荒記事)」를 명대 역사를 이해하는 도구로 삼아 이야기를 확장해간다.
“서민들 가정이 한 해를 버티기 위해서는 은 14냥, 중산층의 가정은 23냥 이상”
저자는 명과 청 그리고 민국 시대의 약 3천 권에 달하는 지방지와 수필, 일기, 회고록 그리고 영국 동인도회사의 장부까지 모았다. 777건의 방대한 기근 시기 곡물 가격 자료를 추출하여 쌀, 보리, 밀, 콩 등 곡물과 72개 상품을 더해 광범위하게 가격을 비교했다. 물가를 기후 변화의 결과로서만 바라보지 않고, 그 관계를 바꾸어 명대의 물가를 기후 변화를 감지하는 대리지표로서 활용하는 전략을 취함으로써 물가 변동과 기후 변동의 상관관계를 추적한 것이다. 여기서 물가가 기후 변화의 대리지표로서 기능하려면, 기후 변화의 충격이 없는 상황에서는 물가에 눈에 띄는 변동이 없어야 한다. 하여 저자는, 이 책의 2장에서 명대의 물가가 외부 충격이 없는 한 일정한 가격 범위 속에서 평준화 압력이 작동하는 ‘가격 체제’ 속에 자리 잡고 있었으며(저자는 명대 연평균 인플레이션율을 0.3퍼센트로 추정했다) ‘공정 가격’이라는 관념이 작동하고 있었음을 증명한다.
특히 이 책에서 티모시 브룩의 빼어난 학술적 공헌은 명대 서민 가정이 먹고살고 자녀를 양육하기 위한 연간 생활비와 벌이를 추정한 점이다. 노동자, 군인, 자영업자, 장인, 어부 등 가장 가난한 가정이 한 해를 버티기 위해 은 14냥이 조금 넘는 돈이 필요했고, 중산층의 생활비는 23냥 이상이었다. 서민들의 연간 임금은 은 5냥에서 12냥 사이였으며 부족분은 텃밭에서 먹거리를 생산하여 해결했다. 중산층의 임금은 14냥에서 22냥 사이였고 이들 역시 텃밭 같은 부수입이 조금 더 있었다. 또한 저자는 명대의 가격 체제를 재구성했는데 은 1푼, 1돈, 1냥으로 살 수 있는 각각 25가지 물건을 추출하여 제시하는데 무척 세세하고 흥미롭다. 역사가 단순히 위대한 통치자나 강력한 군대에 관한 것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생존해야 했던 조건에 관한 것임을 보여주는 것이다.
명 말의 극단적 물가 상승은 지구적 ‘은 무역’ 때문이 아닌 ‘기후’ 문제였다
티모시 브룩은 명 말의 기록적인 물가 상승의 원인이 화폐 공급량 때문이었다는 일부 역사학자들의 주장에 대해 반기를 든다. 중국사가 세계사의 일부가 되는 데 큰 역할을 한 것이 은의 전 지구적 유통이었음은 틀림이 없다. 문제는 물가가 급등하기 전에 이미 은이 중국으로 유입되었고, ‘숭정 위기’ 동안 곡물 가격이 은의 이동에 영향을 받았다는 증거가 없다는 것이다. 또한 명제국의 경제는 유럽 전체 경제와 비슷한 규모로 충분히 컸기 때문에 유입된 은을 상업적 교환 시스템에 통합할 수 있었고, 그로 인해 불안정해지지 않았다. 이렇게 은의 유입 때문 위기를 초래했다는 견해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고 사치품 물가와 곡물 물가의 변동을 구분하며 당시 중국의 시장 가격이 어떻게 형성되고 변동하는가를 재조명한다.
중국이라는 농경 사회의 곡물 가격은 농업 번영과 인간 생존, 그리고 정치적 안정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