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사 제공 책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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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은 민족사적 정통성이 없으며,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나라’, ‘한국현대사는 정의가 패배하고, 기회주의가 득세한 역사’ 등의 부정적 역사인식이 우리 주변을 유령처럼 배회하고 있다. ‘대한민국 현대사를 부정적으로 인식하는 이들은 대개 역사를 미시적(微視的)·일국적(一國的)·도덕적(규범적) 시각으로 본다. 그들은 저항적·폐쇄적 민족주의의 연장선상에서 인류의 역사는 우리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그래야 마땅하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그러면서 그들은 ‘있었던 사실로의 역사’를 보는 게 아니라, ‘있어야 했다고 믿는(상상하는) 당위(當爲)로서의 역사를 본다.’ 대한민국의 건국(建國)과 부국(富國)에 있어 이승만과 박정희의 업적을 파괴, 왜곡하고자 하는 좌파적 시각의 학자, 운동가, 정치인, 지식인들이 무차별 공격한다 해도, 오늘날 우리 앞에 우뚝 선 ‘기적의 대한민국’은 결코 부정되지 않는다. 이승만은 무법천지나 다름없던 해방공간에서 좌익과 남한의 공산주의자, 미 군정과의 거센 투쟁에서 살아남아 대한민국을 건국했다. 이승만이 해방 공간에서 살아남아 건국 대통령에 오른 첫째 원인은 그에 대한 국민적 지지였고, 둘째는 미국의 엘리트 교육을 받은 국제정치학 박사로서 세계사의 흐름을 꿰뚫어보는 안목이었다. 6.25 남침을 당하자 이승만은 국군과 유엔군을 독려하여 남한의 공산화를 저지했고, 분단을 고착화하는 휴전협정에 반대하기 위해 반공포로 석방이라는 승부수를 던져 미국과 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는 데 성공했다. 또 국군 20개 사단의 무장이라는 값진 결실을 얻어냈다. 이 땅의 역사상 현대화 된 60만 대군을 보유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다. 이승만은 한국 사회의 전근대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반상(班常)의 구분, 그리고 지주와 소작인으로 질기게 이어져 온 지배-피지배구조를 무너뜨리는 것이 급선무라는 점을 깊이 인식했다. 그 결과 ‘농토는 농민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절실한 구상을 실천에 옮겼으니, 이것이 6·25 직전에 단행한 농지개혁이다. 학자들은 세계의 여러 나라 중 경제가 고속 성장하면서도 소득분배가 한국처럼 공평하게 이루어진 나라는 유례를 찾기 힘들다고 한다. 그 공로는 이승만의 농지개혁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농지개혁에 성공했기에 한국은 근대화 출범 초기부터 지주-소작인 간의 계급갈등이 존재하지 않는 균질한 사회로 출발했다. 그 결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사회로의 이행 과정에서 첨예한 계급 갈등의 소지를 해소할 수 있었다. 나아가 베트남이나 필리핀에서처럼 농민 세력이 공산주의에 동조하는 현상을 미연에 방지하여 사회 안정에 기여했다. 이것이 이승만의 농지개혁이 우리에게 준 가장 큰 선물이다. 일제 식민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는 조선조 500년 동안 뿌리 깊게 이어졌던 반상(班常)의 계급 구분이 느슨해졌고, 건국 후 농지개혁으로 인해 부자와 빈자(貧者)의 세습구조가 무너졌다. 전 국민이 계급 없고, 빈부 격차가 사라진 ‘차별 없는 시대’가 열림으로써 결과적으로 기회의 균등이 실현된 것이다. 이승만이 밑그림을 그린 한미동맹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틀은 대한민국을 글로벌 시대의 주류세력인 해양 동맹에 편입시켰고, 이후 정권들은 이를 더욱 공고하게 다져 한민족의 위대한 분출구를 만들어냈다. 이 나라를 선진국의 대열에 올려놓은 인물들 중에서 일등공신은 온갖 악조건에도 굴하지 않고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해 온 기업가들과 국가의 진로를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로 이끈 이승만을 지목해야 할 것이다. 지금까지 이승만에 대한 다양한 연구들이 진행되어 선각자로서의 삶, 해외에서의 외교를 통한 독립운동, 좌익 폭동 속에서 자유선거를 통한 건국 과정 등이 상당 부분 밝혀졌다. 그러나 1948년 8월 15일 초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이래 1960년 4월 하야하기까지 12년 간 재임하면서 대한민국의 근대화와 산업화의 초석을 다진 부분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조명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그러한 이승만 대통령의 ‘성공한 나라’ 대한민국의 기초를 닦은 15년간의 피와 땀의 기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