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모든 암컷은 비밀을 가지고 있다
“친자 확인 10건 중 3건은 남의 자식”이라는 통계를 기억하는가. 아내의 불륜에 대한 ‘심증’은 있으나 ‘물증’이 없던 남자들이 유전자(DNA) 감식을 의뢰하여 나온 이 결과에 번식적 이득을 누리기 위해 혼외정사를 하는 쪽은 주로 남자들이라는 사고에 허를 찔린 적이 있을 것이다. 물증을 확실히 손에 쥔 남자들은 외도한 아내를 용서하고 남의 자식을 계속 키울 수 있을까? 부정에 대처하기 위해 진화한 인간의 심리전략 중 하나가 질투라면, 배우자의 배신에 불같이 반응하는 것이 진화심리학적으로는 옳다.
여기, 심증도 있고 물증도 있으나 어쩔 수 없이 남의 자식을 키우는 수컷들이 있다. 명금류(참새목의 노래하는 새)에 속하는 아카디아딱새 수컷은 새끼들 중 절반에 해당하는 남의 자식을 먹여 살리고, 두건솔새 수컷은 자신의 배우자 암컷이 마치 옆집 수컷과 간통을 저지르지 않았다는 듯 행동하며, 남의 자식을 키우기 위해 1,000번 이상의 먹이 조달 여행을 떠난다. 오쟁이를 진 수컷들이 먹이를 계속 구해 나르는 이유는 그렇지 않으면 둥지 내의 다른 새끼들뿐만 아니라 자기 자식에게도 해가 될 것을 알기 때문이다.
20년 이상 남·북아메리카의 새들을 연구해온 브리짓 스터치버리는 경력의 대부분을 새들의 ‘간통’ 연구에 바쳐온 행동생태학자이다. DNA 감식으로 친자 확인 검사가 가능해지기 전까지 오랫동안 새들은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종으로 인식되어왔다. 그러나 조류 세계에서 가장 잘 지켜진 비밀 중 하나는 많은 새들이 상당히 높은 비율로 불륜을 저지른다는 사실이다. 저자의 흥미로운 이력이 말해주듯 짝짓기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새들은 놀랍도록 복잡한 성 전략을 진화시켜왔음이 분명하다.
어째서 암컷들은 옆집 수컷과 불륜을 저지르고, 수컷은 배우자의 공공연한 혼외정사를 속수무책 지켜볼 수밖에 없는가? 저자는 짝짓기와 번식에 관한 한 암컷이 선택권을 갖고 수컷들을 무한경쟁으로 몰고 간다는 성 선택 이론으로 이를 설명한다. 수컷은 대체로 암컷의 처분에 달려 있으며, 선택의 주도권을 쥔 암컷은 필요에 따라 배우자를 속이고 불륜을 저지르고 자식을 버린다. 암컷의 배우자 선택에는 어떤 비밀이 숨겨져 있을까? 그 달콤 살벌한 진실을 파헤쳐보자.
수컷은 유혹하고 암컷은 선택한다
왜 수컷들이 암컷보다 화려하고 아름다운가? 명백하게 ‘암컷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다. 아름다운 깃털로 치장하는 요정굴뚝새 수컷과 봄날 아침마다 열렬한 춤 공연을 펼치는 큰초원뇌조 수컷, 그리고 복잡한 레퍼토리로 새벽 합창을 하는 호주동박새 수컷은 짝짓기라는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다른 수컷들과 치열한 군비경쟁을 벌인다. 문제는 암컷이 그리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여러 마리가 동시에 춤 공연을 펼치는 큰초원뇌조는 눈싸움 경합과 차고 쪼는 몸싸움으로 만신창이가 되어도 결국 구애 공연의 중앙무대를 차지하지 못하면 암컷에게 퇴짜를 맞는다.
그렇다면 암컷은 어떤 스타일의 수컷을 좋아할까? 보라큰털발제비 암컷은 나이가 많은 수컷을 선호하고, 유럽 푸른박새 암컷은 다양한 노랫소리를 가진 수컷을 선호하고, 멕시코양진이 암컷은 선명한 빨간색 깃털을 가진 수컷을 선호한다. 암컷이 이다지도 까다로운 이유는? 암컷이 낳는 알들은 단백질과 에너지를 많이 필요로 하기 때문에 암컷은 유전적 기여자로서, 그리고 가정을 꾸리기 위한 자원 제공자로서 수컷의 가치를 판단한다. 명금류 철새들에게 생존은 쉬운 게 아니다. 따라서 두 번째 번식기까지 생존한 수컷은 우수한 면역체계를 가졌을 가능성이 크고(보라큰털발제비), 에너지가 많이 드는 노래를 잘 부르는 수컷은 스태미너와 건강 상태가 좋다는 것을 보여주고(푸른박새), 면역체계를 강화하는 카로티노이드 색소를 식품을 통해 잘 섭취하는 수컷은 유능한 먹이 공급자라는 것을 말해준다(멕시코양진이).
일부일처제는 충실함의 결과인가, 기회 부족 때문인가?
조류 암컷은 일반적으로 알을 수정할 정자가 필요할 때만 수컷의 접근을 성적으로 받아들인다. 문제는 번식기가 겹치는 데서 일어난다. 참새목과 명금류의 새들은 전체 종의 86%가 빈번하게 외도를 저지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이런 불명예를 안은 이유는 번식이 동시다발적으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반면 열대새에 속하는 회색개미새 부부는 1년 내내 함께 노래하고, 함께 식량을 구하고, 함께 알을 품고, 함께 새끼를 먹이고, 함께 침입자와 싸운다. 열대새들의 경우, 번식기가 길고 암컷들의 생식 시기가 동일하지 않은 점이 일부일처제를 유지하는 중요한 이유다. 회색개미새 중 동시에 생식능력이 생기는 암컷은 10% 미만이기 때문에 수컷이 아무리 구애를 한다고 해도 암컷이 알을 낳을 준비가 안 되어 있다면 냉대받기 쉽다. 다시 말해 바람피우기가 여간 어렵지 않은 것이다.
조류 세계에서 이혼은 일상적인 일이다. 떠돌이알바트로스(이혼율 0%)처럼 극도의 육아부담 때문에 평생 협력하고 서로에게 헌신하는 새도 있지만, 암컷이 알을 낳기 시작하면 관계를 청산하고 심지어 1년에 여섯 차례나 결혼하여 새로이 둥지를 트는 유럽오목눈이(이혼율 100%)도 있다. 이혼에 관한 한 새들은 아주 실용적이며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시한다. 이혼은 자원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 목적으로, 또는 한 파트너와 살 때 생산 가능한 자손보다 더 많은 자손을 생산하려는 목적 때문에 일어난다. 따라서 배우자와 새끼를 밥 먹듯이 버리는 유럽오목눈이가 더 생산적일 수 있다.
왜 어떤 종은 평생을 함께하고, 어떤 종은 배우자와 새끼를 가차 없이 버리는가? 저자에 따르면 일부일처제는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충실함보다는 기회 부족의 결과일지 모른다. 겉으로 영구적인 부부 결합 패턴을 보인 회색개미새도 옆집에서 더 나은 기회가 주어지면 주저 없이 제 짝과 이혼하는 것으로 드러났다. 오랫동안 ‘영역’을 차지하고 ‘긴 수명’을 누릴 수 있는 이익이 배우자에 대한 ‘충실함’으로 나타난 것뿐인 것이다.
‘떠돌이새’와 ‘양육 조력자’의 생존전략
이 책에는 새들의 번식 행동 외에도 둥지 찾기, 동기(同氣)간의 경쟁, 공동양육, 군집 생활의 전모, 그리고 생사를 건 철새의 이동 등 야생동물이 자연에서 살아가고 후손을 이어가기 위하여 선택하는 다양한 생존전략과 진화의 과정이 서술되어 있다.
겉으로 보기에 무기가 될 만한 어떤 흔적도 없지만 새들은 음식과 둥지, 짝과 같은 자원을 두고 늘 경쟁한다. 아름답고 연약해 보이는 새들에게 싸움과 공격성은 삶의 일부분이다. 생존을 위한 경쟁은 형제 사이에서도 예외가 없다. 왜가리의 세계에서는 한 자식이 다른 자식을 죽이는 형제살해가 흔하다. 어미는 두 마리의 새끼를 키우기 힘들지만 일상적으로 두 개의 알을 낳고, 첫째는 충분히 자라면 동생을 쪼아 먹는다. 부모는 남은 새끼의 생존 전망을 높이고 양육 부담을 덜기 위해 이를 방관한다.
둥지를 짓는 행운도 아무에게나 돌아가지 않는다. ‘떠돌이새’는 가정이라는 뿌리가 거의 또는 전혀 없는 새들을 일컫는데, 이들이 집을 소유하기 위한 전술은 꽤나 정교하다. 예를 들어, 보라큰털발제비는 여분의 공간을 소유하고 있는 나이 든 새를 괴롭혀서 남는 자원을 포기하게 만들고, 검은머리쇠박새의 떠돌이새들은 이 무리 저 무리 배회하다가 최고 서열의 새가 없어지면 재빨리 둥지를 낚아챈다. 빈 둥지가 거의 없는 인도양의 커즌 섬에 서식하는 세이셸솔새는 부모와 함께 살다가 부모가 죽으면 둥지를 물려받는다.
새들의 삶은 짝을 선택하고 이혼하고 자식을 양육하는 것을 비롯한 대부분의 측면에서 이기적인 행동에 기반한다. 그런데 어떤 종들은 번식을 포기하고 친족들의 새끼를 돌보는 ‘양육 조력자’ 역할을 수행한다. 많은 종들에서 부모 새들은 한 마리 또는 십여 마리에 이르는 성조(成鳥)들의 도움을 받는데, 이 새들은 일시적인 입주 유모 혹은 조력자로서 양육의 부담을 공유한다. 번식 능력이 있는 새가 어