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간에 대한 기억, 지도
오늘날 우리는 지도에 둘러싸여 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지도는 보편적인 생활수단이 되었다. 지하철 노선도를 비롯해 자동차 내비게이션, 스마트폰의 맛집지도, 놀이동산 안내도, 심지어 바람 지도, 인맥 지도까지 일상을 잠시만 둘러보아도 얼마나 많은 지도들이 우리 삶 속에 들어와 있는지 알 것이다. 항공 촬영과 인공위성의 도움으로 지구촌 구석구석의 모습까지 실시간으로 찾아볼 수 있게 된 지금, 지도는 어떤 상상력과 정보가 더해지느냐에 따라 사회를 변화시키는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다.
지도는 박제된 과거의 그림이 아니다. 그 속에는 인류의 오랜 상상력과 호기심, 한 시대의 가치관과 철학, 종교와 문화,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낸 사람들의 수많은 이야기들이 살아서 꿈틀대고 있다. 시대의 상상력, 시대의 관념에 따라 지도는 세계를 달리 보았고, 문명의 희로애락에 따라 지도의 운명도 달라졌다. 일찍이 바다로 뛰어들었던 아랍 상인들의 용기와 고대 그리스 학자들의 지리 지식, 기독교 왕을 찾아 동방으로 왔던 유럽인들의 도전 그리고 바다를 차지하기 위한 세계 각국의 치열한 경쟁까지……. 인류의 지도에는 인류가 걸어온 기나긴 역사의 기억들이 새겨져 있다.
■ 지도, 인류가 터득한 삶의 지혜와 지식의 총체
지도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와 더불어 시작되었다. 인류는 문자를 만들기 전부터 거친 환경에서 적응해 살아남기 위해 지도를 그렸다. 최초의 지도는 인류의 생존을 위한 것이었다. 그리고 새로운 세상을 탐험하기 위한 도구로서 지도를 만들기 시작했다. 자신의 주변 환경에서 벗어나 더 크고 넓은 세상을 보고자 한 인류의 욕망은 세계지도를 탄생시켰고, 더 완벽한 지도를 얻기 위해 인류는 쉼 없이 도전하고 탐험해 왔다.
1만 4,000여 년 전 인류가 사냥터에서 동굴로 돌아오는 길을 새겨 넣은 돌 지도, 1,000여 개의 섬으로 이루어진 마셜제도의 원주민들이 섬과 섬 사이를 이동하기 위해 야자나무 막대기와 조개껍데기를 엮어 만든 스틱차트(stick chart), 관념과 상상의 울타리 안에 머물렀던 인류 최초의 세계지도인 바빌로니아 지도, 고대 그리스와 아랍의 지식이 합쳐져 탄생한 카탈루냐 지도, 이드리시 지도, 칸티노 지도, 메르카토르 지도…… 그리고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는 구술 지도까지. 모양도 내용도 가지각색이지만, 그 안에는 인류가 터득한 삶의 지혜와 지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 걸작, 지도를 따라 떠나는 역사 탐험
인류의 역사는 곧 지도의 빈칸을 채워 나가는 과정에 다름 아니었다. 지도에는 수천 년을 뛰어넘는 문명의 교류와 인류가 써 내려온 비극과 희망의 역사들이 모두 새겨져 있다. 시대와 함께 진화하며 ‘생존’과 ‘탐험’과 ‘욕망’의 도구가 되어왔던 인류의 지도. 그 지도 속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을까?
책은 단순히 지리정보를 기록한 그림으로서 지도가 아닌 2,000년 문명의 거대한 흐름을 간직하고 있는 지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한 장의 지도가 왜,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탄생의 비밀을 한 꺼풀씩 벗겨 나가며 그 속에 숨겨진 장대한 문명 교류의 역사와 인류의 도전과 투쟁, 갈등의 역사를 들려준다. 차라리 현대 예술작품이라 해도 손색이 없을 아름다운 지도와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역사의 현장을 200여 컷의 생생한 화보를 통해 눈으로 직접 즐길 수 있는 것은 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