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독특한 감수성으로 두터운 팬층의 사랑을 받는 일본의 문제적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의 첫 소설. 주인공 카몬의 시선을 따라 하나의 연극이 가까스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쫓아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라면 가족이나 연인, 친구 같은 인간관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그런 관계를 통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연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친구, 세카이를 향해>라는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하나의 무대에 온전히 열중하고 거기서 나오는 유대감에 집중한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애정을 가지고 하나의 일에 몰두할 때 나오는 시너지는 엄청나다. 때로는 혈연이나 애정에 기반한 관계보다 훨씬 끈끈한 유대를 형성한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과 그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이누도 잇신의 따뜻한 존경의 시선을 따라가본 다음에는 카몬이 사는 세계가 조금 부러워질 것이다.
이상한 세계 속에 보편적인 이야기를 숨기는
일본의 문제적 영화감독 이누도 잇신의 첫 소설
인생을 열연하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어쩌면 우리의 이야기
영화감독, 광고디렉터, 극본가인 이누도 잇신은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메종 드 히미코> <황색 눈물> <구구는 고양이다> 등의 영화에서 보여준 독특한 감수성으로 두터운 팬층의 사랑을 받았다. 이누도 잇신의 이름을 모르더라도 그가 만든 영화를 보고 일본영화의 매력에 빠진 한국 팬은 상당히 많을 것이다. 《세계의 끝 바다의 맛》은 그의 첫 소설이다.
이 소설은 주인공 카몬의 시선을 따라 하나의 연극이 가까스로 무대에 오르기까지의 여정을 쫓아가는 이야기다. 연극배우를 두고 흔히 배곯는 직업이라고들 하지만 그런데도 그 세계에 뛰어드는 사람이 있는 걸 보면 그 세계 밖의 사람들은 모르는 무언가가 있음이 분명하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연기력을 인정받는 배우들도 대개 연극판을 거쳤다고 하잖는가. 《씨네21》 편집장 주성철은 추천사에서 “어차피 세상 사람 모두 매일 연기를 하며 살아간다”고 운을 떼면서 알레한드로 곤살레스 이냐리투의 영화 <버드맨>에 빗대어 “작품 주변을 둘러싼 공기와 일상, 그리고 크고 작은 일들이 흥미롭고 생생하게 다가온다”고 말했다. 연극이 현실이고 현실이 곧 연극인 사람들의 세계, 일단 한번 빠져들면 좀처럼 빠져나오기 어려운 무대의 공기를 독자로 하여금 한껏 들이켜볼 수 있게 하는 소설이다.
일본 청춘영화의 선두주자
이누도 잇신, 그가 소설을 쓴다면?
2000년대 초반 스폰지하우스, 씨네코드 선재 등 독립영화 전용관이 문을 닫기 전의 시절을 기억하는 관객이라면 이누도 잇신을 모를 수 없을 것이다. 지금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에게 그 자리를 내어주고 있지만 실은 그 이전에 이누도 잇신이 있었다고 하면 과한 소개이려나. 국내에서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그의 영화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은 그 여운이 어찌나 잔잔하게 오래가는지 여전히 재상영을 거듭할 정도다. 여하튼 이누도 잇신의 이름만 들어도 반가울 독자들에게 그가 쓴 첫 소설이 국내에 출간되었다는 소식을 알린다.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도
누군가는 뜨겁게 살아가고 있다
이누도 잇신의 영화는 그 자신의 말을 빌리면, ‘이상한 곳으로 들어가고, 특이한 사람들 때문에 놀라기도 하지만, 결국은 이해하게 되는’ 구조를 취한다. 이는 《세계의 끝 바다의 맛》에서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주인공 카몬이 들어간 세계에는 은퇴를 선언하는 원로배우도 있고, 까탈스럽고 변덕스러운 여배우도, 종잡을 수 없는 천재 극작가도 있다. 카몬은 배우들의 세계에 들어가 별난 사람들을 만나고 말도 안 되는 일들을 겪지만, 그 과정에서 그들의 세계를 이해하게 되고 지키려고 힘쓴다. 카몬은 특별한 사람이 아니다. 우리의 일상 도처에서 배경처럼 존재하는 모든 사람이다. 주인공이지만 결코 다른 인물보다 튀지 않고 만능 인간도 아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 이런 사람이 있기 때문에 빛이 나는 사람도 있는 것이다. 빛나는 소수의 사람보다 묵묵히 수수하게 살아가는 다수의 사람이 세상에는 훨씬 많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제 일에 마음을 다하는 사람, 자신이 있어야 할 곳을 아는 그런 사람 말이다. 그런 이유로 우리는 개성 강한 인물들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는 카몬을 응원하게 된다.
세상살이에는 서툴지만
자신이 속한 세계에서만큼은 베테랑인 사람들에게
이누도 잇신이 바치는 경외와 존경
“배우라는 특수한 직업을 선택한 사람들을 존경한다. 배우는 대부분의 사람이 할 수 없는 선택이다. 하물며 이 일을 오랫동안 계속하면서 성과를 내고, 게다가 자신이 감동을 줄 수 있게 되는 건, 정말 특별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누도 잇신
이누도 잇신의 이러한 생각은 카몬이 하는 말과 행동에 스며 있다. 애초에 카몬을 배우 되기를 포기한 사람으로 설정한 이유도 재능 없는 사람은 아무리 노력해도 배우가 될 수 없다는 배우의 직업적 속성을 명확하게 규정하기 위해서다. 카몬은 그 점을 제대로 깨닫고 자기 안에서 타협한 결과, 매니저라는 직업을 택했다. 그것이 그의 행동에 기준과 동기가 된다. 진심으로 도전하고 포기한 경험이 있는 카몬의 배경 때문에 독자는 그를 신뢰하고 설득당할 수 있게 된다.
이 소설의 독특한 점이라면 가족이나 연인, 친구 같은 인간관계가 나오지 않는다는 것이다. 작가가 그런 관계를 통해 드라마틱한 이야기를 연출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디까지나 <나의 친구, 세카이를 향해>라는 연극을 완성하기 위해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 그들이 하나의 무대에 온전히 열중하고 거기서 나오는 유대감에 집중한다. 열정적인 사람들이 모여 애정을 가지고 하나의 일에 몰두할 때 나오는 시너지는 엄청나다. 때로는 혈연이나 애정에 기반한 관계보다 훨씬 끈끈한 유대를 형성한다. 무언가를 만드는 일과 그 일에 몰두하는 사람들, 그들을 바라보는 이누도 잇신의 따뜻한 존경의 시선을 따라가본 다음에는 카몬이 사는 세계가 조금 부러워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