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는 오지 맙시다. 아니, 꼭 다시 옵시다.”
효자가 되고 싶었던 불효자의 처절한 울부짖음,
그런데 왜 재밌지?
왜 눈물이 나지?
치매 초기 아버지, 무릎 시큰 어머니, 예민보스 아들이 치앙마이 한 달 살기에 도전하다.
「EBS 세계 테마 기행」 태국, 보르네오, 콜롬비아 등에 출연, 입담을 과시하던 여행작가 박민우가 새 책으로 돌아왔다. <1만 시간 동안의 남미>, <1만 시간 동안의 아시아>, <지금이니까 인도, 지금이라서 훈자> 등으로 여행서 시장을 뒤흔들었던 박민우가 철이 들었다. 부모님이 걸어 다니실 수 있을 때, 효도란 걸 해보자. 흔한 여행 말고 한 달 살기를 해보자. 통장 잔고 200만 원, 찢어지게 가난한 형편에 부모님을 모시고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결심한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효자 노릇 좀 해보겠다는데 어찌 이렇게 시련만 주시는지. 싫다. 맛없다. 집에 가련다. 선을 넘어선 치매 초기 아버지의 투정과, 그래도 아버지는 하늘, 유교 어머니의 끔찍한 남편 사랑이 아들을 궁지로 몬다. 여행작가 중에서도 시조새로 대접받는, 베테랑 여행자 아들은 고집불통 부모님께 완패한다. 부모님은 부모님대로 억울하다. 가방끈 좀 길다고, 부모 머리 꼭대기에서 가르치려 드는 아들은 그저 자기만 잘났다. 자기만 예의범절 깍듯한 신사다. 그 아들 누가 키웠나? 은혜도 모르고, 찧고 까부는 놈이 내 아들이라니. 쩝쩝 소리 좀 내지 말고 드세요. 길에서 침 뱉는 거 아니에요. 좋게 말하면 덧나나? 사람 많은 데서 망신을 주는 배은망덕 아들.
매일 보던 어머니, 아버지가 맞나 싶게 돌변한 부모님 덕에 자칭 여행 고수 박민우는 시름시름 앓기 시작한다. 정신은 가출한 채, 의욕 증발 눈빛과 몸짓으로 시간이 빨리 가기를 기도하고 또 기도하는 애처로운 좀비가 된다. 이보다 처절한 26일은, 단언컨대 오십 평생 한 번도 없었다. 전쟁보다 지긋지긋하고, 역병보다 혹독한 하루하루를 어찌 말로 다 설명할까? 그 지독한 하루하루를 보태지도, 빼지도 않은 채 순례자처럼 써 내려간 기록물이다. 저자는 자신한다. 지금까지 읽었던 최고의 책과 비교해 보라고, ‘25박26일 치앙마이 여행기’는 여행기의 레전드가 될 것임을 확신한다.
이제 새로운 여행을 이야기할 때
여행은 이제 일상이 됐다. 자유 여행이 많아지고, 여행서 시장은 실용 정보서 위주로 재편되고 있다. 이야기가 있는 여행기는 이제 수명을 다한 걸까? 박민우 작가는 진짜 재밌는 여행기가 없어서일 뿐, 이야기가 환영받지 않았던 시대는 없었다고 단언한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어 본다는 ‘치앙마이 한 달 살기’를 혼자가 아닌, 부모님과 함께 도전해 보기로 한다. 일상의 부모님과 여행 중 부모님은 전혀 다른 인격체임을 치앙마이에서 깨닫는다. 효도를 위해 떠난 여행이지만, 매일 화를 내고, 후회하고, 차차 시들어간다. 여행을 마치고 나서야 비로소 깨닫는다. 이렇게 캐릭터가 생생하고, 풍부한 이야기가 있었던가? 고생담은 작가의 손을 거쳐, 탄탄하고 살아 숨 쉬는 이야기로 재탄생하게 된다. 작가 박민우는 구독자에게 한 달 12,000원을 받고 일기를 판다. 치앙마이에서 지친 일과가 끝나면 어김없이 노트북을 펼치고, 하루하루를 순례자처럼 써내려 나갔다. 그 일기가 <25박26일 치앙마이 불효자 투어>로 세상에 나왔다. 좋은 이야기는 시대를 타지 않는다. 여행기지만, 굳이 여행기로 한정할 필욘 없어 보인다. 가장 보편적인 주제인 가족으로, 이보다 더 특별할 수 없는 ‘이야기’가 탄생했다.
부모님과의 여행이 아니다. 우리의 미래를 여행하는 답사다.
노년 인구가 폭증하는 시대, 곧 대한민국은 절반이 노인인 세상이 된다. 치매 초기 아버지, 계단을 오르고, 내릴 때마다 조마조마한 어머니는 우리의 미래다. 시대에 적응하지 못한 채 늙어갈 경우, 할 수 있는 것은 점점 줄어든다. 두려움이 많아지면, 공격적인 사람이 된다. 나이를 먹을수록 매사에 부정적이고, 의심이 느는 것도 그런 이유다. 그냥 늙는 사람과 노력해서 늙는 사람, 그 차이는 극명하게 벌어진다. 부모 세대의 노후에서 우린 바로 그 점을 배워야 한다. 노력 없이 무사히 늙는다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는걸. 부단히 대비해야 정상적으로 대꾸하고, 걸을 수 있는 노인이 된다는 걸. 현장 학습만큼 좋은 배움은 없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부모님의 당혹스러운 행동은, 나의, 우리의 미래 모습이다. 연금만이 노후 대비가 아니다. 늙어가는 뇌, 늙어가는 몸은 어떻게 대비할 것인가? 가슴 철렁한 현장 학습, 부모님과의 여행을 통해 절절하게 배우시라. 이 책은 노후를 관찰할 수 있는 훌륭한 교과서다.
여행작가의 전설 박민우, 이제 그의 문장을 말할 때
<1만 시간 동안의 남미>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지만, 그는 한사코 한국에 남아 있기를 거부했다. 주로 태국 방콕에 머물면서, 가끔은 먼 나라로 나선다. 수많은 TV 출연 제의를 거절하면서, 자유와 가난을 20년째 고수중이다. 매일 일기를 써서 구독료를 받고 파는데, 덕분에 뇌를 거쳐 글이 나오는 속도는 장인의 경지다. 긴 문장을 질색하는 탓에 담백한 직선의 문장이 테트리스처럼 지면을 채운다. 좋은 문장이란 무엇인가? 정답이 있을 리 없다. 하지만 매일매일 먹고 사느냐, 굶어 죽느냐를 두고 치열하게 6년을 써 내려간 박민우의 문장은 정답이 있다면, 그 정답에 가장 근접한 문장일 것이다. 간결함의 극치, 담백함의 경지. 이제 박민우의 문장에 주목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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