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이충렬 · 인문학
3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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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화단의 3대 블루칩 수화 김환기. 2013년은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다. 한국 추상, 반추상미술의 선구자로 수많은 명화를 탄생시킨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충실하게 복원한 ‘정본’ 김환기 전기가 나왔다. 부분적으로만 알려졌던 김환기의 삶은 물론이고, 그의 예술 원천이 어디에 있는지를 꼼꼼한 자료조사와 그를 알고 지낸 지인들의 인터뷰를 통해 소상하게 밝혔다. 김환기는 니혼대학 미술부 재학 시절 아방가르드연구소와 후지타 쓰구하루 등의 영향으로 추상미술을 접했다. 이 무렵 일본 화단의 양대 등용문 중 하나인 ‘이과회’에 2회 연속 입선함으로써 화가의 길에 들어섰다. 귀국 후 고향 안좌도에 서울에서 활동하던 중 그의 예술의 절대적 동반자 김향안을 만났고, 김용준, 정지용 등의 영향으로 ‘조선미’에 심취, 그것을 예술 활동의 자양분으로 삼았다. 마흔 세 살의 나이에 안정적인 대학교수직을 박차고 파리로 가 유럽화단에 도전장을 내민 것은 그의 예술적 열망이 세계로 향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후 홍대 교수로 복직했던 그는 쉰 살에 세계미술의 새로운 메카 뉴욕으로 가 그의 열정을 남김없이 쏟아붓는다. 1970년에는 한국미술대상을 수상하고, 미국화단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했으나 고국에 돌아오지 못하고 1974년에 사망한다. 김환기는 ‘평범한 것의 위대함’을 조선의 백자 항아리에서 찾았고, 그것을 자신의 추상, 반추상미술에 접목했다. ‘민족적인 것이 세계적’이라는 확고한 신념에 따른 것이다. 우리가 김환기를 소중하게 기억해야 하는 이유이다. 이 책을 통해 독자들은 김환기 예술은 물론이고, 어렵게 느끼던 추상미술에 한 발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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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서문_ 탄생 100주년, 온전하게 복원한 김환기 전기 1부 화가가 된 섬 소년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_ 1970년 귀향 그리고 가출_ 1932년 ‘이과전’ 입선, 화가가 되다_ 1933~1935년 조선의 전통을 찾아라_ 1936~1937년 2부 화가의 길 조선과 일본을 오가며_ 1937~1938년 경성 문화계에 이름을 알리다_ 1939년 조선의 정서와 특색을 찾아서_ 1940년 조선의 아름다움을 만나다_ 1941년 3부 변동림과 김향안 변동림_ 1942~1943년 김향안_ 1944~1945년 4부 백자의 아름다움에 빠지다 서울대 교수가 되다_ 1945~1947년 백자의 아름다움을 만나다_ 1948~1950년 피난지에서도 백자를 그리다_ 1951~1953년 5부 얻은 건 예술, 잃은 건 재산 돌아온 서울에서_ 1953~1956년 아! 파리_ 1956~1957년 마지막 승부_ 1958~1959년 교수는 화가의 길이 아니다_ 1959~1963년 6부 아, 김환기 미국 화단에 도전하다_ 1963~1965년 역경 속에서도 예술혼을 포기하지 않다_ 1966~1968년 그리움의 점화_ 1968~1970년 우주를 그리다_ 1971~1974년 김환기 연보 참고자료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출판사 리뷰] 탄생 100주년에 나온 ‘정본’ 김환기 전기 왜 김환기를 기억해야 하는가? 그가 한국 화단의 블루칩이어서가 아니다.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이기도 하지만, 추상미술에 우리 민족의 정서를 접목시켜 세계 화단에 당당하게 내놓았기 때문이다. 그는 조선 백자에서 ‘평범한 위대함’을 발견했고, 그 민족적 아름다움이 곧 세계적 아름다움이라는 확고한 신념을 가진 화가였다. 그가 프랑스에 간 것은 선진미술을 배우러 간 것이 아니라 유럽의 화가들과 당당하게 경쟁하러 간 것이다. 그가 세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 간 것은 우리 산천의 아름다움, ‘조선의 특색’으로 세계 화단과 한 판 승부를 보려고 간 것이다. 전 박물관장 최순우는 김환기에게 “불란서 물만 마시고 와도 모두 그림들이 홱 바뀌는데 수화 그림은 조금도 변하지 않아서 나는 좋다.”고 했고, 김환기가 “기실은 불란서에 가서 내 개인전을 갖기 전까지는 그곳 작가들 그림에 물들까봐서 전람회 구경도 안 다니고 나를 지키노라 매우 애를 썼다.”고 실토했다. 그가 겨우 환갑 지난 나이에 사망하지 않았다면, 세계적 거장의 반열에 우뚝 섰을 것이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이 되었지만,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온전하게 복원한 전기가 없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전기 작가 이충렬이 대장정에 나서 김환기의 삶과 예술을 온전하게 복원했다. 김환기의 삶과 예술 김환기의 삶과 예술은 제1기 일본유학 시절(1927~1937), 제2기 안좌도/서울 시절(1937~1956), 제3기 파리 시절(1956~1959), 제4기 서울/뉴욕 시절(1959~1974)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제1기는 화가 입문기이다. 니혼대학 미술부에 입학하면서 그림을 처음 접한 그는 도고 세이지, 아베 곤고 등이 설립한 아방가르드양화연구소에 들어가면서 추상미술에 빠졌다. 특히 프랑스 유학파 후지타 쓰구하루에게 감명받았다. 1935년 일본 화단의 2대 등용문 중 하나인 ‘22회 이과전’에 초입선, 정식 화가가 되었고, 이듬해 ‘23회 이과전’에 연속 입선하여 관심을 모았다. 제2기는 파란만장 격동기이다. 절대적 동반자 김향안과 결혼했고,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김용준, 길진섭, 정지용 등 우정과 예술을 나누던 벗들과 이별했다. 그러나 이 시절 접한 조선 고가구와 백자 항아리를 통해 ‘가장 평범한 것이 가장 위대한 것’이며 ‘민족예술이 곧 세계적 예술이 된다’는 자신의 예술정신을 확립했다. 제3기 파리 시절은 도전과 좌절이다. 1956년 마흔세 살의 나이에 프랑스로 떠났다. 베네지트 화랑 등에서 개인전을 열었지만, 파리는 동양인 화가에게 혹독했다. 김환기는 파리 생활 3년 만에 좌절만 안고 쓸쓸하게 귀국해 홍대 교수로 복직했다. 그러나 파리 경험을 통해 ‘벼랑 끝에 선 심정’으로 그려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제4기는 절정과 아쉬움이다. 서울에서도 미술의 새 메카 뉴욕에서도 인정받기 시작할 때 생을 마감했다. 가장 한국적인 작품소재를 반추상?추상미술로 표현한 것은 ‘조선인의 피’가 흐르는 김환기로서는 당연한 일이었다. 우리가 김환기를 소중하게 기억해야 할 이유이다. 이 책에서 바로잡거나 처음 밝혀진 내용 1. 김환기의 탄생일은 1913년 2월19일(음력)이다. 김환기는 일기에 2월19일이 자신의 생일임을 여러 차례 기록했다. 이를 당시 양력으로 표시하면 3월26일이다. 2월27일로 알려진 탄생일은 바로잡혀야 한다. 김환기 탄생 100주년 기념일은 이 책의 발행일인 3월26일이다. 2. 김환기의 일본 유학시절 교우관계, 인간관계 등을 상세하게 밝혔다. 이는 당시 함께 유학하던 김병기 화백(미국 생존)의 구술 기록과 직접 인터뷰를 통해 가능했다. 3. 김환기의 생질 서근배의 잡지 기고문을 발굴해 잘 알려지지 않은 가족관계 및 생활상을 소상하게 밝힐 수 있었다. 4. 김환기의 절대적 동반자 김향안의 변동림 시절에 관해 상세하게 밝혔다. 스무 살에 오빠 친구인 천재시인 이상과 결혼했고, 이상 사후 스스로 시골학교에서 유배생활을 한 것, 일본 시인 노리타케 가츠오를 통해 김환기를 만나게 된 것, 김환기와 결혼하면서 본래 김환기 아호이던 ‘향안’으로 이름을 바꾼 것 등 잘 알려지지 않았던 내용이다. 이는 김향안을 인격을 가진 역사적 인물로 복원한 것인데, 김향안 이전 변동림의 삶을 부정할 수도 없는 노릇이고, 김향안에 대해 잘못 알려진 내용(자유부인 운운)을 바로잡고 얼마나 헌신적으로 김환기를 내조했는지를 설명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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