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치고 떠들고 생각하고 행동했던 조선의 페미니스트들
‘경제적 자주성을 획득하라!’
‘문맹을 퇴치하자!’
‘미신을 타파하자!’
‘일제 잔재를 깨끗이 쓸자!’
1945년 12월 22일, 서울 안국동 풍문여고 강당 안은 젖먹이를 품에 안은 젊은 어머니, 머리 희끗희끗한 할머니, 중년의 부인, 단발한 여학생 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이날 1,000여 명의 여성이 참석한 가운데 조선부녀총동맹 결성식이 열렸다.
조선부녀총동맹은 선언문에서 “어머니는! 아내는! 딸 된 사람은! 부엌에서! 농촌에서! 거리에서! 우리들이 받아온 모든 부면에서의 차별은 세계 어느 나라를 찾아보아도 유례없는 비분(悲憤)한 것이었다.”라며 여성 차별에 대한 분노를 터뜨렸다. 그리고 “과거 조선에 건설적인 우수한 조선 여성의 전통을 존중하며 앞날의 조선에 창조적인 적극적 여성이 되자!”고 선언했다.
이 책은 3·1 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을 맞아 한국현대사에서 여성을 주제로 여성들의 삶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연구해온 역사학자 이임하의 ‘식민지 일상에 맞선 페미니스트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다.
해방 이후 결성된 조선부녀총동맹 등에서 활동했던 유영준, 정종명, 정칠성, 고명자, 허균, 박진홍, 이순금 등 일곱 명의 페미니스트들의 삶과 그들이 남긴 글을 통해 이들이 일제 강점기와 해방공간에서 식민지 일상에 맞서 어떻게 저항하고 어떻게 여성들의 삶을 바꾸려고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저자는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을 통해 성차별이 가득 찬 당시 세상에서 그들이 중요하게 생각한 가치와 삶의 방식이 무엇이었는지 알려준다. 이를 통해 한국의 여성해방을 위한 페미니즘이 탄생한 데에는 충분한 그 나름의 사상과 역사성이 있다는 것을 지적한다. 현재 한국의 페미니즘은 결코 수입품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저항한 조선의 페미니스트들과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함께 조선의 페미니스트들이 걸었던 길이 유럽 또는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걸었던 길과 어떻게 다른지, 식민지 경험이 얼마나 험난한 여정이었는지, 민족해방운동을 하면서 페미니스트로서 남성 중심 사회에 어떻게 개입하고자 했는지를 살펴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