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디외 사회학의 최종적 발전을
가장 투명하고 응축된 형태로 집대성하다!
‘진정한 과학으로서의 사회학’을 추구한 부르디외와 그의 유산!
2002년 1월 24일, 일간지 『르몽드』 1면은 “좌파 중의 좌파이자 모든 방면에서 투쟁한 사회학자”의 별세 소식을 전했다. 이 사회학자는 바로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 1930~2002), 평생의 학술 활동을 통해 사회 모순과 대결하고, 말년에는 전 세계적 시장 지배에 맞선 저항을 조직하고 견인하는 데 헌신한 비판적 지식인이다.
오늘날 부르디외의 명성은 의심할 바 없고, 그가 창안한 ‘하비투스’나 ‘상징권력’, ‘장’ 등의 개념들은 사회학의 영역 바깥으로까지 활용 범위를 확장해 가고 있다.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 부르디외 사유의 지평』은 그런 부르디외 사회학의 전체상을 이해하기 위한 훌륭한 진입로로 평가받으며 1992년 미국에서 처음 출간된 이래 전 세계적으로 번역되며 읽히고 있다. 이 책은 부르디외 스스로 자기 사유에 대해 설명한 ‘자기 해설서’의 유형(『사회학의 문제들』, 『말한 것들』, 『실천 이성』이 이 유형에 포함)에 들어가지만, 다른 책들과 달리 기획 단계부터 제자이기도 한 사회학자 로익 바캉(Lo?c Wacquant)과의 면밀한 소통 속에서 체재를 잡아 작성한 것이기 때문에, 부르디외의 생생한 목소리와 함께 그의 사회학의 주요 주제가 빠짐없이 체계적으로 다뤄진다는 고유한 장점을 가진다.
이 책의 맹아는 1987년 부르디외의 미국 체류 시기, 당시 시카고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밟고 있던 로익 바캉이 조직한 워크숍에 있다. 이 워크숍에서 부르디외는 사회학, 인류학, 정치학 전공의 박사 과정 학생들과 치열하게 소통하며 자기 작업이 거둔 성취와 마주한 오해를 확인할 수 있었고, 두 사람은 이때의 경험과 대화를 토대로 외국 독자들(특히 영미권)을 겨냥한 책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를 기획하게 된다. 바캉은 책의 중심이 되는 부르디외 인터뷰(2부 「성찰적 사회학의 목적: 시카고 워크숍」)를 주요 주제와 쟁점들을 중심으로 치밀하게 구성했으며, 부르디외는 전형적 비판들에 대해 가감 없이 의견을 밝히고 자기 작업의 의도를 상세히 설명하며 인터뷰에 응했다. 책을 엮으며 바캉은 부르디외 이론의 제1원리와 공리를 밝히는 개관을 작성해 인터뷰 앞에 배치헀고(1부 「사회적 실천론을 향하여: 부르디외 사회학의 구조와 논리」), 부르디외 저작 읽기 방법에 관한 조언과 방대한 참고 서지를 정리해 부록으로 덧붙였다. 3부 「성찰적 사회학의 실천: 파리 워크숍」은 부르디외가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행한 입문 강의로서, 독자-연구자들에게 사회학적 사유의 자세와 실용적 지침을 들려준다.
『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는 1992년 프랑스에서도 출간되었지만 불가피하게 축약본의 형태를 취했고, 작년에야 대폭 개정을 거친 새 프랑스어판이 출간되었다. 부르디외 전문가로 꼽히는 이상길 교수가 번역을 맡은 이번 한국어판은 새 개정판의 개정 내역을 반영하고 상세한 용어 해설까지 덧붙여 더욱 알찬 구성을 갖게 되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부르디외가 열어젖힌 새로운 사회학적 인식의 지평으로 초대받게 될 것이다.
대서양을 넘나들며
: 지적 전통의 융합에서 신자유주의 비판까지
이 책의 중심이 되는 바캉과 부르디외의 대화는 시카고와 파리를 오가며 3년의 기간에 걸쳐 이루어졌다. 특히 기획의 시발점이 되었던 1987년 시카고 워크숍은, 당시 시카고 대학이 미국 사회과학의 중심지로 표상되고 있었다는 점에서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프랑스 변두리에서 태어나 고등사범학교로 상징되는 최고 엘리트 코스를 밟으면서도 항상 경계인의 시각을 유지했던 부르디외는, 자신의 지적 토대와 끊임없는 긴장 관계를 유지하며 사유를 발전시켰다(자신의 토대를 끊임없이 흔들고 객관화하는 그의 사유 스타일은 철학에서 사회과학으로의 ‘개종’에서도 확인된다). 즉 그는 이른바 이론주의적 유럽의 전통과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작업해 온 학자인 것이다. 그런 그가 유럽 지적 전통의 대극(對極)에 놓이는 실증주의적 미국 사회과학이라는 시약을 통해 어떤 모습을 드러내게 되는지에 눈길을 줄 필요가 있다. 이 책 곳곳에서 거듭 확인하게 되는 것은 부르디외가 무엇보다 모든 종류의 ‘이분법’을 극복하려 고투한 통합적 지식인이었다는 점인데, 이론주의와 실증주의라는 방법론적 대립에서도 어느 한 극에 기울지 않으면서 변증법적 통합을 추구하는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러한 비타협적이면서도 개방적인 태도로부터 부르디외 사유 특유의 다채로운 스펙트럼이 가능했음 또한 알 수 있다. (책을 통틀어 수많은 영미권과 유럽의 학자들이 거명되고 그들과 부르디외의 관계가 논해지는데, 독자들은 이를 통해 부르디외 사유의 발전 경로를 추적할 수도 있고 그가 스스로를 어느 좌표에 위치시키고 싶어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한편, 이 책이 쓰인 시기는 부르디외가 학문적 활동 반경을 영어권으로(따라서 국제적으로) 확장시키던 시기와 포개어진다. 1980년대부터 미국에서 『구별 짓기』, 『호모 아카데미쿠스』, 『실천 감각』, 『언어와 상징권력』 등의 주요 저작들이 연이어 번역되었고, 그러면서 부르디외가 영어권에서 먼저 논문을 발표하는 일도 점점 잦아졌다(『성찰적 사회학으로의 초대』의 출판도 미국에서 먼저 이루어졌다). 이것은 부르디외가 프랑스의 (자족적인) 지적 풍토에 대해 가졌던 위화감의 표현인 동시에, 비판적 지식인으로서 시장 지배의 세계적 확장에 대응하고자 하는 의지와도 부합한다. 단적으로 이 책 곳곳에서 부르디외의 관심이 ‘호모 이코노미쿠스’라는 주제에 집중되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그가 세계화의 이름으로 진행되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의 공세에 일찌감치 예민하게 반응했음을 알려준다(실제로 이 책 출간 후부터 그는 “신자유주의의 침공에 맞서는 저항을 지원하기 위한 논고”라는 부제가 붙는 책 『맞불』과 『세계의 비참』 등을 출판하면서 신자유주의의 공세에 맞선 ‘참여’의 도상에 오르게 된다).
부르디외의 대담자인 로익 바캉 또한 또 한 명의 횡단적 지식인이다. 그는 미국과 프랑스를 오가며 지적 수련기를 보냈고, 경영학에서 사회학으로 옮겨 온 이력도 특이하다(부록 “부르디외를 기록하며”에 부르디외와의 만남을 통한 이 ‘개종’의 장면이 담겨 있다). 바캉은 부르디외 사유의 최대 이해자이자 최상의 대화 상대로서 부르디외 사회학의 요체를 선명히 드러내 보이고 그 지적 도구들의 유용성과 사용법을 독자들에게 전해 준다. 또한 (아직 국내 소개는 미비하지만) 현재 가장 생산적인 사회학자 중 한 명으로서 명성을 쌓아 나가고 있는 그가 어떤 방식으로 부르디외를 계승하고 또 확장시켜 나가고 있는지도 이 책을 통해 엿볼 수 있다.
과학으로서의 사회학
: 하비투스에서 성찰성까지
부르디외는 사회과학의 전형적인 이분법들(개인/구조, 미시/거시, 경험/합리 등)을 거부하고 변증법적 통합의 길을 제시하고자 했다. 그리고 부르디외의 이름에 따라붙는 하비투스, 장, 자본 등의 개념은 그러한 이분법들을 넘어서려는 의도를 함축적으로 보여 준다. 대표적으로 하비투스 개념은 개인-행위자와 구조-필연성이라는 이분법이 낳는 오류를 지양하는 개념으로서, 행위자가 어떤 메커니즘을 통해 구조적 필연성에 포획되는지, 또 행위 속에서 어떻게 구조를 유지하고 강화시키는지를 드러내 보인다. 개인과 구조 양자 중 어느 것인가를 실체로서 제시하기보다는 둘 사이의 ‘관계’야말로 사회학적 분석의 대상이 되어야 함을 주장한 것이다. 장 개념은 실체로서의 ‘사회’ 개념을 몰아내고 사회를 각각의 고유한 논리들을 지닌 장들의 집합으로 재정의한다(‘지배 계급’ 개념을 대체한 ‘권력 장’ 개념 등이 그의 관계 중심주의를 예증해 준다). 그리고 자본은 각 장 안에서 희소재들을 전유할 수 있는 능력으로 정의되는데, 이에 따라 그의 자본 개념은 경제적 의미에 국한되지 않고 문화자본, 상징자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