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로사회
한병철 · 인문학/사회과학
128p



독일 최고 권위지〈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이 극찬한 책. 저자 한병철은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속에 동양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비판가로 떠올랐다. 이 책에서 그는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에서 그러한 부정성이 제거된 사회,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 이후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사회가 금지(“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성공을 위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 그러나 부정성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되며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한병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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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로사회|
신경성 폭력
규율사회의 피안에서
깊은 심심함
활동적 삶Vita activa
보는 법의 교육
바틀비의 경우
피로사회
미주
|우울사회|
미주
역자 후기
출판사 제공 책 소개
우울증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대한 우아하고도 날카로운 철학적 진단!
“피로사회는 자기 착취의 사회다.
피로사회에서 현대인은 피해자인 동시에 가해자이다.”
독일 최고 권위지 『프랑크푸르터 알게마이네 차이퉁(FAZ)』 2010년 10월 2일자에 카를스루에 조형예술대학의 한병철 교수의 철학적 업적을 조명하는 특집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에서 한병철 교수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 비판의 개척자로 묘사되고 있다. 문화 비판은 니체, 프로이트, 아도르노, 벤야민 등 독일 사상의 중요한 전통을 이루고 있으며, 따라서 독일의 최고 권위지가 한국 출신의 철학자에게 문화 비판의 혁신자라라는 의미를 부여한 것은 범상하게 넘겨볼 일이 아니다.
위 기사의 필자인 마르크 지몬스는 지금까지 중국, 일본, 한국의 동아시아 국가들이 경제적, 기술적으로 인상적인 업적을 보여주었을지 모르지만 서양에 대해 거의 아무런 사상적 영향도 주지 못해왔다고 지적하면서, 한병철이 이러한 사상적 침묵을 깨고 동아시아적 시각에서의 문화 비판이라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고 평가한다. 그것은 곧 한병철 교수가 독일의 지성계에 큰 파장을 일으킨 최초의 동양인 철학자임을 의미한다. 고국에서 공학을 전공한 뒤 독일에서 철학 공부를 시작하여 독일의 권위 있는 출판사들에서 꾸준히 저서를 출간해온 재독 철학자 한병철은 『피로사회』를 통해 이제 독일에서 가장 주목받는 철학자로, 서양 철학의 언어를 구사하며 그 속에 동양적 메시지를 담아내는 새로운 종류의 문화비판가로 떠올랐다.
『피로사회』는 출간 즉시 철학서로서는 놀라울 정도로 독자들의 뜨거운 반응을 불러일으키며 큰 화제가 되었다. 거의 모든 독일의 주요 신문과 방송 매체들이 이 책을 비중 있게 다루었고, 시대의 핵심적 문제를 날카롭게 파헤친 책으로서 격찬하였다.
한병철 교수는 이 책에서 현대사회의 패러다임 전환을 예리하게 포착한다. 자아와 타자 사이의 적대성 내지 부정성을 근간으로 하는 사회(냉전, 면역학, 규율사회)에서 그러한 부정성이 제거된 사회, 부정성 대신 긍정성이 지배하는 사회로의 변화가 20세기 후반 이후 일어났다는 것이다. 한병철 교수는 이 새로운 사회를 성과사회, 그리고 이 사회 속에 살고 있는 인간을 성과주체라고 명명한다. 과거의 사회가 금지(“해서는 안 된다”)에 의해 이루어진 부정의 사회였다면, 성과사회는 “할 수 있다”는 것이 최상의 가치가 된 긍정의 사회이다. 이 사회에서는 성공하라는 것이 남아 있는 유일한 규율이며, 성공을 위해서 가장 강조되는 것이 바로 긍정의 정신이다(“Yes, we can!”). 그러나 부정성에 의해 제약받지 않는 긍정성은 긍정성의 과잉으로 귀결되며 타자의 위협이나 억압과는 다른 의미에서 자아를 짓누른다. 오직 자신의 능력과 성과를 통해서 주체로서의 존재감을 확인하려는 자아는 피로해지고, 스스로 설정한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는 좌절감은 우울증을 낳는다. 이러한 사회적 변화를 한병철은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규율사회의 부정성은 광인과 범죄자를 낳는다. 반면 성과사회는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만들어낸다.”
이 책에서 성과사회는 자본주의 시스템의 진화가 낳은 결과로 해석된다. 더 큰 성과를 올려서 더 큰 성공을 거두고자 하는 개개인의 욕망을 부추김으로써 자본주의는 전체적인 생산성을 극대화해간다는 것이다. 자본주의의 착취는 이렇게 해서 자발적인 착취의 양상을 띤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그는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이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의 노동수용소를 짊어지고 있다. 범람하는 성공학 도서들이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경영자입니다”라고 말할 때, 한병철은 그것을 “당신은 바로 당신 자신의 착취자입니다”라고 읽는다.
한병철은 성과사회의 과잉활동, 과잉자극에 맞서 사색적 삶, 영감을 주는 무위와 심심함, 휴식의 가치를 역설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피로’의 개념도 새로운 의미를 얻게 된다. 성과사회에서 ‘피로’란 할 수 있는 능력의 감소이고, 그저 극복해야 할 대상일 뿐이다. 하지만 무위의 가치에서 출발하는 한병철은 피로가 가진 또 다른 측면을 본다. 피로는 과잉활동의 욕망을 억제하며, 긍정적 정신으로 충만한 자아의 성과주의적 집착을 완화한다. 피로한 자아는 자신의 성공을 위해 자신을 채찍질하는 유아론적 세계에서 벗어나 타자와의 관계를 회복하고, 새로운 영감을 얻을 수 있다.
한병철은 모든 권위를 타파하고 가장 완전한 개인의 자유를 실현한 서구 사회, 부정성이 거의 완전히 제거된 듯한 긍정성의 사회에서 사람들이 느끼는 의문, 다시 말해 “왜 우리는 여전히 진정 자유롭지 못한가?” “왜 우리는 행복하지 못한가?”라는 의문에 대해 명석한 답을 제시해준다. 그것이 바로 유럽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성공적인 독일에서 이 책이 그토록 큰 영향력을 발휘한 이유일 것이다.
한병철의 ‘피로사회’에서 묘사되는 성과사회의 모습은 상당 부분 한국 사회의 현실과도 일치한다. 이 점은 긍정의 힘을 통한 성공을 설교하는 처세 관련 책들이 한국의 도서 시장에서 얼마나 많이 팔리고 있는지를 보더라도 확인된다. 한국인이 바라는 이상적 사회의 모습은 아마도 능력(업적)과 성공의 일치일 것이다. 불우한 환경을 딛고 노래 실력 하나만으로 오디션 프로그램의 우승자가 된 허각에게서 사람들이 본 것도 그러한 이상이다. 하지만 능력(업적)=성공이라는 이상은 능력(업적)을 최상의 가치로 만드는 성과사회의 패러다임에서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결코 이상적인 사회의 목표가 될 수 없음을 한병철의 책은 깨닫게 해준다. ‘존재하려면 할 수 있어야 한다’는 명제가 모든 개개인의 마음속에 내면화된 지상 과제가 될 때 사회는 한병철의 말대로 우울증 환자와 낙오자를 양산할 것이기 때문이다.



EO
4.0
“너랑 있으면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어 좋아” 몇 년 전 친구에게 이런 말을 들었다. 기분이 좋아야 하나 말아야 하나 얼떨떨하던 찰나 친구는 다시 말을 이었다. “내 친구가 하는 말이 너는 왜 이렇게 부정적이냐고 그러더라고. 그냥 좋은 게 좋은거지. 왜 이리 만사를 복잡하게 생각하냐고.” 친구는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는 기회의 땅 미국에서 살고 있었다. 나와 함께 한없이 우울해질 수 있다는 것은 지금 돌아보니 나의 부정성을 뜻했다. 나는 좋은 게 좋은거란 말이 참 싫다. “너는 너무 생각이 많아 그냥 받아들여.” 라는 말이 매우 폭력적이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불편한 진실에 눈을 감고 세상을 아름답고 긍정적으로만 보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비약적인 표현일지 몰라도 ‘변태스럽다’ 라는 생각이 든다. 뭐든 해낼 수 있고 모든 것을 좋게만 생각하는 긍정주의자들한텐 무언가를 ‘깊게 생각하고’ ‘비판하는’사람은 그저 세상에 불만이 많은 투덜이일 뿐이다. 나는 ‘이성으로 비관하고, 의지로 낙관하라’는 그람시의 말을 좋아한다. 현실을 직시해서 문제를 비판하되 미래에 대해서는 희망적 태도로 살아가고 싶다. 긍정만능주의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가진 나였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자기착취의 덫에 걸려 허우적됐다. 무언가가 되어야 한다는 생각, 인생에서 여러가지 경험을 해야 된다는 생각, 성취욕이 주는 기쁨은 버킷리스트를 꽉꽉 채우게 만들었다. 마라톤, 크로스핏, 서핑, 클라이밍, 폴댄스, 독서모임, 해부학스터디 등등 내가 이루어낸 성취들을 sns에 전시하면서도 자유롭긴 커녕 더 해내야 한다는 강박감이 옥죄었어왔다. 급기야는 책의 본문처럼 나의 sns친구들은 내 자아전시의 소비자가 됐다. 다행히도 자아에 질식하기 전에 연말 쯤 한 권의 책을 만났다. ‘에고라는 적’ 은 지난 시즌 임팩트 클럽장이 추천한 책이다. 나르시시즘에 도취되어있던 나를 구원해줬다. 내가 대단한 존재일 필요도 없으며, 나는 그냥 지구의 수많은 사람 중 하나일 뿐이다라는 생각이 들자 더 훌륭한 존재가 되겠다는 생각을 멈췄다. 하지만 지금도 완전히 나아진 것은 아니다. 나르시시즘에 덫에 빠지는 것을 막고자 sns를 멈췄다.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득이 되기도 하지만, sns는 나에겐 해가 된 것 같았다. 경험을 추억하고 즐기기보다는 나는 이런 사람이다라는 것을 전시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다. 목적이 전도되어 버렸다. 마치 성취하는 나를 보여주기 위해 항상 열심히 바쁘게 활동을 했다. Sns를 끊으니 한결 나아지긴 했어도 두려운 마음이 든다. 마음이 나약해질 때마다 긍정무한주의자, 성취적인 인간이라는 감투를 쓰고 싶기 때문이다. 늘 자기를 착취하지 않기 위해 주의해야겠다. 우리는 너무나 자기착취가 쉬운 환경 속에 살고 있다. 아무 것도 하지 않아도 마음이 불안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동진 평론가
4.0
“시대마다 그 시대엔 고유한 질병이 있다”는 사회병리학 진단의 문장으로 시작해서 21세기를 성과사회로 규정한 후, 이 시대의 가장 심각한 질병이 자기착취임을 선명하게 주장한다. 스스로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가 되는 자기착취는 자유롭다는 느낌 속에서 이뤄지기에 더욱 위험하다는 지적이 묵직하다.
희연희
5.0
생산력을 부추기고 부지런해야 자아실현이 가능한 것처럼 말하고, 게으름이 죄악인 양 몰아가는 건, 그냥 최고로 훌륭한 소모품이 되라는 얘기다. '게으름에 대한 찬양'과 함께, 현대인이 스스로 노예인 줄도 모르는 노예의 삶을 벗어나 타고난 본질에 가까워지는 삶, 창의적이고 주도적인 삶을 살도록 간절히 일깨우고 있다. 늘 생각하지만 일하듯이 취미생활 하는 사람, 공부하듯이 취미 배우는 사람, 가만 있으면 정체되어 있는 거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가장 매력없다.
권혜정
4.0
속지 말고 자기착취 하지 말고 인생 즐기자! 그리스인 조르바처럼 살고 싶은데 쉽지가 않다. 근데 교수님 조금만 더 쉽게 써주셨으면 더 좋았을 것 같아요. @이동진의빨간책방 2회
Insomniac
5.0
'해냈다'고 생각해왔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건 탈진과 우울뿐이었던 당신, 그리고 나를 위하여.
서영욱
3.5
인간을 병들게 하는 것은 성과주의의 명령이다. 우울한 인간은 노동하는 동물로서 자기 자신을 착취한다.
JoyKim
3.0
내용은 좋으나 이해하지 못한 내 두뇌가 문제. 어렵다 어려워
지은
4.5
나의 2016 최고의 책중 하나 이 책을 읽은 뒤론 열심히 살다가도 이게 정말 내가 이렇게 살고 싶어서 그런건지 아니면 현대에 만연한 정신병을 앓고 있는 환자여서인지 생각해 보게 된다. 그리고 그때마다 답을 쉽게 내릴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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