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의 역사

강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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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 공화국’이라는 토양 위에서 피어난 한류의 역사를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70여 년에 걸쳐 기록하고 탐구한다. K-pop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뮤지컬, 게임 등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담았다. 한류의 출발점을 8?15해방으로 설정한 것은 비교적 실체가 있는 한류의 현대적 근원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한류’의 역사인 동시에 ‘한류론’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류를 둘러싸고 지난 20여 년간 축적된 주요 평가들도 동시에 소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시공간적 맥락을 살피면, 한국인들이 한류에 대해 느끼는 강한 자부심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경제 못지않은 ‘압축 성장’을 이루었기에, ‘춥고 배고프게’ 살았던 시절,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에 치이는 현실과 대비해 일부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오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세계와 세계인들을 열광시킨 ‘한류의 역사’를 여행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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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머리말 : 왜 한국은 ‘대중문화 공화국’인가? ? 5 제1장 한류의 토대가 된 ‘후발자의 이익’^^ 미군 댄스홀과 AFKN의 역할 ? 21 | ‘미8군 쇼’는 ‘한국 대중문화의 모태’ ? 24 | 5개 라디오 방송 체제와 ‘라디오 DJ’의 등장 ? 27 | ‘비틀스 열풍’과 <쇼쇼쇼>의 활약 ? 29 | ‘할리우드 키드’와 ‘세운상가 키드’ ? 32 | ‘서울 공화국’ 체제와 TV의 대중화 ? 35 | 클리프 리처드의 내한 공연 ? 38 | 포크 음악, ‘통블생’, 이태원 ? 40 | 대학가요제, 팝송, 미국 드라마의 인기 ? 43 | ‘도둑 특별 경계령’을 발동시킨 일일연속극 ? 45 | 컬러TV 방송이 몰고 온 ‘색의 혁명’ ? 48 | 1,000만 구경꾼을 동원한 난장판 ? 50 | ‘K-pop 열풍’을 잉태한 ‘MTV 혁명’ ? 53 | <애마부인>과 ‘이산가족 찾기 방송’ ? 56 | 1980년대 가요계의 슈퍼스타, 조용필 ? 59 | 자동차 수출과 ‘86아시안게임’ ? 62 | “한국이야말로 전화의 천국이다!” ? 64 | ‘88서울올림픽’의 감격과 영향 ? 66 | “FM 음악 방송과 미디어 제국주의” ? 69 | “AFKN은 40년 동안 사실상 한국 방송” ? 71 | ‘뱀 20마리와 암모니아 4통’이 동원된 영화계 투쟁 ? 74 | 한류의 토대가 된 ‘후발자의 이익’ ? 77 | ‘문화결정론’과 ‘경제결정론’을 넘어서 ? 79 ^^ 제2장 <쥬라기 공원>이 촉발시킨 ‘문화 전쟁’^^ “세계는 넓고 볼 것은 많다”는 위성방송의 침투 ? 82 | ‘글로컬리제이션’의 탄생 ? 85 | SBS는 한국 TV의 은인인가, 원흉인가? ? 87 | MBC의 주말연속극 <사랑이 뭐길래> ? 91 | ‘뉴 키즈 온 더 블록’ 태풍 ? 94 | 10대의 ‘대중문화 장악’과 ‘오빠 신드롬’ ? 97 | ‘서태지와 아이들’의 출현 ? 99 | 인구의 62퍼센트를 점한 ‘TV 세대’ ? 102 |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 <질투> ? 104 | <질투>가 ‘한류의 기원’이다 ? 106 | <쥬라기 공원>이 촉발시킨 ‘문화 전쟁’ ? 109 | 스필버그가 삼성 대신 제일제당을 택한 이유 ? 113 | 진보 언론도 가세한 ‘문화 전쟁’ ? 115 | WTO 출범, 세계화, 영어 열풍 ? 117 | ‘케이블TV 시대’의 개막과 ‘인터넷 광풍’ ? 120 ^^ 제3장 한류의 최초 동력은 IMF 환란^^ 음반·영화 사전 검열은 위헌이다 ? 124 | HOT의 등장과 댄스 가수 붐 ? 127 | MBC 드라마 <애인>과 ‘드라마 망국론’ ? 130 | <사랑이 뭐길래>가 만들어낸 ‘한류’ 작명 ? 133 | “IMF 환란이 없었다면 한류는 가능했을까?” ? 136 | ‘높은 문화적 근접성’과 ‘낮은 문화적 할인’ ? 139 | ‘일본 대중문화 개방’ 논란 ? 141 | ‘스크린쿼터제’ 사수를 외친 영화인들의 삭발 투쟁 ? 144 | HOT와 젝스키스 팬들의 패싸움 ? 146 | 문화적 권리를 박탈당한 청소년들의 팬덤 활동 ? 149 | 한국 영화의 해외 영화제 진출 ? 151 | <쉬리>가 선도한 영화 한류 ? 153 | 비언어극 <난타>의 성공 비결은 ‘상업 공연’ ? 156 | ‘문화 제국주의’를 대체한 ‘혼종성’ ? 158 ^^ 제4장 한국인의 열정과 위험 감수성^^ 한국은 ‘노래방 공화국’ ? 161 | “애들 일 갖고 무얼 그렇게 난리를 피우나” ? 165 | 보아의 활약과 ‘K-pop’ 용어의 등장 ? 167 | 톱가수 김수희의 1회 방송 출연료는 26만 원 ? 170 | “오, 한류, 너 정말 문화 맞니?” ? 173 | ‘한류 뒤집어 보기’와 ‘한류의 새로운 기획’ ? 177 | 한국은 ‘신드롬 공화국’ ? 180 | 국내의 ‘<겨울연가> 신드롬’ ? 183 | 한류를 예고한 ‘2002 한일 월드컵 축구’ ? 185 | 한국인의 유별난 열정과 위험 감수성 ? 187 | 사상 최초의 방송

출판사 제공 책 소개

한류 DNA의 비밀 한류와 ‘디지털 문화 코드의 보편성’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20년까지 ‘한류의 역사’를 담아내다 “왜 사람들은 BTS와 <기생충>에 열광하는가?” 김 시스터즈는 미국에 진출해 큰 성공을 거둔 ‘최초의 한류 아이돌’이었다. 미국 최고의 버라이어티쇼였던 CBS <에드 설리번 쇼>에 “악기를 20가지나 연주할 줄 아는 소녀들”로 소개되면서 인기를 끌어 25번이나 출연하는 대기록을 세웠다. 김 시스터즈는 가수이자 작곡가인 김해송과 이난영의 두 딸, 이난영의 오빠인 작곡가 이봉룡의 딸로 구성된 3인조 걸그룹이었다. ‘21세기 비틀스’라 불리는 BTS는 미국 ‘빌보드 200’ 차트 1위를 차지하며 세계인들을 열광시켰다. <기생충>은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한국 영화 역사상 최초로 황금종려상을 수상했으며,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했다. 대중의 일상적 삶에서 뜨겁게 발현되는 놀이 문화, 대중문화에 대한 뜨거운 열정, 그런 열정을 쏠림 현상으로 전화(轉化)시키는 한국 사회의 소용돌이 체제, 생존 본능으로 고착된 치열한 경쟁 문화 등으로 대변되는 ‘대중문화 공화국’이라는 토양이 한류를 만들어냈다. 세계 인구의 0.7퍼센트를 차지한다는 의미에서 ‘0.7퍼센트의 반란’ 또는 ‘단군 이래 최대 이벤트’로 불리기도 한 한류 열풍은 ‘대중문화 공화국’의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었다. 한국이 ‘대중문화 공화국’이 된 데에는 그럴 만한 역사적 배경이 있었다. 식민통치의 상처에 신음하는, 땅 좁고 자원 없는 나라가 살 길은 근면과 경쟁뿐이었다. 한국은 그냥 생존하는 것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선진국이 되는 것을 국가 종교로 삼은 나라가 아닌가. 그래서 택한 게 바로 ‘삶의 전쟁화’였다. 전쟁하듯이 산다는 것이다. 서열 체제는 완강하고, 그래서 ‘서울 공화국’이라는 말로 대변되는, 더 높은 곳을 향해 집단적으로 질주하는 1극 집중의 ‘소용돌이’ 문화는 수시로 온 사회를 뒤흔든다. 우리는 그것을 ‘역동성’이라는 말로 포장하고 싶어 한다. 그런 전쟁과 역동성을 지속할 수 있게 만든 조건 중의 하나가 바로 대중문화였다. 『한류의 역사』는 ‘대중문화 공화국’이라는 토양 위에서 피어난 한류의 역사를 1945년 해방 이후부터 2020년에 이르기까지 70여 년에 걸쳐 기록하고 탐구한다. K-pop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뮤지컬, 게임 등 한류 붐을 일으키고 있는 대한민국 대중문화의 모든 것을 담았다. 한류의 출발점을 8․15해방으로 설정한 것은 비교적 실체가 있는 한류의 현대적 근원을 중시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 책은 ‘한류’의 역사인 동시에 ‘한류론’의 역사이기도 하다. 한류를 둘러싸고 지난 20여 년간 축적된 주요 평가들도 동시에 소개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시공간적 맥락을 살피면, 한국인들이 한류에 대해 느끼는 강한 자부심도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경제 못지않은 ‘압축 성장’을 이루었기에, ‘춥고 배고프게’ 살았던 시절, 그리고 그때나 지금이나 강대국들에 치이는 현실과 대비해 일부 한국인들의 자부심이 ‘오버’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제 세계와 세계인들을 열광시킨 ‘한류의 역사’를 여행해보자. AFKN을 통해 들어온 미국의 대중문화 1945년 8·15해방 후 미군의 주둔과 함께 이른바 ‘양키이즘’이 유입되어 미군의 기지촌 문화는 사회 전반으로 파급되었다. 가장 눈에 띈 변화는 ‘춤바람’이었다. 춤바람은 미군의 댄스파티에서 시작되었다. 1957년 9월 15일 AFKN-TV가 개국하면서 미국의 대중문화는 한국에 유입되었다. 그 후 40년 동안 AFKN은 사실상 한국 방송이라고 해도 좋을 정도로 수많은 ‘AFKN 키드’를 양산했다. 특히 봉준호 감독은 열 살 무렵부터 AFKN으로 영화를 보며 꿈을 키웠다고 말했다. 다시 말해 봉준호의 ‘영화적 세포’의 원천은 AFKN이었다. 1960년대의 젊은이들은 ‘할리우드 영화’를 사랑했다. 그래서 생겨난 말이 ‘할리우드 키드’였다. 일부 국산 영화들이 큰 인기를 끌기는 했지만, 미국 할리우드 영화가 강세를 보였다. 1961년 서울 시내 남녀 고교 3학년 518명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서 72.6퍼센트가 월 1~3회꼴로 영화를 보는데, 92.3퍼센트가 외화를 좋아하며 단 5.6퍼센트만이 한국 영화를 본다고 응답했다. 1970년대의 청년문화는 통블생, 즉 통기타, 블루진, 생맥주로 상징되었다. 양희은이 부른 <아침 이슬>을 비롯한 ‘포크 음악’이 큰 인기를 누렸으며, 라디오 DJ 프로그램은 포크 음악과 외국의 팝송 중심으로 젊은이들을 사로잡았다. 1972년 10월 유신 독재 체제가 들어섰지만, ‘청년문화’마저 억누를 수는 없었다. 사회 일각에서는 통블생과 고고춤을 ‘퇴폐적’이라고 비난했지만, 옹호의 목소리도 있었다. 1972년 최고 인기 가요는 남진의 <님과 함께>였는데, 남진과 나훈아의 트로트 음악 대결 구도는 많은 팬을 불러 모았다. 1980년대의 가요계는 조용필의 시대였다. 1980년대를 통틀어 시종일관 대중의 변함없는 사랑을 받은 가수는 단연 조용필이었다. <창밖의 여자>, <정>,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담은 1집 음반은 당시로서는 150만 장의 판매고라는 놀라운 기록을 세웠다. 그가 낸 음반은 모두 히트했으며 가요계의 상이란 상은 거의 모두 휩쓸었다. 그게 미안했거나 아니면 성가셨던지 조용필은 1980년대 중·후반에는 아예 모든 가요상의 수상을 거부하기도 했다. <사랑이 뭐길래>와 <질투>가 한류의 기원이다 1991년 11월 23일부터 1992년 5월 31일까지 방송된 MBC의 <사랑이 뭐길래>는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다. 평균 시청률 59.6퍼센트로 역대 1위, 최고 시청률 64.9퍼센트로 역대 2위를 기록했다. 작가 김수현의 체취를 물씬 풍기는 이 드라마에서 스토리나 구성은 별 의미가 없었다. 김수현 드라마의 생명이 ‘대사’에 있음을 여실하게 보여주었다. 그의 대사는 ‘사고’와 ‘언어’의 경계를 넘나들었다. 김수현의 언어는 상식과 사회통념마저 해부해 뒤집어버리는 해체의 성격이 강했다. 그간 방송 언어가 ‘위생 처리’된 ‘위선의 언어’였다는 것을 감안한다면, ‘추상’을 끊임없이 ‘구체화’하는 김수현의 언어가 시청자들을 끌어모으는 건 결코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 1992년 6월 1일부터 7월 21일까지 MBC에서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인 <질투>가 방영되었다. 일부 일본 비평가들은 현실과 동떨어진 채 젊은이들의 화려한 환상에만 몰두하는 이 새로운 장르를 “골빈 여자들의 허영심에 아부하는 쓰레기”라고까지 비난했지만, 스토리는 진부했지만 감각은 소비주의적 첨단이었다. 감각적인 소비문화를 긍정한 이 드라마에서는 갈등과 고민조차도 소비 지향적이었다. 갈등과 고민은 바닐라 아이스크림을 먹느냐 딸기 아이스크림을 먹느냐 하는 정도의 것에 지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1997년 중국에 수출된 <사랑이 뭐길래>를 한류의 출발점으로 보지만, 한국 최초의 트렌디 드라마로 통하는 <질투>가 훨씬 큰 영향력을 미쳤기에 ‘한류의 기원’을 <질투>로 보아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랑이 뭐길래>가 한류의 기원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비교적 큰 성공을 거두었고, ‘한류’라는 작명(作名)을 낳게 하는 데에 결정적 기여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장르의 인기와 지속성으로 보더라도, <사랑이 뭐길래>보다는 <질투>가 훨씬 큰 영향력을 미쳤기에 ‘한류의 기원’이 <질투>라는 것이다. ‘서태지와 아이들’과 보아가 대중음악계를 강타하다 1992년 봄 ‘서태지와 아이들’이 등장했다. 세상이 그들을 알아보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그들은 데뷔 한 달도 안 돼 10대들의 우상이 되었으며 20대 젊은이들 사이에서도 높은 인기를 누렸다. 그리고 훗날 서태지는 ‘현대 K-pop의 시조’라는 평가를 듣게 된다. 특히 2017년 9월 서울 잠실 올림픽주경기장에서 열린 서태지의 데뷔 25주년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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