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가 ‘현대판 레오나르도 다 빈치’라 칭한
브루노 무나리의 하버드 대학 초청 강의록
디자이너로서 이미 국제적으로 명성을 얻은 무나리가 하버드 대학 카펜터 시각예술센터에 초청을 받아 학생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그 강의 과정을 밀라노 일간지 ‘일 조르노Il Giorno'에 보낸 20통의 편지에 담았다.
무나리는 담쟁이 넝쿨이 시원한 그늘을 드리우는 강의실에서 학생들과 종이를 구기고 잡지를 오리면서 수업을 시작한다. 그의 작업방식은 흰 눈 덮인 캠퍼스 오솔길을 오가는 젊은 대학생들의 옷차림과 신발을 거쳐, 고막이 먹먹할 정도로 소란스러운 도심의 디스코텍에서 뻔한 티브이 프로그램을 응시한 뒤에, 교원 기숙사 다락방 창문 위로 떠가는 구름으로 향한다. 여기에서는 감각을 열어두기, 생각 없이 저지르기, 상상하기, 비교하기, 형태를 가지고 놀기, 게을러지기가 무나리 방식의 전부다. 그러나 그 ‘전부’는 무수한 조합으로 무한증식한다. 그의 디자인 방법론이 오늘날 한국사회의 디자인 현장에 아직도 유효한 까닭이다.
위대한 디자이너는 많다.
그러나 위대한 디자이너의 선생은 브루노 무나리뿐인지도 모른다.
_일본 산업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이 책은 시각적 소통 장치로서 디자인을 다루는 입문서다.
무나리는 디자인과 ‘보는 방식’에 대한 기본 원리들을 다양한 실험을 통해 친절하게 설명한다. 무나리는 종이를 구기고 펴서 대지의 주름을 흉내 내는가 하면, 바닥에 먹물을 떨구고 입김으로 불면서 나일강의 델타를 창조하기도 한다. 또 어떤 대상이 찍힌 흑백사진을 복사하고, 다시 복사기로 거푸 복사하면서 마침내 복제의 고유하고 거친 질감을 얻어내는 그의 작업방식은 무수한 정제와 담금질의 과정을 거쳐 실체의 에스프리를 추출하는 마에스트로를 닮았다.
가능한 많이 보고 분석력을 키워라 _ 250쪽을 넘는 도판
1부에서 텍스처, 형태, 구조, 모듈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다면, 2부에서는 거기에 호응하며 순서대로 도판이 수록되어 있다. 250쪽을 넘는 엄청난 양의 도판은 언뜻 보면 산만해 보이지만 찬찬히 바라보면 하나하나가 전체의 구성과 조화롭다. 제품화를 전제로 시각 커뮤니케이션을 다루는 디자이너의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객관성’과 ‘일관성’이라고 무나리는 주장한다. 그것을 가능하게 하려면 창조력이 아닌 판단력, 즉 분석력이 필요하다. 분석력을 기르려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물을 보고 알며, 자신이 연구·실험하며, 사물 자체가 지닌 가능성을 찾는 것이다.
실험, 실습, 연구를 놀이처럼
무나리의 작업은, ‘유쾌함’에 전면적으로 기대 있다. 그의 상상력이 이른바 ‘시각화’ 전반에 걸쳐 연계되어 있는 현상을 설명하는 유일한 접근일 것이다. 그의 ‘작업’은 일로써가 아닌, 놀이로써의 접근이다. 시각화 방식을 오로지 눈에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귀와 손, 코와 몸의 감각 전체를 활용한 ‘놀이’로 확장시킨 것이다. 이 책 안에 산재한 그의 ‘유쾌한’ 방법론과 대면하기 바란다.
그의 작품들에는 디자인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과정이 없어서
나는 그의 작품을 좋아한다. _북디자이너 정병규
우리가 무나리의 세계를 만나 살피고 깨닫고 고마워해야 하는 것은 그가 우리에게 디자인은 발명이 아니라 발견이라는 사실을 다시 알려주기 때문이다. 우리가 지금 무나리를 다시 읽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를 통하여 디자인의 본질은 ‘세상을 살피고 발견의 정신을 바탕으로 매력을 만들어 내는 짓’이란 사실을 다시 깨닫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